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청산도 (청산도 슬로길11코스42.195km)
♡천원짜리 한 뭉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집안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나는, 고3인데도 도무지 신경을 써주지 않는 아버지한테 불만이 참 많았습니다.
그날도 함지막만큼 입을 내밀고 툇마루에 앉아 비비적대는 내게 아버지가 나무라듯 말씀하셨습니다. "또 왜 그렇게 퉁퉁 부었냐, 학교 안 갈끼가?" "오늘까지 등록금......." "알았다. 어여 학교 가거라!"
늘 빠뜻한 살림에 꼭 필요한 준비물조차 챙겨가지 못해 수업시간에 혼나길 밥먹듯 해도 기죽지 않던 나였지만, 등록금 납부 기한이 임박할 즈음이면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조례나 종례 때 담임선생님이 등록금 재촉을 하시면 왜 그리 자존심이 상하고 서럽던지.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은 며칠 동안 등록금 얘기를 한번도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언제 얘기를 꺼내실지 몰라 은근히 조바심이 일었습니다. 며칠 후, 학교에 가려고 막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브르셨습니다. 나는 무턱대고 들어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왜요, 아버지?"
"자,이거 등록금이다. 조심해서 갖고 가그라." 아버지가 등록금이라며 건넨 것은 신문지로 돌돌 만 도톰한 돈뭉치였습니다. 등록금이란 말에 나는 너무 좋아 확인도 하지 않은채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갔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등록금을 내려고 가방에서 신문지로 돌돌 만 돈뭉치를 꺼내 들고 부리나케 서무과로 갔습니다.
서무과 언니는 내 손에들린 돈뭉치를 이상한듯 쳐다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신문지를 풀어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꼬깃꼬깃 구겨진 흔적이 남아 있는 천원짜리 한뭉치가 곱게 포개져 있었습니다.
등록금은 14만 원, 돈 세다 날 새겠다는 서무과 언니의 툴툴거림에 붉어진 얼굴울 떨구고 돌아나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등록금 냈구나? 아버님께 말씀드려라,약속 잘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는 선생님이 등록금 재촉을 며칠째 거르신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친구들 앞에서 창피할까봐, 조만간 등록금을 낼 테니 더이상 재촉하지 말아달라고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신문지에 돌돌 말아 주신 천 원짜리 한 뭉치, 그건 단순한 등록금이 아니었습니다. 딸의 흩어진 자존심을 돌돌 뭉쳐준 아버지의 사랑어린 배려였던 것입니다.
====행복한 세상====
"서편제"↑
해남땅끝↑ ☆년중 몇번 만날수있는 쌍둥이바위의 일출☆
⊙이른새벽 청산도 가는도중 금강산 축소판 이라 불려온 영암 "월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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