세계는 넓다/인도성지순례

2015.1.19 인도성지순례 13일째 상카시아

맑은물56 2015. 1. 23. 17:42

2015.1.19 인도성지순례 13일째 상카시아

남상숙 글 | 2015.01.21 01:36:28 올림 | 3,489 읽음

▲ 상카시아 탑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떠난지 13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제 8대 성지의 마지막 여정인 상카시아로 향합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서 버스에 올라타니 500여명이 탑승한 13대의 버스는 새벽 4시에 일제히 상카시아로 출발했습니다. 이른 출발이지만 늦게 일어나 허둥대는 사람이 없습니다. 순례 초에는 처음 하는 순례에 긴장해서 그랬는데, 지금은 익숙해 져서 인 듯 합니다. 어떤 도반은 일찍 눈이 뜨여 5분만 더 눈 붙이고 싶었으나 매일 108배를 마치고 명상 중인 옆 자리의 도반님을 보고는 벌떡 일어난다 합니다. 

 

새벽 4시에 차가 출발하자 여느 아침처럼 스님께서 수신기로 “잘 주무셨어요” 하시며 오늘의 일정을 짧게 알려 주십니다. “쉬라바스터를 출발하여 럭나우를 거쳐 8대 성지의 마지막 여정인 상카시아로 갑니다. 안개가 끼지 않아 버스가 잘 가네요. 차량별로 새벽 예불 해주세요.” 차량 별로 약 30분간 새벽 예불을 마치니 버스 안의 불이 꺼지고 순례단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 쉬라바스티에서 상카시아로 향하는 길 

 

아침 7시경 차에서 내려 10여분 휴식을 하며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13일 동안 늘 그래왔듯 여자는 왼쪽, 남자는 오른쪽으로 흩어져 자연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해결하고 옵니다. 습기를 한껏 머금은 인도의 아침공기가 참 상쾌했습니다. 

 


▲ 버스에서 내려 야외 화장실을 향해

 

한참을 달려가는데 스님께서 미국에서 순례에 참가한 한 보살님의 아드님이 뇌사 상태에 빠져 위독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주시면서 함께 생전예수재를 지내고 기도를 하자고 하십니다. 유수스님의 염불과 무변심 법사님의 집전으로 500여명의 순례단은 버스 안에 앉은 채로 다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 순례객 중 한 분의 아드님이 위독해서 함께 생전예수재를 지냈습니다. 

 

아드님이 위독한 보살님은 함께 기도를 하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보살님이 최대한 빨리 미국의 아드님 곁으로 가실 수 있게 계속 전화통화를 하며 교통편을 알아보시고, 또 어제 기원정사에서 경전독송을 통해 만났던 아들을 잃은 여인, 손자를 잃은 베사카 부인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보살님을 위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럭나우 공항 근처에 보살님을 내려드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순례의 여정은 계속 되었습니다.  

 


▲ 아드님이 위독해서 급히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순례객을 배웅해 주시는 스님

 

한참을 달려가는데 스님께서는 곧 강가강이 5개 지류로 나눠지기 전의 원류가 되는 강가 강을 지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가 나타나자 강변 모래사장 위에 기도를 하기 위해 온 힌두교 순례자들이 초막을 치고 빼곡이 들어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인도 사람들은 강가 강을 무척 신성하게 여기는데, 이곳에 초막을 치고 보름씩 한달씩 머물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 인도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강가강

 

스님께서는 “힌두인들이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알 수 있다”하시면서 “인도인들은 이렇게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무슬림이 침공해도 기독교가 들어와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 “이렇게 믿음이 굳건해야 실천행동이 나오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믿음이 갖는 힘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10시 30분경 차를 멈추고 볕과 그늘이 적절한 곳에서 아침 겸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순례단이 공양 준비를 하자 근처 숲에서 야생 원숭이들이 몰려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에 100마리 이상의 원숭이가 살고 있다”고 하시면서 원숭이가 몰려오는 입구에서 직접 원숭이들을 쫓으셨습니다. “망고 나무의 원숭이에게 흙덩이를 던지면 원숭이는 망고를 따서 던진다고 해요. 저기 보세요,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게 맞죠” 하시면서 순례단이 공양을 시작한 이후까지 원숭이 떼를 쫓아 주시고 공양 분위기도 가볍게 띄워 주신 후 다소 늦게 공양을 하셨습니다. 3호차에서 준비한 반찬으로 9조와 함께 공양게송을 시작으로 함께 공양을 드셨습니다. 야외에서 하는 공양이었지만 접시에 예쁘게 깍아 놓인 사과와 포도에서 스승님께 공양을 드리는 도반님들의 정성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양 후에는 근처 유채밭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유채밭에 물 주고 있는 보살님들 빨리 오세요.” 라며 버스 탑승을 유머있게 재촉하셨습니다.  

