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넓다/인도성지순례

2015.1.20 인도성지순례 14일째 아그라

맑은물56 2015. 1. 23. 17:39

2015.1.20 인도성지순례 14일째 아그라

배재휘 글 | 2015.01.21 13:37:49 올림 | 4,996 읽음

 

안녕하세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성지순례를 떠난지 14일째 되는 날입니다. 어제 스리랑카절, 미얀마절 등 다섯 개의 숙소에 흩어져 묵었던 오백 대중은 새벽 3시 20분에 기상하여 4시 정각에 아그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제 빡빡한 순례일정에 익숙해져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싸는 바람에, 오히려 드라이버지(기사님)들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너무 일찍 버스에 탑승하지 말라고 스님께서 주의 방송을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제로서 부처님이 머무신 8대 성지를 모두 참배하고 가사를 반납한 순례객들은 교복을 벗은 학생들처럼 마음이 가볍습니다. 오늘은 재가수행자로서 다시 맞는 첫날이기도 하니까요. 막바지의 순례길, 그래서인지 버스 안에서의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는 더욱 간절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무굴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황제 샤 자한 부부의 무덤인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를 둘러보고 자유시간을 가진 뒤, 성지순례 평가회와 만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 강가강의 한 지류인 야무나 강

 

새벽예불 후 버스에서 잠들었던 순례객들은 짙은 안개와 밤이슬이 내려앉은 들판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이른 8시 쯤 타지마할 동쪽 주차장에 도착하여, 어제 숙소에서 해놓은 전기밥솥의 밥과 반찬으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식사시간에도 스님과 법사님들은 공양도 거른 채 주차장 한켠에서 선 채로 회의를 하셨습니다. 대중들이 공양을 마치자 스님께서는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에 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성지순례가 아니고 관광입니다. 이곳 아그라는 인도 무굴 제국의 수도였어요. 무굴 제국의 여러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무굴 제국은 이슬람 왕조 국가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티무르의 후예들인데,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인도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했어요. 인도 대륙은 역사적으로 세 번 정복이 되었어요. 첫 번째는 아리안족이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내려와서 인도를 지배하면서 브라만 문화를 만들었고요. 두 번째는 1세기 경에 쿠샨 왕조도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내려와서 인도 대륙을 지배했어요. 세 번째는 이슬람이 내려와서 인도 대륙을 지배한 것이 무굴 제국이예요. 

 


 

무굴 제국은 1530년에 시작이 되어서 1600년대에 가장 번성을 했고, 1700년대에 들어가면서 쇠락하기 시작해서 1800년대 후반에 망했어요. 여기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1600년대의 유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니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조선시대 쯤 됩니다. 

 

무굴 제국은 바부르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후마윤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건국이 되는데 그 아들인 악바르 대제 때 전 인도를 통일합니다. 다음 황제는 자한기르이고 그 다음에 샤자한에 이르는데, 악바르 대제는 인도 대륙을 지배하면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 여자를 황후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그라 포트에 가면 부인이 힌두 절을 성 안에 지을 수 있도록 종교 융화책을 썼습니다. 무슬림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사람은 전 인도를 통일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한기르는 엄마를 인도 사람으로 두다 보니까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좀 유화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황제인 샤자한은 부인이 애를 열네명째 낳다가 죽었어요. 그 부인을 위해서 세운 무덤이 타지마할입니다. 너무 부인을 사랑해서 그렇게 무덤을 아름답게 지은 거예요. 그 강 건너편에 자기 무덤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서 영원히 사랑을 나눌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무덤을 짓는데 국고를 너무 많이 낭비해서 결국 아들이 참다 못해 나라가 망하게 생겨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무덤 지으려던 그곳에 가두어서 유배시킵니다. 그 아들이 아우랑제브왕입니다. 그런 사랑과 비극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타지마할 무덤을 짓는데 전문 기술자가 2만명 있었다고 해요. 왕이 “새로 짓는다면 이것보다 더 잘 지을 수 있느냐?” 물으니까 기술자들이 “새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다”고 말했데요. 그래서 그 2만명의 손목을 다 잘라버렸데요. 다시는 이런 것을 못 짓도록. 그런 비극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한번 가보시는데, 안 가보면 후회하고 가보면 별 것 없고 그래요. (웃음) 

 

타지마할은 안에 들어가보면 흰 대리석을 파서 거기에 온갖 꽃무늬로 보석을 박아 놓았어요. 위에 무덤이 아주 아름답게 되어 있고 지하에 진짜 무덤이 있어요. 도굴할까 싶어서 위에 아름다운 관은 가짜이고, 지하에는 아무 무늬 없는 진짜 관이 있어요. 아그라 포트는 엄청나게 큰 성인데 현재는 절반만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성문을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면 돼요.”

