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다/인도성지순례

2015.1.18 인도성지순례 12일째 쉬라바스티

맑은물56 2015. 1. 26. 09:57

2015.1.18 인도성지순례 12일째 쉬라바스티

김은주 글 | 2015.01.20 02:30:07 올림 | 6,040 읽음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떠난지 12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성도 후 가장 오랜 기간 머무셨다는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에서 그 숨결을 느끼며 하루 종일 머뭅니다. 

 

기원정사 가까이에 있는 한국 절인 천축선원과 스리랑카 절에서 하룻밤을 묵은 순례단은 새벽 4시30분에 일제히 기상하여 5시에 법당과 법당 복도에 줄을 맞추고 앉아 새벽 예불을 함께 올렸습니다. 천축선원의 법당은 복도 끝에 위치해 있는데 내부는 하얀 벽면으로 정갈하고 포근한 분위기였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순례를 하며 불편함에 사로잡혀 바깥 경계를 탓하며 내 마음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 천축선원에서의 새벽 예불

 

아침 예불 후 500여명의 순례객은 가사를 정갈히 수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정문 앞에서 천불화현탑까지 한줄로 서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앞뒤 간격이 떨어지지 않게 왼발 오른발을 알아차리며 ‘행선’을 하면서 길고 긴 줄을 지어 새벽 안개를 가릅니다. 스님께서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한 눈 팔지 말고 오백 비구가 기러기처럼 걸어갔던 것처럼 천천히 한 시간 가량 정진하며 가자”고 하십니다. 

 

조금 벗어나니 도로가 나왔습니다. 어스럼한 불빛에 수행자들이 도로에 한줄로 길게 늘어선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간간이 트럭이 몇 대 지나갈 뿐 주변은 어둠이 자욱한 가운데 천불화현탑에 도착했습니다. 

 


 

동산 모양을 한 탑을 중심으로 우리 500여명 순례객은 석가모니 염불을 하며 스님을 따라 두 줄 세 줄 질서있게 탑돌이를 하는데, 이는 마치 바다를 가르는 날렵한 보트가 파도를 가르듯 멋지고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탑돌이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천불화현탑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곳 사위성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인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수행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자타장자 등 많은 분들이 ”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무언가 기적을 보여주셔야 이들에게 믿음이 생기겠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간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그들의 얘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셔서 아무날 아무시에 성 밖에 나오너라 하시고는 이 지점을 지정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이곳에 모였을 때 부처님께서 망고씨 하나를 이곳에 심어서 조금 기다리니까 싹이 트고 점점 자라서 나무가 큰 고목이 되어 꽃이 피고 망고가 주렁주렁 열렸다고 합니다. 조금 있으니까 그 망고가 전부 부처님으로 화해서 천 부처님이 동시에 출현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위성 사람들은 그제서야 부처님 법을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쉬라바스티를 상징할 때는 천불화현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법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얘기인데 인도의 종교적인 성향과 맞딱드려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이 초기부터 널리 알려진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성스러운 곳에 저희들이 왔기 때문에 탑을 향해 삼배를 먼저 하겠습니다.“

 

이어서 선 채로 탑을 향해 삼배를 하고 반야심경을 봉독하였습니다. 

 

순례단은 다시 그 정열 그대로 기원정사를 향해 도보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도중 어느덧 날이 밝아 자전거 탄 주민들도 보이고 형제인지 친구인지 모를 소년 둘이서 따라오며 꽃을 팔기도 했습니다.

 


 

가다가 Korea Temple 이라고 씌어진 간판을 지나갔는데 알고 보니 순례단이 묵었던 천축선원이었습니다. 양옆에 태극 모양의 돌이 눈에 들어오니 인도 불교성지에 한국 절이 있어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백명이 한줄로 길게 서서 기원정사를 향해 걷는 길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오백 제자들과 함께 사위성으로 걸식을 하러 가기 위해 이렇게 걸어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치 당시의 부처님 제자 중에 한 명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무변심 법사님의 낭랑하고도 맑은 목소리를 따라 한발 한발 계속 걷다보니 어느덧 서서히 기원정사가 가까워져 왔습니다. 