 

도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평원에는 노란 유채밭과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감자밭이 넓고 푸르게 펼쳐져 우리나라의 봄날 같은 풍경이 이어 졌고 그 뒤로 키가 훌쩍한 나무들이 드문드문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버스 안에서는 차량 별로 이번 순례에 대한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천상에 올라가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신 후 하강하신 곳인 상카시아 유적지로 가고 있는 중이여서 그런지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경전반 수강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경전반 등록을 결심했다”는 말에 차안의 모든 순례자들이 환호의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한자로 된 경전을 뜻도 모르고 읽었는데 처음으로 쉬운 경전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하고, 어떤 분은 “평소 배려해 주고 맞추어 준 남편에게 처음으로 감사했고, 순례기간 동안 도반들에게 받은 도움들을 어려운 이웃에게 회향하겠다”고 하고, 어떤 분은 “싯타르타의 출가 노래를 함께 불렀을 때 생노병사에 대해 오랫동안 느껴왔던 것이라 너무 공감이 되어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순례를 하면서 법륜 스님이 인간 붓다의 삶에 대해 가지는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 고 하고, 어떤 분은 “기원정사를 포행 할 때 나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느낌들의 나누기로 차안의 분위기가 한층 훈훈해 졌습니다.   

 


▲ 버스 안 마음나누기

 

스님께서는 “각 차량별로 나누기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송수신기 채널을 돌려 가면서 다 들었다”고 하시면서 “어떤 차는 노래도 부르고 기타도 연주하고 꼭 소풍 온 것 같더라”며 웃으셨습니다. 

 

새벽 4시에 쉬라바스티를 출발한 버스는 오후3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상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11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스님께서는 예상보다 1시간 늦었다고 하십니다. 가사를 수하고 향에 불을 붙이고 탑을 세바퀴 돈 후 공양 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곳의 탑터는 부처님이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 부인을 위해 법을 설한 후 하강한 곳으로 하늘과 인간 세계를 잇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소라고 합니다. 

 


▲ 상카시아 탑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은 부처님이 태어나시자마자 일주일 만에 돌아가셔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느해 안거 때 도리천궁으로 가셔서 마야부인에게 3달간 법을 설하고 하강하셨다는 이 곳에 이후 아쇼카 왕은 석주들과 대규모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스님은 상카시아 탑 앞에서 간절한 발원을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온 정토행자 대중 오백여명 일동은 차사천하 남섬부주 인디아 우프라 프라데시주의 이곳 상카시아, 부처님이 천상에서 하강하신, 8대 성지 중 마지막 성지를 참배하고 부처님께 공양 예불 올리고 찬탄 공경하면서 발원하옵나니 저희 상카시아 대탑 참배 인연공덕으로 다생겁래로 지어온 모든 업장 소멸되고 성불하는 그날까지 세세생생 보살도 행하기를 발원하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탄생하신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때 안거 중에 도리천으로 승천하셔서 어머니 마하마야 대비와 천상의 대중 일동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대범천과 제석천을 대동하시고 이곳 상카시아 성밖으로 하강하신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어떤 사람도 어머니의 끝없는 공덕을 입고 태어나고 자랐으니 그 어머니의 공덕을 잊지 않고 어머니의 공덕을 길이길이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갚으라는 뜻으로 이와같이 보이신 것입니다. 저희 또한 이곳을 참배하며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며 그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이와 같은 참배 인연 공덕으로 먼저 돌아가신 조상영가님들 모두 왕생극락케 하여 저희들이 조금이라도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옵나니 제불 보살님들께서는 저희의 이 발원을 증명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렇게 부처님 태어나시고 성도하시고 설법하시고 열반하신 곳을 포함하여 부처님께서 교화활동하신 저 왕사성 저 사위성 저 바이샬리 이곳 상카시아까지 8대 성지를 모두 참배하였으며, 또 부처님이 6년 고행하신 전정각산과 부처님께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카필라성 등 10대 성지를 순례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중 발견된 3개의 탑, 바이샬리와 랑그람,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 참배한 이 모든 공덕을 고통받는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배고픈 자는 배불러 지고, 병든 자는 속히 쾌차하여지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움이 성취되는 등 고통받는 일체 중생들 모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또한 저희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연으로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 병고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 하루 속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갖가지 인권침해로 인간다운 삶이 영위되지 않는 북한동포들에게 자유와 행복이 속히 도래될 수 있게 옹호하여 주옵소서. 올해로 해방 70주년 분단 70주년 이산가족의 애환이 깊으니 올해 분단 70주년을 기하여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하고 협력하여 한반도의 다시는 분쟁과 전쟁이 없도록 나아가 서로 협력하여 통일의 기운을 만들어 마침내 한반도가 통일될 수 있도록, 뿐만 아니라 한중관계 한일관계도 개선되어 동양 삼국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여 함께 번영하므로써 이웃나라가 서로 공생공존할 수 있어 세계 문명의 중심을 이룰 수 있도록 발원하옵나니 성지순례 참배 인연공덕으로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천륭팔부 신중님들은 옹호하여 주업소서. 