 

아들이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라즈길에서 스님께서 들려주신 빔비사라왕이 그의 아들 아자타삿투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권력을 가래 같은 것이라 하던 부처님의 말씀도 떠올려봅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아그라에 대해 안내만 해주시고 성지순례 평가회 준비를 위해 숙소로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순례객들은 두 팀으로 나눠 타지마할로 갈 팀은 조별로 릭샤를 타고 출발하고, 아그라 포트로 갈 팀은 버스에 탑승해 출발했습니다. 타지마할은 검색이 엄격해 주머니 속에 있는 사탕도 반입이 불허 되어 사탕을 입에 나눠 먹으며 입장했습니다. 

 


 


▲ 타지마할

 

안개 속에서 드러내는 타지마할은 사진 속의 모습보다 아름답고, 두 부부의 사연 때문인지 슬픔이 안개 속에 부서지는 듯 했습니다. 만약에 죽은 후에 남편이 저런 건물을 지어주면 행복하겠냐는 미혼의 한 법우님의 말에 한 보살님은 단칼에 “지 좋아서 하는 일에 죽은 내가 행복할 게 뭐가 있겠어요?” 라고 답해서 웃으며 타지마할을 둘러보았습니다. 

 


▲ 아그라 포트

 

그리고 아그라 포트로 가서 산책하듯이 빙 둘러보았습니다. 순례객들은 조별로 모여 즐겁게 사진을 찍으며 친목도 도모하고 여유도 즐겼습니다. 몇몇 순례객들은 “성지순례할 때는 눈을 감고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 마음이 잘 알아차려지고 차분해져서 좋았는데, 관광을 하니까 바깥으로 눈이 팔려서 피곤하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 쇼핑센터

 

오후 2시30분, 관광과 쇼핑을 마친 순례객들은 마지막으로 묵을 숙소인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짐이 검색대를 통과하느라 혼잡했지만 검색대를 통과하는 호텔은 처음 자 본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짜증내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쇼핑하면서 들떴던 마음을 내려놓고 수행자로 돌아온 듯 했습니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은 대중들은 3시에 호텔 1층의 큰 홀에 개인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처님 당시의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흙과 풀들 위에 깔았던 매트를 네모반듯한 대리석 홀 위에 까니 퍽 어색합니다. 그러나 성지순례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 자리에 대한 감동이 교차하는 듯 순례객들이 스님께 올리는 청법가는 어느 때보다 우렁찹니다. 제 26차 인도성지순례 평가회는 법륜 스님의 법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제26차 인도성지순례 평가 법회

 

스님께서는 어제 버스 안에서 차량별로 나누기를 할 때 채널을 바꿔가며 모니터링을 하셨는데, ‘너무 많은 곳을 돌아봐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부처님의 생애를 룸비니부터 순서대로 순례했으면 덜 헷갈렸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며, “그런데 부처님이 인도 전역을 왔다갔다 했는데 그걸 다 왔다갔다 하려면 45년이 걸려요.” 라고 하시고는 “그래도 순서가 덜 헷갈리게 잡은 게 이 정도”라고 하자 순례객들은 한바탕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생애를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2시간에 걸쳐 촘촘히 정리해서 복습해주시고 이어 지난 며칠간의 순례 일정에 따라 순서대로 복기해주시니 순례를 다시 다녀온 듯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풀밭에서, 석산에서, 탑 앞에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강당에서, 버스 안에서, 밤낮으로 펼쳐주셨던 법문을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놓쳤을 새라 살뜰히 챙겨주시는 스님의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각 성지에 얽힌 중요한 교화이야기와 신화적 표현 속에 숨은 인류문화사적, 상징적 의미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룸비니에서 부처님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왕족출신을 상징하고, 일곱 발자국을 걸은 것은 육도윤회에서 한걸음 나아가 해탈열반을 상징한다는 것,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뜻을 의미한다는 것,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서 혼란스러웠던 인도 사회를 세속적으로 다스려줄 전륜성왕과 가치관의 혼란을 잡아줄 붓다의 출현을 희원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카필라성에서 두 스승님에게 받은 교육이 왕이나 브라만을 교화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는 바탕이 되었음을, 사문유관을 통해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같이 행복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시혜적 자비’가 아닌 ‘자기화된 자비’를 보여주셨음을, 당대 육사외도 등의 출가사문은 인도의 전통사상에 반대하는 비주류였음을, 히말라야산 아래 카필라성의 지리적 환경이 뒤가 높고 앞이 트여 심리가 안정된 심성을 형성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 왕위를 버림으로서 기득권을 포기하고, 머리를 자름으로서 기존의 가치관을 버렸다는 것, 고행하는 이들을 보면서 복진타락의 한계를 깨닫고, 빔비사라왕과의 일화에서 왕위를 가래에 비유하며 권력을 버린 이야기, 전정각산에서의 6년 고행에서 욕망을 따르는 거나 억압하는 것 모두 욕망에 대한 작용 반작용에 불과함을 알고 악 쓰고 참는 수행이 아니라 편안한 상태에서 미세한 것을 알아차리는 중도의 길을 가셨음을, 다양한 교화사례를 통해 재가자도, 여성들도 모두 수행해서 해탈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이야기 등을 구슬에 실을 꿰듯 찬찬히 꿰어주셨습니다.