 


 

7시 30분쯤이되자 공원처럼 꾸며놓은 기원정사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례객들은 향에 불을 붙이고 석가모나불 정근을 하면서 드디어 기원정사로 들어갑니다. 500여명이 길게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질 않았는데, 긴 행렬이 기원정사 곳곳을 스님을 따라 물흐르듯이 밟아보며 부처님과 당시 제자들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부처님이 머무셨다는 자리에 세워진 ‘간디 쿠타’ 라고 하는 작은 탑을 바라보며 500여명의 순례객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섰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원정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여기까지 걸어오신다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 앞에 보이는 이곳이 부처님이 작은 초막에 머무셨던 ‘간다쿠티’ 자리입니다. 성도 후 3년 만에 수다타장자가 이 아름다운 동산을 부처님께 기증을 해서 이곳 기원정사에 부처님과 천이백오십명의 비구와 함께 머무셨습니다. 

 

아까 전에 우물을 하나 돌았는데 그것은 부처님이 드시던 우물입니다. 아난 존자가 그 물을 퍼서 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발을 씻을 물을 떠드렸다고 합니다. 

 

또 아까전에 직사각형으로 네모난 부분을 돌았는데 그 자리는 부처님이 행선하셨던 자리입니다. 열아홉 발자욱이니까 부처님의 보폭이 어느 정도이셨는지 한번 재어보면 됩니다. 편안하게 걷는데도 스물네 발자욱이 되면 부처님이 나보다 보폭이 크셨다고 생각하면 되고, 열일곱 발자국 밖에 안된다고 하면 부처님이 나보다 보폭이 적으셨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 동안 24안거를 사위성에서 보내셨는데, 그러니까 절반이 넘는 시간을 사위성에서 보내신 겁니다. 그 가운데 19안거를 이곳 기원정사에서 보냈습니다. 즉 이곳은 부처님이 가장 오래 주석하셨던 곳입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의 절반 가까이가 이곳에서 설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부처님이 머무셨던 자리를 향해서 먼저 삼배를 드리겠습니다.”

 

삼배를 정성껏 올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 예불을 올립니다.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셨다는 바로 이곳에서 예불을 올리다니 또한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이어서 스님께서 간절한 발원을 해주셨습니다. 

 

“저희 한국에서 온 정토불교대학생과 졸업생과 정토행자 대중 오백여 일동은 부처님께서 장기 주석하셨던 코살라국 쉬라바스티 사위성 기원정사에 두손 모아 합장하옵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면서 간절하게 발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장기 주석하시고 금강경이 설해진 이곳 기원정사 참배 인연 공덕으로 대중 일동은 다생겁래의 업장이 소멸하고 세세생생 보살도 행하기를 간절히 발원하옵니다. 

 


 

또한 우리가 태어난 대한민국에 회향하오니 이 인연공덕으로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병듦에서 벗어나고 갖가지 인권침해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복덕이 내리기를 발원하옵니다. 또한 남북 간의 전쟁이 없는 항구적 평화체제가 수립되고 한발 나아가 통일 대한민국을 발원하오며, 통일 대한민국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 협력하여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하옵나니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하늘의 모든 신들은 옹호하여 주옵소서. 

 

또한 저희들의 기원정사 참배 인연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세계는 평화롭고 세계 만민은 행복하여지이다. 인간 세상에 갖가지 차별을 떠나고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부처의 본성을 밝혀 해탈열반을 성취하기를 발원하옵니다. 또한 이곳을 참배한 인연공덕으로 조상 영가님들과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 함께 왕생극락하옵소서. 제불보살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을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륭팔부 모든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이어서 순례단은 모두 자리에 앉고, 스님께서는 기원정사의 창건 이야기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은 항상 그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머릿 속으로 그릴 수 있게 묘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벽돌 더미의 유적지가 곧 부처님 당시의 상황으로 금새 재현이 됩니다. 