 


 

또한 지난 2주 성지순례 기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이와같이 오백 대중이 순례를 마칠 수 있게 됨에 제불 보살님들께 감사드리오며 남은 일정 또한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신중님들은 옹호하여 주옵소서. 성지순례 참배 대중 일동은 성지순례를 통하여 이제 사람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때리거나 죽이거나 헤치는 행위를 하지 않고, 훔치거나 빼앗는 손해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성추행 성폭행 등 괴롭히는 행위를 하지 않고, 거짓말 욕설 등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술을 먹고 취하여 행패 피우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람다운 길을 갈 수 있는 그런 서원을 꼭 지킬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시고 더 나아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베풀고 돌볼 수 있도록, 청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괴로운 이를 위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밝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순례를 마치며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대승보살의 길을 갈 수 있길 순례 참배 대중 일동은 서원을 세웁니다. 

 

또한 검소하게 살되 당당하며 겸손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서 세상에 불자됨이 자랑스럽고 이 세상에 불자가 있음으로해서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그런 불자 되기를 발원하옵나니 제불 보살님들은 저희 참배 대중의 이 발원을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륭팔부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이어서 스님은 “장시간 버스타고 온다고 힘들었어요?” 물어 보시면서 이곳 상카시아 성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이곳이 마지막 성지입니다. 어느해 우기철 안거에 부처님이 일체 보이시질 않았습니다. 누구도 부처님을 본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근심이 많았습니다. 부처님이 어디 가셨을까? 

 

그런데 신통제일 목갈리나 존자께서 “너무 걱정하지 마라. 부처님께서는 도리천궁에 가셔 계신다. 어머니를 위해서 설법을 하러 가셨다” 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태어나자마자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으니까 부처님의 설법을 못 들었잖아요.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한 도리천궁에 있는 천인들을 위해서 설법하러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오시는지 물어보니 10월 보름날 이곳에서 하강하신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를 기념한 탑이 이 상카시아 스투파입니다.” 

 


 

법문을 마치고 상카시아에 관련된 경전을 함께 독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전독송을 마치고 잠시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명상 후에는 스님의 요청으로 한 법우가 나와서 ‘어머니의 은혜’를 선창하고 오백 순례단도 모두 함께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스승님인 부처님을 생각하고 ‘스승의 은혜’를 불러보자”고 하셔서 이번에는 무변심 법사님의 선창으로 ‘스승의 은혜’를 함께 불러 보았습니다.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히거나 조용히 눈물을 닦는 순레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저물어 가는 주위에 까마귀 떼가 낮게 날아서 숙연한 분위기를 더하는 듯 했습니다. 

 


▲ 어머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는 순례객

 

스님께서도 노래를 함께 부르신 후 “우리 모두는 부모님과 스승의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시며 법문을 마치시고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서둘러 버스에 탑승하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성지를 나서며 어김없이 동네 아이들을 위해 사탕을 나눠주시며 아이들의 행복과 인도 불교의 부흥을 발원하셨습니다. 

