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님과 나쁜 스님,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는 스님과 못 지키는 스님을 대비해서 말씀을 해도 안 됩니다. 자기 최선(最善)만 다할 것이지 이러한 스님네들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스스로의 선근(善根)을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를 깨닫는 것만 가지고도 바쁩니다.
앞으로 남은 생 동안에 부처님을 찬탄하고 진리를 찬탄만 해도 너무나 우리 생이 짧습니다. 우리가 환희충만한 환희지에 언제 갈 것인가? 우리 같은 출가인도 온전히 환희지 맛을 못보는 것인데 하물며 재가불자도 똑같이 성불이 목적입니다.
어느 것이나 청정무비한 부처님 몸입니다. 선이고 악이고 하는 것은 중생사회적인 차원에서 말한 것이지 사실은 본래에서 보면 모두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단 말입니다. 다만 계율을 못 지키면 그 자신이 성불을 못합니다.
부처님의 청정한 안목에서 볼 때는 설사 계율을 못지킨다 하더라도 당장에 살인범이 있다 하더라도 살인범도 역시 똑같이 흠축이 없는 부처입니다. 그러나 살인죄를 범하고 계육을 안 지키면 그 자신은 결국 성불을 못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사회적인 해악을 끼치는 것입니다.
제칠(第七) 자찬훼타계(自讚毁他戒),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는 죄. 제팔(第八) 간석가훼계(慳惜加毁戒), 내 것 아끼려고 남을 욕하는 죄. 제구(第九) 진심불수회계(嗔心不受悔戒), 잘못을 참회하는 이를 화내서 물리치는 죄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여기 태안사(泰安寺)에서 10여명의 학인들하고 같이 지냈습니다. 그때 제가 큰 허물을 범했습니다.
제가 그 때 아홉째인 진심불수회계(嗔心不受悔戒)를 범했습니다. 성내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편이 참회할 때에 그 참회를 받지 않았습니다. 별 것도 아니면서 나만 청정(淸淨)하다, 그런 상(相)을 내서 학인(學人)들 가운데서 허물을 범해서 참회(懺悔)를 한 사람을 제가 못받았습니다.
어느 수좌(首座) 하나가 그때에 담배를 피우고 또 그 우악스러워서 자기들끼리 이렇게 싸움이 났습니다. 싸움이 벌어져서 그 무시무시한 식칼을 들고서 상대편을 찌르려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말려서 못 찌르고 상처는 안 났지만 하여튼 속인(俗人)도 큰 허물인데 하물며 출가 수행자가 담배를 피우고 또 싸움판이 벌여져서 칼로 상대편을 찌르려고 했으니 얼마나 큰 허물입니다까. 그래서 제가 나무라니까 이제 저한테도 반항을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윽고 시간이 경과하니까 잘못을 느꼈던가, 가사(袈裟)를 수하고서 참회(懺悔)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그때 보살계를 안 받은 것은 아입니다만 이러한 대목을 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같은 녀석은 용서할 수가 없다. 너는 삼보(三寶) 가운데 있을 수가 없다" 라고 생각하여 그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몇 시간 뒤에 다시 왔습니다. 그때도 안 받았습니다. 또 세 번째 왔습니다. 그때의 제 마음은 도저히 칼을 들고서 같은 스님들끼리 싸우려고 했던 그 사람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뒤에 승복을 벗고서 환속(還俗)을 해서 살고 있습니다만 저번에도 한번 와서 만났습니다. 하여튼 그 사람의 참회를 제가 그때 만일 받았더라면 공부해서 위대한 성자(聖者)가 됐을지도 모르는 것인데, 참회할 때는 그와 같이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라, 원래 마음에서 지은 씨앗을 씻어버리면 벌써 그 사람의 마음에서는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계율(戒律)의 항목을 잘 모르고 저는 그때 참회를 못 받은 것을 지금도 가끔 뉘우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비록 세간 법은 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출세간 법으로 마땅히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회하면 그때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중금계(四重禁戒)라. 살생계(殺生戒), 남을 죽인다거나 투도계(偸盜戒), 출가인이 훔친다거나 사음계(邪淫戒), 음행을 범한다거나 또 망어계(妄語戒), 출가인으로 해서 대망어(大妄語), 즉 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허위로 말하는 죄, 이러한 사중죄(四重罪)를 범한 출가인은 승가 내에서 머물게 할 수 없습니다.
제십(第十)에 가서 방삼보계(謗三寶戒)라,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비방한단 말입니다. 이것은 앞서 사중의 허물을 말하는 것이나 거의 비슷합니다만 우리 생명의 뿌리가 되어 있는 또는 일체존재의 가장 귀중한 그런 성보(聖寶)인 삼보를 비방할 수가 없습니다. 삼보를 비방하면 벌써 우리 선근을 멸종을 시킨느 것입니다. 우리 선근을 없애는 것입니다. 착한 선근이 쌓이고 쌓여야 할 것인데 선근을 없애면 우리가 그때는 성불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허물 때문에 성불도 못하고 승가를 더럽히고 일반 사회인들도 우리를 불신합니다.
특히 여섯 번째 있는 설사중과계(說四衆過戒)라.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이러한 사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열 번째에 있어서 방삼보계(謗三寶戒)라, 불법승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 이러한 말씀을 우리 출가인도 명심을 해야 합니다만 특히 재가인들이 지금은 비판을 잘할 때인지라 자기 허물은 저만큼 두고서 남의 허물을 말하기 쉽게 하는 풍조가 있는 때인지라 곧장 우리 스님들도 지나친 비방을 많이 받습니다. 몇 십 년 애쓰고 공부했지만 조그마한 허물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을 그냥 매장해버립니다.
여기에 거의 걸맞은 견서사자게(堅誓獅子偈)를 소개할까 합니다. 견서(堅誓)는 굳을 견(堅), 맹세할 서(誓)입니다. 그리고 사자(獅子), 노래 게(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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