 


 

“저희가 참배한 이곳은 여기 말로 ‘제따바나’입니다. 제따는 사람 이름이고 바나는 숲이란 뜻입니다. 즉 제따의 숲이란 뜻입니다. 제따를 한문으로 써서 우리식으로 읽으면 ‘기타’가 됩니다. 기타 태자의 숲인데 이것을 한문으로 옮기면 ‘기수급고독원’입니다. 그리고 ‘급고독’ 이란 말은 수닷타장자의 한문 이름입니다. 외로운 이를 돕는 자란 뜻입니다. 그래서 기타 태자의 숲인 ‘기수’에 ‘급고독’ 장자가 절을 지엇다고 해서 합하니까 ‘기수급고독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수급고독원을 줄인 말이 ‘기원정사’가 됩니다. 

 

이 절이 어떻게 지어졌느냐 하면요. 부처님께서 성도 후 3년 죽림정사에 계실 때 사위성에 사는 수자타장자가 사업을 하러 왕사성에 갔어요. 왕사성의 친구 집에 갔더니 몇 번을 불러도 안나와서 섭섭해 하고 있는데, 친구가 급히 나오면서 “내일 아침에 부처님과 대중들을 공양 초대를 해서 그거 준비하느라고 바빴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수닷타장자는 부처님의 법문과 그 행적에 대해 친구로부터 얘기를 듣게 됩니다. 친구는 들어가고 밤에 잠을 자는데 내일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고 하니까 잠이 오질 않는 거예요. 밤을 새고 안개가 자욱한 새벽녘에 숲속을 산책하는데 저 나무 밑에 수행자가 앉아 있는데 너무나 거룩해 보이는 거였어요. 그래서 다가가서 절을 하면서 “부처님이 아니십니까?” 하니까 그렇다고 하시면서 “장자여, 내 당신이 오기를 이미 오래 기다렸소” 라고 하십니다. 장자는 부처님께 설법을 청했고 그 설법을 듣고 장자는 마음의 무지가 다 사라지고 법열의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저희 나라 사위성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듣기를 원합니다” 하고 요청하니 침묵으로 승낙하십니다. 

 


 