 


▲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시는 스님

 

버스를 타고 5분쯤 가니 스님께서 상카시아 석가족을 위해 담마 센터를 지어주려고 마련한 부지가 나타났습니다. 아직 담마 센터는 지어지지 않았고 주위에 벽만 네모낫게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순례단 일행이 부지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석가족 청년들이 나와서 스님과 순례단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 상카시아 담마 센터 건립 부지. 인도성지순례 회향식

 

오후 5시30분경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제26차 인도성지순례 회향식이 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해가 져서 어두워진 으스름 속에서 마지막 회향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오계에 대해서 강조하시면서 500여 대중을 한명이라도 더 깨우쳐 주시려는 스님의 간절한 마음과 순례단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신 바라나시의 사르나트에서 구리가 장자의 부부처럼 삼귀의 오계를 받고 출가한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시작한지 오늘로써 열하루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열흘 간 단기 출가를 했다고 볼 수 있죠. 그 열흘 동안 우리는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신 바라나시의 사르나트, 6년 고행하신 전정각산,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일천 비구를 교화하신 우리벨라 가섭터, 가야 가섭을 교화한 가야산, 처음 사찰이 건립된 죽림정사, 왕사성, 영축산, 칠엽굴을 순례하고, 그리고 바이샬리의 진신사리탑과 원후봉밀터를, 그리고 께사르 스투파를 거쳐서 파바마을의 춘다 공양터, 쿠시나가라의 열반당, 부처님을 화장한 라마바르총, 그리고 네팔로 넘어 가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29세까지 성장하신 카필라성, 그리고 석가족이 부처님을 영접한 쿠단과 꼴리족이 세운 랑그람 진신사리탑을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도로 와서 석가족이 세운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을, 그리고 천불화현탑을, 그리고 사위성의 기원정사를 참배하고, 오늘 이제 상카시아의 부처님이 하강한 곳의 탑을 참배함으로 해서 10대 성지순례를 마치고 3개의 진신사리탑까지 참배를 마쳤습니다. 

 

진행되는 과정에 자는 것도 불편하고 씻는 것도 불편하고 대소변도 불편하고 먹는 것도 불편하고 많은 것이 불편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많은 대중이 움직이다 보니 복잡하기도 하고 쫓기기도 하고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아무 차질 없이 오백 대중이 성지순례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신중님들이 옹호하셨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오늘 회향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디스트라고 하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잖아요. 붓다라는 사람은 수행자예요. 우리가 부디스트가 된다는 것은 불교를 믿는 종교인이 된다는 개념이 아니예요. 수행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도 부처님의 법에 귀의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여러분들은 성지순례까지 하셨으니까 불자로서 미니멈은 좀 지켜주셨으면 해요. 자신이 불자라고 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면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둘째, 남에게 손해는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아무리 성질이 나도 욕설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섯째, 술을 안 먹으면 좋지만 먹더라도 취해서 주정을 해서는 안됩니다. 부디스트가 이것을 증명하는 징표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니멈이 안지켜지기 때문에 수행자는 고사하고 평범한 인간도 못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부처님이 정한 이 다섯가지 계울은 무슨 성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다워라 이런 얘기입니다. 성지순례를 마치면서 ‘오계는 지킨다’ 이것 하나는 결심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무지로 인해서 일어났다면 깊이 참회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든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준다든지 남을 위로해 준다든지 하면 더 좋죠. 돈 벌 일이 있으면 열심히 버세요. 벌어서 베푸는 데에 쓰면 되잖아요. 여기 보니까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습니까? 미국이나 한국에서 낭비하지 말고 이런 곳에 주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사는 데에 도움이 되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아닌 것으로 자꾸 나를 삼지 마세요. 나이가 내가 아니며, 지위가 내가 아니며, 재물도 내가 아닙니다. 나 아닌 것을 나로 삼고 그게 부족하다고 비굴하거나 그게 좀 있다고 교만하거나 그러지 말고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2600여년 전에 바라문이라고 목에 힘주고, 왕이라고 목에 힘주고, 돈 많다고 목에 힘주고, 천민이라고 고개도 못 들고, 여자라고 고개도 못 들고 사는 그런 세상에 평등한 인간 존엄을 선언했기 때문에 존경이 되는 겁니다. 지금 시내에서 그런 얘기를 하셨으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얘기라서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싶은데, 지금 들어도 훌륭한데 그 시대에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시대에 상가 안에서만이라도 모델을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것 자체는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한 인간이 그렇게 올바르게 사물을 인식했다는 것, 나아가 그것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세상은 붓다가 말한 쪽으로 한발 한발 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도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 대로 행하면 아마 인류 사회에서 가장 선각자가 될 거예요. 가장 진보적이고 앞선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니 우리 불자들이 세상에 뒤쳐진 사람이 되지 말고, 세상을 한발 앞서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까 전세계적으로 상위 1%가 가진 재산이 나머지 99%가 가진 재산을 넘어섰다고 해요. 이건 새로운 계급 사회예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이것을 완화시키는 쪽으로, 지구환경을 보존하는 쪽으로,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 쪽으로, 평화가 도래하는 쪽으로, 개인이 행복한 쪽으로 나부터 우리가 함께 해나간다면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인류를 위해서나 얼마나 소중한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성지순례 오셔서 붓다가 2600년 전에 깨닫고 실험적으로 시도한 이런 일을, 붓다는 위대하다고 이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그분이 뿌린 씨앗을 우리가 가꾸고 수확하는, 그것을 우리가 이 세상에 실현하는 사람이 되자는 큰 원을 한번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 회향 법문을 하는 동안 날이 저물었습니다. 