 

 

스님은 여성과 관련된 설법을 순례 중에 빼먹으셨다며 연화색녀 교화사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보름 동안 바라나시부터 어제 샹카시아까지 순례한 공간들을 모두 훑어주시니 복잡하게 얽혀있던 지난 일정들이 환하게 정리되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다시 압축적으로 체험한 것 같아 환희심과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성지순례를 마치며 이제 더 이상 껄떡거리지 말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바꾸자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정리가 좀 돼요? 성지순례를 하면서 바깥으로 보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이 참 많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죠. 그러니 첫째, 이제 더 이상 껄떡거리지 말고 있는 것만으로도 풍요롭게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보세요. 둘째, 조금이라도 나눠가져야겠다는 마음을 좀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껄떡거리지 않으려면 가치관이 바뀌어야 해요. 검소하게 살고 겸손하게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해요. 그래야 당당해질 수 있어요.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 버리고 출가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항상 지금 누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부처님보다 더 많이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하면서도 늘 괴로워하는데 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 인생의 행복이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제 돈에 너무 껄떡거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화장하지 마라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은 하지 마라는 것이예요. 머리를 손질하지 마라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라는 겁니다.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입으면 되지 옷으로 너무 폼 잡으려고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열등의식이 있으니까 자꾸 옷으로 커버하려고 하고, 얼굴로 커버하려고 하고, 머리 모양으로 커버하려고 하고, 큰 집으로 커버하려고 하고, 차로 커버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해봐야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몸둥이도 내 것이 아닌데 그것이 어떻게 내 것이 될 수 있겠어요? 

 

이렇게 헐떡거리며 살면 죽을 때가 되어서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법에 귀의함으로해서 삶의 자유와 행복을 얻어야 되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현대 문명이 갖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그 길에 우리가 서 있어야 합니다. 

 

성지순례를 마치셨으니 이제 법에 귀의하는 불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탈 열반을 수행의 목표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도 새로운 희망이지만 이런 방향으로 살면 우리 인류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그렇게 해야 환경문제도 해결되고, 양극화문제도 해소되고, 계급차별도 해결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좀 더 앞서가는 문명을 만드는 선진적인 사람이 되자는 발원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불교가 최고야’, ‘불교 믿으면 부자가 된다’ 이런 신심이 아니라 법의 이치를 깨닫고 삶이 좀 차분해져서 좋다고 들뜨지 않고 뜻대로 안된다고 가라앉지도 않고 거기에 빠지지 않는 여여한 삶을 우리가 살아갔으면 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습니까? 옛날에는 불법을 공부하려면 머리 깍고 스님이 안되면 접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직장 다니면서도 불교 공부할 수 있지, 결혼하고도 공부할 수 있지, 이렇게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공부가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재산을 다 버려라 하는 것도 아니고 좀 껄떡거리지만 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자랑이 되는 그런 불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발심이 되면 이 보름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돈 삼백만원이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술먹고 옷사고 낭비할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돈 축에도 안들어가는 액수잖아요. 앞으로 평생 껄떡거리면서 보석 사고 화장품 사고 좋은 술 사고 비싼 향수 뿌리고 하는데 쓸 돈은 죽을 때까지 수십만 달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성지순례 왔다 간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버신 거예요. (웃음) 

 


 