장자는 기쁜 마음으로 사위성에 돌아와서 3개월 후에 부처님이 오실 것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죽림정사처럼 성으로부터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이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소유주가 이 나라의 기타 태자였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찾아가서 “이 숲을 저에게 파십시오” 한 거예요. 그런데 이 기타 태자가 기분이 좀 나빴나봐요. ‘이게 돈 좀 있다고 그러는가’ 싶어서 “안 판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자타장자가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하니 태자는 파지 않을 심상으로 “금화를 깐다면 그만큼 팔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자는 창고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금을 가져와서 이 땅에 깔았습니다. 그런데 그 양이 입구에 좀 깔고 마는 정도 밖에 안되었어요. 이 소식을 듣고 태자가 깜짝 놀라 가보니 진짜 금을 깔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는 친구들에게 다 연락해서 금을 빌려와서 깔고 온갖 방법으로 금을 깔려고 했어요. 그래서 기타 태자가 “도대체 이 땅을 사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고 묻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자신이 만난 부처님에 대해서 주욱 얘기를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태자가 감동을 해서 “그렇게 좋은 일이라면 나머지 땅은 내가 기증을 하겠소”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기타 태자의 이름을 따서 제따의 숲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제따의 숲이라고 하면 급고독 장자의 노고는 빠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따의 숲에 급고독 장자가 절을 지었다고 해서 ‘기수급고독원’ 이를 줄여서 ‘기원정사’라고 한 겁니다. 많은 조각과 그림에 기원정사의 창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수닷타장자는 부처님을 만나기 전에도 자선 사업가로서 좋은 일을 많이 해왔으며, 부처님을 만난 이후에는 재가 신자였지만 10대 제자에 버금가는 역할을 했다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닷타장자처럼 10대 제자에 버금가는 역할을 한 재가 신자로 왕사성의 지이바카, 사위성의 베사카 부인도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승단을 운영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해서 경전에도 수없이 언급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 사위성에 있었던 다양한 교화 사례를 재미있고 실감나게 들려주셨습니다. 먼저 왕이 백성을 마음대로 죽이고 하찮은 물건처럼 취급하던 시대에 프리세나짓왕이 찾아와서 훌륭한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서 부처님께서 “백성 사랑하기를 외아들 사랑하듯이 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십시오” 라고 대답해주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청와대에 찾아가서 이런 얘기를 하기가 어려운데 절대 왕정의 시대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니 부처님의 사회적 인식과 그 당당함에 깊은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기원정사는 45안거 중에 19안거를 부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수많은 설법이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교화 사례들을 주욱 들려주셨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듣듯 눈을 감고 수신기로 스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 속으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앙굴리말라를 교화한 이야기, 눈먼 비구를 교화한 이야기, 병든 비구를 교화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경전을 통해 만나고 스님의 생생한 법문을 통해 다시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비난이나 위협도 많았다고 합니다. 육사외도의 한 종파가 자기 신자의 딸에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법문을 하고 있는데 가서 임신한 배를 보이면서 “당신은 제자들만 돌보고, 당신 애기가 낳을 때가 다 되어가는데 왜 돌보지 않느냐?” 고 하면서 난처한 상황을 만들게 한 이야기, 아주 예쁜 처녀에게 저녁만 되면 정사 쪽으로 걸어가게 하고 아침만 되면 정사에서 걸어나오게 해서 그 처녀를 실종시킨 다음 기원정사에서 비구들이 성추행을 하고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려서 비구들이 탁발을 하나도 못 얻어먹게 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 왕사성에서 “어제는 누구의 아들을 뺏어가더니, 오늘은 누구의 남편을 뺏어가더니, 내일은 또 누구의 제자를 뺏어갈고?” 이런 노래를 부른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비난을 받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여래는 다만 진리의 길을 갈 뿐이다. 그 진리의 길을 듣고 귀의하지 않는 자 누가 있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우리도 늘 오해를 받고 비난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때 우리는 늘 붓다를 생각해야 합니다. 붓다처럼 위대한 분도 비난을 받고 곤궁에 처했는데 우리 같은 수준에서 뭐 그렇게 억울해할 필요가 있겠어요?” 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비난이나 오해를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수용할 것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병든 비구를 찾아가서 위로해 주시면서 정진도 해야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도 늘 함께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수행자들이 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지 그 근거가 되는 이야기라며 자세히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대만의 자재공덕회가 이런 사상을 기초로 일천만명의 봉사자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는 사례를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곳 기원정사에 계실 때 천이백오십명이 한 줄로 서서 골목골목 들어가서 차례로 밥빌기를 마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셔서 밥을 먹고 발우를 씻고 옷을 접어두고 명상에 들었는데, 그 때 부처님의 하루 일과를 보고 장로 수보리가 일어나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금강경’도 바로 이곳 기원정사가 배경이라고 강조하시면서 다함께 그 내용이 되는 경전을 함께 독송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500여명의 순례단은 세 번에 걸쳐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경전 독송을 마치면 다시 스님의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니룻다가 “눈은 잠을 먹이로 하는데, 해탈열반은 정진을 먹이로 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잠을 자지 않고 정진을 하다가 눈이 멀었지만 천안통을 얻었다는 이야기, 마하가섭 존자가 한번 지적을 받고 소박하게 살아서 두타 제일이 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법에 귀의한 사람들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도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암나빨리는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왕자들이 천금을 준다고 했지만 부처님께 공양 올릴 기회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그 당당함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또 절약하는 승가, 계급차별을 타파한 이야기,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에게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해서 해방시킨 아름다운 모습, 손녀를 잃고 슬퍼하다가 부처님의 법을 듣고 밝아진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임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문답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의 화제를 바꾸면서 스스로 모순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이렇다 저렇다라고 답을 하는 것이 아니고 너가 그렇다면 이렇게 되겠네 하시며 그 모순을 바로 깨치게 해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어느날 바라문의 집에 탁발을 하러 갔더니 그 바라문이 막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은 빙긋이 웃으셨어요. 우리라면 입씨름을 했겠지만 ”왜 웃나?“고 따지는 말에 부처님께서는 화제를 딱 바꾸면서 ”당신 집에 손님이 가끔 옵니까? 그 사람이 선물 사올 때가 있죠. 선물을 사왔는데 그 선물을 안 받으면 그 선물이 누구 것이요?“ 라고 묻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냐?“고 답하자 부처님은 ”당신이 지금 나한테 욕을 선물했는데 그 욕을 내가 안받으면 그 욕은 누구 것이요?“ 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 때 그 바라문이 탁 깨닫고 부처님을 극진히 모셨다고 합니다. 이 모습만 보면 어떻습니까? 저 두 사람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기에 보자마자 공양을 올리나 싶죠.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전생과 내생 이야기를 하는데 삼생이 지금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하는 것이 내생에도 영향을 주지만 전생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 바라문이 욕을 한다고 같이 맞대응을 해서 욕을 했으면 삼생이 악연이 되는데, 부처님은 빙긋이 웃음으로해서 삼생이 선연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의 길은 먼 것이 아니고 상대가 욕을 할 때 빙긋이 웃어주면 삼생의 업이 다 녹는 겁니다. 그런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면서 다음 경전독송을 해보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며 다시 경전독송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를 떠올리며 명상의 시간도 가져봅니다. 