 

열흘 동안 수행 생활을 하시고 오늘 이제 가사를 반납하게 되는데 수행 생활이 만만치 않았죠? 이렇게 수행 생활 체험한 것을 일상 생활 속에 적용해보면 그래도 자그마한 집이라도 있는 것이 고맙고, 세끼 밥먹는 것이 고맙고, 가족이 있는 것이 고맙고, 걸어다닐 수 있는 것이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맙게 생각하고 살면 행복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것으로 성지순례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일어나셔서 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드리고 또 법사님들에게 삼배를 하고 가사를 반납하겠습니다.“ 

 

해가 다 지고 컴컴한 저녁 6시 20분경 차량 및 조별로 각각 수계를 받았던 법사님들께 가사를 반납하면서 회향식은 끝이 났습니다. 

 


▲ 법사님께 가사를 반납하며

 

스님께서 웃으시면서 “법적으로 일곱번 까지는 출가를 거듭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순례단들 모두 웃었는데 가사를 벗을 때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려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석가족 청년들이 준비한 스님과 성지순례단 환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상카시아에는 전 인도에서 석가족이 제일 많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석가족 청년들은 스님께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며 스님께 합장 공경을 표했습니다. 어두워서 석가족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 부지에 석가족의 불교 교육을 위한 담마 센타를 지어주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카시아 스투파 위에 힌두 탬플이 있어서 석가족과 갈등이 있으므로 스님께서 이곳 부지에 부처님께서 하강하시는 모습으로 불상을 하나 지어주고 대중이 집회할 수 있는 큰 강당도 지어주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불사를 추진할 책임자가 없어서 지금은 조그만 사무실만 지어놓고 추진을 못하셨는데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진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석가족이 200만 정도 살고 있는데 대부분 힌두교이고 절도 없고 해서 스님께서 여기 석가족 집성촌 마을에 불상 점안식을 해주고 법회와 수련도 일년에 한차례씩 해오고 있으십니다. 스님께서는 순례객들에게 석가족 청년들의 활동에 후원과 관심을 당부하셨습니다. 스님의 당부를 듣고 순례객들 모두 십시일반으로 상카시아 석가족 불자 모임을 위해 후원금을 즉석에서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석가족을 대표해서 수바스지가 순례단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 성지순례객들을 가족처럼 반갑게 맞이해준 석가족 분들

 

“상카시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을 환영하러 석가족이 여기 올 수 있어서 너무 너무 기쁩니다. 밥과 계란, 짜이를 준비했는데 맛있게 드셔주십시오. 스님과 인연을 맺은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일년에 이렇게 하루만 뵐 수 있어서 너무 섭섭합니다. 한달만이라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웃음) 스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많은 불상을 보시하셨고, 저희들이 기도할 수 있게 기도집을 만들어주셨고, 이렇게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저희 석가족을 위해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 석가족들로부터 불교 포교의 바램을 듣고 기립박수로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는 순례객들

 

수바스지의 환영 인사에 순례단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고, 많은 분들이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하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 아마도 스님께서 발원하신 인도 불교 부흥 사업이 이 석가족 청년들을 시작으로 활짝 꽃피기를 바라는 순례단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환영식 후 순례단은 석가족 청년들이 준비해준 밥과 짜이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 석가족들이 준비해준 짜이와 밥

 

그리고 각 숙소로 나뉘어 들어가서 성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이제 인도성지순례는 후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짐은 점점 가벼워 지고 마음은 풍성해지는 듯 합니다. 내일은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로 유명한 아그라로 가서 자유일정으로 인도의 또다른 모습을 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