인간적으로 따지면 밥도 똥밭에서 먹고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덜덜덜 떨면서 다니는 것 보면 마음이 안되었어요. 모두 집에 가면 마나님이고 사회에서는 목에 힘주고 다니는 분들인데 이런 숙소에 재우고 오라 가라 하는 것이 미안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정에 끄달리면 제대로 가르쳐주질 못해요. 그러나 인간적으로 보면 좀 미안해요. 나이 오십이 넘어서 스님한테 야단 맞아 가면서 다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집에 가면 다 자기가 왕인데... (웃음) 그런데 우리 인생의 행복을 위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면 저 같은 사람이 이렇게 야단을 치고 구박을 안 하면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요? (웃음) 

 


 

대구에 있는 어떤 분은 남편이 죽고 굉장히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성지순례 한번 왔다가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이렇게 느끼고 애들 셋을 혼자서 키우는데 아무 열등의식이 없이 아주 당당하게 키웠어요. 그래서 저를 만나면 늘 “저는 온전히 성지순례 다녀온 덕택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분이 있어요. 여러분들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삶이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저의 역할은 마치겠습니다.”

 

대중은 그동안의 고생이 다 풀린 듯 박수를 치며 끄덕끄덕합니다. 모두들 스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환호를 보내었습니다. 

 

법문 후에는 각 조별로 나누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조별 나누기 후 6시 20분부터 전체 나누기가 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차량별로 한명씩 13호차부터 소감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소감문에는 순례 기간 중에 느꼈던 감상과 순례 기간 중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나누어 발표하였습니다. 

 


▲ 소감문 발표 시간

 

한 발표자는 순례기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울먹이기도 하였는데 순례객들은 발표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신 박수로 열렬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아마 보름 동안 동고동락한 경험이 서로 공유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 겁니다. 

 

막내라는 이유로 조장을 맡았지만 일의 흐름을 몰라 헤매었는데 조원들의 도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는 분, 캘커타에서 구걸하는 아이들과 병든 노인들을 보며 IT강국 인도에 대해 화가 났으나 2600년 전 수행자들처럼 행선을 하고 정진하다 보니 앞으로 가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자등명 법등명하며 여여한 삶을 살겠다고 발원하셨다는 분, 법륜 스님의 크신 사랑에 힘입어 8대 성지를 모두 참배하게 된 공덕에 감사하고 이를 모두 중생에게 회향하며 소승의 기본원칙에 충실하여 대승으로 나아가겠다는 분, 부처님이 춘다를 위로하시는 마음에서 자신도 위로 받으셨다는 분, 부처님이 설법하셨던 장소에서 그 경전을 독송했던 매일매일이 감동이었고 오백 대중과 함께 해서 더욱 여법하고 장엄했다는 분, 업식대로 짐을 많이 싸가지고 와서 고행을 했으나 다 보시하고 가방이 반으로 줄어 기쁘고 내 꼬라지를 볼 수 있어 좋았다는 분, 바이샬리에 비구니 절을 세우는 것에 대한 법륜 스님의 원에 대해 생각해보시게 되었다는 이번 순례에 함께 하신 비구니 스님 등 다양한 소감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분은 꼭 해야 한다고 추천받아 발표하신 고정석님의 소감문 일부를 소개합니다. 

 


 

“부처님이 이루신 것은 없고, 다만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큰 서원이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이루신 것을 보고 많이 감탄했는데, 인도에 와서 보니 법륜스님이 이루신 것들이 생각보다 더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스님 자신은 이루신 것이 없고, 다만 커다란 원을 세우고 현재에 깨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실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스님의 서원과 아름다운 마음들이 얽히고 설키여 이루어낸 많은 일들을 보며 저 또한 지금 이 순간 깨어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단의 소감을 다 들으신 후 간단하게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내일 끝나면 고생했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자발적 고생은 고생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자발적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누가 회사 직원 훈련을 이렇게 시켰으면 어떻게 될까요? 월급을 주고 이렇게 해도 굉장히 불평이 많이 나오겠죠? 군대 훈련을 이렇게 시켜도 불평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고행과 고문의 차이는 고문은 타의에 의해서 하기 때문에 상처가 굉장히 많이 남고, 고행은 스스로 행하기 때문에 통증은 똑같은데 지나놓고 보면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수행은 자발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성지순례도 자기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은 아마 좋았을 거예요. 그런데 누가 가라고 해서 왔거나 멋 모르고 왔거나 하는 분들은 똑같이 힘든데도 마음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성지순례 가는 사람들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세요. “거기 절대로 가지 마라. 갈려면 고생을 각오하고 가거라” 이렇게 얘기해 줘야 아주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하게 되는데, 편안한 해외 여행 오듯이 오면 본인이 괴롭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괴롭히려고 이런 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가보라고 너무 권유하지 마세요.”