 


 

명상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이렇게 화제를 바꾸어서 자신의 모순을 깨닫게 한 부처님의 교화사례를 다양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이어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별로 모여 앉아 점심 공양도 하고,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양을 하고 있는데 주위에 원숭이들이 곳곳을 습격해서 먹을 것을 뺏어갔습니다. 어떤 분은 원숭이가 밥을 담은 락앤락 통을 뺏어 들고 나무 위로 달아나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또 스텝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은 곳에는 원숭이가 간식이 가득 든 봉지를 들고 달아나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원숭이들은 사탕봉지를 뜯어서 사탕을 하나씩 까서 먹기까지 했습니다. 

 


▲ 락앤락 통을 뺏어간 원숭이

 

원숭이에게 음식을 뺏기기는 했지만 순례객들은 모두 다 이런 상황을 재미있어 했습니다. 더군다나 바이샬리에서는 원숭이들이 부처님을 알아보고 꿀공양을 올렸다는데 이런 원숭이들이 그렇게 했다니 참으로 희귀한 일이였구나 다시한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머물렀던 간다 쿠티, 부처님이 드셨던 우물, 부처님의 제자들이 머무셨다고 하는 곳곳의 정사터, 부처님을 찾아온 손님들을 접대했던 코삼비 쿠티, 부처님이 행선하셨던 곳,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부처님을 대신해서 생각하라고 아난 존자가 보드가야에서 가져온 보리수 나무 등에 대해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곳곳을 둘러보며 기원정사에서의 부처님의 체취를 느껴봅니다. 

 


▲ 간디쿠티 위에 올라가 기념 사진을 찍는 순례객들

 


▲ 부처님이 행선을 하셨다는 곳을 직접 거닐어 보며

 


▲ 아난다가 부처님께 드릴 물을 떳다는 우물

 


▲ 아난다가 보드가야에서 가져왔다는 보디 트리 

 

