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경주/테마산행2.삼릉.무릉원
일 시: 2011.4.9.(맑음)
위 치: 경북 경주시 배동 73-1
출발지: 삼릉(09시40분)
코 스: 삼릉- 포석정- 소나무정원(점심)- 무릉원(천마총)- 첨성대- 경주박물관주차장
삼릉에 소나무숲으로 들어서니
소나무 작가이신 배병우님이 머릿속에서 살짝 지나가고
진달래가 곱게 핀 소나무숲이 아름다워 발걸음은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많은 등산객이 올라오고 연인들은 추억을 만드느냐
분주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
구석구석 사진동우회에서 출사를 나와
그룹으로 사진 담는 진지한 풍경이 봄날을 더욱 따뜻하게 한다.
햇살이 퍼져 별 의미는 없었지만 몇 장 담곤 하산 시간까지는 1시간 이상 남아 있어
우리 일행은 삼릉 근처 포석정으로 걸어갔다.
가로수가 모두 벚나무지만
꽃망울이 이제 터지려고 바람에 아파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마음속으론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계절 앞에 순응하면서 이 순간 좋은날씨에
의로를 받으며 벚나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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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사적 219호
이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제53대 신덕왕(神德王),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아달라왕(재위 154∼184)은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다. 그러나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왜(倭)에서는 사신을 보내왔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8m, 높이 5.4m, 지름 18m이다.
효공왕(孝恭王)이 자손이 없이 죽자 백성들이 헌강왕(憲康王)의
사위인 신덕왕(재위 912∼917, 박경휘)을 추대하였다.
견훤(甄萱)과 궁예(弓裔)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61m, 높이 5.8m, 지름 18m이다.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을 당하여 1953년과 1963년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매장주체는 깬 돌로 쌓은 횡혈식 돌방[橫穴式石室]으로 밝혀졌다. 경명왕(재위 917∼927, 박승영)은
신덕왕의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大耶城)공격을 물리쳤다.
중국 후당(後唐)과 외교를 맺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능의 크기는 밑둘레 50m, 높이 4.5m, 지름 1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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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안개가 자욱한 소나무숲을
기대는 안 했지만 소나무는 라인과 형상을 살려서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새벽 6시에 들머리를 잡았다면 정말 몽환적이고 작품성 있는 사진도
생각할 수 있는 멋진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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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포석정은 왕이 술을 들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별궁의 하나였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마른 전복(포어:鮑魚)
모양의 석구만 남아 있으며, 통일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성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규모는 폭이 약 35㎝, 깊이 평균 26㎝, 전체 길이가 약 10m이다. 포석정은 중국
고대 강가에서 초혼제를 지내고 악귀를 쫓는 행사의 하나인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에서 유래하였다. 353년 중국의
왕희지가 쓴 난정서문(蘭亭敍文)에 보면 맑은 시냇물을 아홉구비로 돌아 흐르게 하여 흐르는
물 속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게 하되 술잔이 아홉구비를 다 지날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술 3잔을 마시게 하였다.
이 때 술잔의 모양은 뿔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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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곡수를 즐기는 주위는 높고 험한
산이 있고, 숲과 대나무숲이 있으며 맑은 시내가 옆으로 흘러갔다.
신라에서도 험한 남산 봉우리을 뒤로 하고 죽림과 송림이 울창하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계곡에 포석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는 남산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거북 모양의 큰 돌이 있었고,
그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져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게
되었고, 삼국유사에 헌강왕이 이곳에 와서 남산 신의 춤을 따라해
어무상심무(御舞祥審舞)라는 신라춤을 만들었다 한다.
이곳은 인간의 마음을 수양하고 화랑이
정신을 도야하며 시문을 짓고 속세를 떠나 유정을 느끼던
아름다운 장소였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붙잡히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신라 천년 역사의 치욕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포석정이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왕과 귀족들의
중대한 회의 장소 또는 제사장소이기도 했다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사적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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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정원'의 곤드레 돌솥밥 정식
11시 반, 대장님이 먼저 오시고
뒤를 이어 모두 오시는 대로 소나무정원으로 걸어가
곤드레 돌솥밥 정식으로 맛나게 먹었는데,
반찬이 참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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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간을 주어 1,500원의
입장료를 내곤 무릉원으로 들어왔는데, 하얀 목련은
여기저기 풍성하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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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1973년에 발굴된 제 155호
고분인 천마총은 신라 특유의 적석목곽분이다.
높이 12.7m, 지름 50m의 능으로 봉토 내에는 냇가의 돌로 쌓은 적석층이 있고,
적석층 안에는 길이 6.5m, 너비 4.2m, 높이2.1m의 나무로 된 방이 있어, 그 중앙에 목관을 놓고
시신을 안치했다. 출토된 유물이 11,526점으로, 그 중 천마도는 우리나라
고분에서 처음 출토된 귀중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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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을 보곤 돌아와 나가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화사한 벚꽃이 피어 기다리고 있었다.
영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는데 깜짝쑈 모양
나타난 벚꽃...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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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님께서 한 장 남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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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광각렌즈라서 시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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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벚꽃이 만발해 있다.
가족동반으로 나들이 나와 연도 날리고 즐겁게 봄날을
즐기는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엔 첨성대가 보여
잠시 들려보고 안압지도 보였지만 꽃길로 접어들었다.
넓게 조성된 유채밭은 이제 파랗게 올라오고 있어 봄 내음을 물씬 풍긴다.
봄은 이렇게 잘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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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때 세워진 첨성대는
천문관측대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되고 유일한 석조 구조물이다.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높이 9.17m, 윗지름 3.1m,아랫지름이 5.17m, 지대석
한 변의 길이가 5.35m이다. 이중으로 지어진 지대석과 기단은 네모 형태로 8매와 15매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27단으로 원통형의 본체를 쌓았는데, 밑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윗부분은 수직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사용된 석재 수는 1년을 나타내는 365개이며,
1단의 높이는 약30cm 이다. 정상에는 우물 정(井)자 석이 2단으로
쌓여있는데 이 위에 어떤 관측기를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하였고 이 정(井) 자석이 신라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으며
동서남북의 방위 기준이 되었다고도 한다.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보이나 석조부분만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매우 보기 드문 유적으로, 국보 제 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수준을 볼 수 있는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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