 

그리고 똑같이 돈을 내고 왔는데 차장들은 특별히 소임을 더 맡아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모두 일으켜 세우고 크게 박수를 쳐주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박수를 안 쳐주면 공덕이 쌓이기 때문에 박수를 쳐주어서 공덕을 까먹게 해야 돼요. 공덕도 많이 갖고 있으면 무거우서 안돼요.” 하셔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수고한 조장들도 모두 일으켜 세워서 “공덕을 까먹게 해주자”라고 하셔서 박수를 일제히 쳐주니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되고 평가회장은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 박수 받는 차장님들, 조장님들

 

스님은 어제 저녁에 만난 석가족들에 대해서도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석가족들의 저녁공양을 받은 후 대중들이 낸 보시금이 7만 루피가 되었다며 석가족에게 잘 전달했다고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석가족들은 인도에서 힌두교라는 바다에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존재들인데 스님께서는 담마 센터를 세우고 큰 불상을 세워 이를 방편 삼아 위축된 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불자라는 자긍심을 길러주려 한다고 합니다. 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에게도 문맹퇴치의 단계를 넘어 자긍심을 심어주고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는 대안을 모색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순례단에게도 열등의식을 넘어 자긍심을 가지고 내면의 당당함과 여유를 가진 삶을 살 것을 강조하시면서 돈의 욕망을 쫓는 기복 신앙을 넘어 자본주의 물결에서 거뜬히 이겨나오는 그런 불자가 될 것을 독려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성지 순례를 통하여 바깥의 성지를 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지켜보라고 자주 강조하셨는데 많은 발표자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을 발표해서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을 찾으셨어요?” 물으시면서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찾기를 했잖아요. 부처님을 찾아서 룸비니도 가보고 카필라성도 가보고 바이샬리도 가보았는데 부처님을 찾으셨어요? 부처님은 그런 곳에는 없어요. 우리가 있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을 분이 아니예요. 부처님은 두 종류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는 내 마음 속에 한참 분별을 일으키는 그것을 잘 보면 그 밑에 부처님이 계실 수 있어요. 하나는 어쩌면 구걸하는 아이들 속에서,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노파들 속에서, 나한테 물건 팔려고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는 상인들 속에서 부처님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천백억화신 한다고 하시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든 귀찮게 여기든, 일으키는 내 마음 속에서 부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찾으신 분은 별도로 저한테 오세요.” (웃음)  

 


 

소감 발표 후 호텔 야외정원에서 만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얀 식탁보가 차려져있고 반짝이는 꼬마전구가 커튼처럼 내려오는 만찬장은 어제까지 보았던 인도와는 다른 이면을 보게 했습니다. 남겨진 음식들을 보며 거지들이 생각나고, 쏟아지는 분수를 돌리는 전기와 물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간 쌓은 공덕을 다 까먹고 가야한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스님의 본 뜻은, 인도를 한 측면만 보고 섯부른 시혜적 자비심을 내지 말고 다양한 측면을 고루 보고 바른 통찰과 지혜를 내길 원하시는 듯 했습니다. 

 


▲ 만찬장

 

대중들은 조별로 둘러 앉아 인도 요리들을 맛보며, 며칠 간의 고생한 기억을 말끔히 씻어낼 듯 즐거운 한 때를 보내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 스텝들, 기사님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를 표한 뒤,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순례단을 안전하게 모셔준 버스 기사님들을 격려해 주시는 스님 

 

노래를 못하면 나오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에도 즐겁게 나와 노래하시는 순례객들 덕분에 모두 웃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에 우쿠렐라, 태평소를 갖고 오신 분들이 있어 만찬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 주셨습니다.

 


 

만찬 후 순례단은 내일 델리로 가면서 먹을 주먹밥을 조별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했던 바랑, 요가매트, 돗자리, 반찬통, 그리고 인도에 보시할 옷이나 반찬 등을 모두 내어 놓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만찬을 마치고 13대의 차량을 담당하여 대중을 인솔해준 차장님들을 모두 불러서 다시한번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시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순례 중에 대중들이 불편해 했던 점을 다시한번 물어보신 후, 한국에 돌아가서 개선점에 대해 잘 정리해서 JTS에 제출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어서 법사단과 평가회의를 하시고, 이어서 실무자 스탭들과 평가회의를 하시는 등 밤12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 평가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성지순례 때마다 이렇게 꼼꼼한 평가와 점검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개선을 해나가시는구나 느낄 수 있었고, 지금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이런 노고 위에 개선되어 왔음을 다시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인도성지순례의 마지막 날로 델리에 도착 후 박물관을 관람하고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