휴식 중간에 공양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쉬시지도 않으시고 “그래도 인도에 왔는데 스님과 개별 사진을 다들 찍고 싶다고 하니까 시간을 드리겠다” 고 하시면서 일대일로 스님과 개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내주셨습니다. 500여명이 한명씩 나와 사진을 찍어야 해서 일인당 3초씩 “하나, 둘, 셋” 하면 나와서 찍고 들어가고 하는 식으로 1시간이 넘게 사진만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경전독송과 법문 시간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인격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더욱더 빛나는 것은 나쁜 이를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하셨다”고 하시면서 춘다의 공양과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를 대했던 부처님의 태도, 앙굴리말라의 교화이야기 등을 들려주시며 붓다의 위대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99명을 죽인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닫고 귀의를 한 후에 하루는 걸식을 나갔어요. 어떤 집에 걸식을 하러 갔는데 앙굴리말라가 오니 산모가 이를 보고 놀라서 기절을 하고 쓰러졌어요. 그래서 앙굴리말라가 부처님께 돌아가서 ”내가 이미 지난 악행을 참회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아힘사 비구여,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한번도 살생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해라. 그리고 “당신이 출가한 이후로는 그런 적이 없지 않소?” 이렇게 말씀하지자 앙굴리말라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말을 하니 그 여인이 정신이 들어서 애기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괴력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고 온순한 수행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다시 돌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이제 앙굴리말라가 나타나도 도망을 가지 않고, 전부 돌멩이를 가져와서 집어 던졌습니다.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시내에 탁발을 하러 갔다가 무수한 돌멩이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결국 앙굴리말라는 부처님 품에서 ”저는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하면서 순교를 했습니다. 이렇게 괴력을 가진 사람이 불법에 귀의하게 되면 자기가 죽어도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잖아요. 우리는 자기가 위험하면 괴력을 드러내서 사람들을 다 도망가게 해버렸을 겁니다. 앙굴리말라에게는 죽는 것보다 불법이 더 우위에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머리를 내리쳐서 겸손하게 만들었고, 또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를 주셨고,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위로하고 격려해서 자신감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여러 모습을 스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이곳은 금강경이 설해준 곳이기 때문에 한국 불자들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곳”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국에 돌아가서 아함경을 비롯해서 금강경을 꼭 공부해 볼 것”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성지를 참배할 때마다 예불문을 계속 되뇌였는데 스님께서는 예불문의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직접 쓰신 부처님의 삶을 묘사한 발원문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원문을 다 읽고 스님께서 “불자로서의 자부심을 좀 느껴요?”라고 물으셨고 대중은 힘차게 “네!”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불법을 많이 알기는 하는데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하시며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인생은 성공한 것이예요” 라고 덧붙이시고, “자기를 아끼며 살자”는 말씀으로 법문을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오후 3시 무렵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순례단은 가사를 수하고 한 줄로 서서 사위성을 향해 갑니다. 

 


 

앙굴라말라의 탑과 수닷타장자의 탑이 마주보고 있는 사위성에 도착하여 앙굴라말라의 탑을 먼저 한바퀴 돌고 계속해서 수닷타장자탑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앙굴리말라의 탑은 아마도 앙굴리말라가 돌멩이를 맞고 쓰러진 곳에 세워진 곳이 아니겠냐며 스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앙굴리말라의 탑

 

그리고 수닷타장자의 탑 주변을 둘러싸고 삼귀의 반야심경을 올렸습니다. 재가신자로서 10대 제자만큼이나 큰 공로를 하신 그 마음을 생각하며 탑을 향해 정성껏 합장을 했습니다. 

 


▲ 수닷타장자의 탑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고 화장실도 다녀온 후 모두 천축선원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도착하니 오늘 저녁공양은 라면이라는 유수 스님의 공지가 나옵니다. 오랜만에 나온 특별식에 모두들 기뻐하면서 공양간으로 향했습니다. 라면을 후후 불어서 먹는데 추운 날씨 긴 여정에도 모두 활기차고 환한 모습입니다.

 


▲ 천축선원

 

오후 6시 10분, 공양 후 천축선원 야외에 모셔진 불상 앞에서 야단법석이 열렸습니다. 천축선원 주지스님이신 대인 스님께 법문을 청하여 들었습니다.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시는 법륜 스님과 정토행자님들이 한국 불교의 진정한 대안이 아닌가” 하시면서 대인스님 또한 정토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감동적인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 천축선원의 대인스님

 

이어서 법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법문 내용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가 무엇인가 많은 불자들이 궁금함이 많은데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간에도 서로 벽이 있죠.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나라 모든 인종 모든 계급, 이런 칸막이를 무너뜨리고 더 높은 차원에서 통찰하는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즉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진리의 요소가 있으면 수용을 해가는 그런 가르침인데 어찌 불교 안에 소승이니 대승이니 칸막이를 가르고 우열을 논하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승은 살생만 안하면 된다, 도둑질만 안하면 된다, 사음만 안하면 된다, 거짓말만 안하면 된다는 이 미니멈에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죠. 그러나 소승의 장점은 그건 지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대승은 살생 안하는 것이나 도둑질 안하는 것으로 부처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고, 가난한 이를 위해서 베풀고, 거짓말 안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알려주고, 욕설 안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자비롭게 위로해 주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라는 것이 원래 대승의 정신이었습니다. 소승이 미니멈에만 만족하기 때문에 그 한계를 지적하고 더 적극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대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대승이 되려면 소승 수행을 다 지키고 대승을 해야 합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해탈 즉 성불입니다. 자기가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만 괴롭지 않으면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대승의 수행법은 그 첫 번째가 보시바라밀, 베풀어라는 것입니다. 대승은 어느정도로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느냐면 그 표현이 ‘비록 내가 성불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중생을 다 구제해야 되겠다’ 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대승이 잘못된 것은 자기 정진을 안한다는 겁니다. 남을 다 돕지 못해서 괴롭고, 일을 벌려놓고 수습을 못해서 괴롭고, 불쌍한 사람을 보고 불쌍해서 괴롭고, 이렇게 세상에 좋은 일을 하지만 스스로 괴로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수행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대승의 문제점은 미니멈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멕시멈의 베푸는 원은 있는데 미니멈의 자기 원칙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세속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 대승불교인들이 깊이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괴롭지 않는 경지로 가는 수행은 기본입니다. 그것을 딛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의 관점을 놓치면 불평불만이 생깁니다. 수행의 관점을 놓치면 우리가 이렇게 순례를 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요. 우리가 이렇게 불편을 감수하면서 순례를 하는 이유는 그 미묘한 법을 가르치셨던 그 분에 대한 존경 때문에 순례를 하는 것이거든요.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에 이 세상에 출현해서 인간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이 미묘한 법을 설한 그 분을 존경해서 나도 그분처럼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하고, 또 이런 사람이 직접 있었는지 정말 이런 법문을 설했는지 이렇게 직접 확인하러 다니는 겁니다. 그런데 다니면서 불평불만을 하고 다닌다면 좀 문제겠죠. 불편하면 짜증이 나게 되어있는 우리의 이 업식을 보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잖아요. 그런데서 우리는 수행자로서 순례하는 것이지 여행객이 아닙니다. 스님도 이렇게 다니면 불편해요. 그러나 이 불편이 불만이 되면 안됩니다. 나도 모르게 불만으로 나타나면 즉시 되돌이키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대승이니 소승이니 너무 나누면 안됩니다. 다만 대승은 소승이 갖는 한계를 극복해보려고 일어난 새로운 운동입니다. 그래서 소승인 테라바타보다 우리가 조금 더 나아가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테라바타 보다 더 나은 것이 별로 없어요. 이론적으로만대승을 주장하지 실제 삶이 미니멈의 인격을 안 갖추고 있습니다. 대승이 대승답지가 못하죠. 당연히 선불교도 대승불교가 갖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나온 불교인데 이것 또한 선불교가 선불교답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이 선불교인데 지금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테바바타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기본을 조금 더 다지자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발 한발 나아가서 대승의 종지와 선의 종지를 이어나가자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다는 이치가 일치가 안되면 대승은 세속화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서 우리는 늘 수행자로서의 미니멈인 기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미니멈을 딱 잡고 남을 손해 끼치지 않는 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수행자로서의 기본을 하고 다음으로 보디사트바로 한발 더 나아가는 자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걸 순례를 하면서 다시 돌아봤으면 해요.”

 

스님의 법문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500명 순레객들은 일찍 취침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내일 상카시아가 8대 성지 순례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은 새벽 3시20분에 기상하여 4시에 상카시아로 출발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