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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님의침묵과 만해한용운

맑은물56 2013. 9. 3. 09:49
  • 님의침묵과 만해한용운
  • 1. 님의 침묵 의미 1.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2.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3.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4.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5.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6.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7.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8.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9.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10.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 3·1운동을 지도했지만, 민족의 독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도 있으리라. 2. 모든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 상대방과 관계를 맺고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으로서는 있지만, 실체로서 혹은 주체로서는(이를 불교에서 자성이라고 한다) 붙잡을 수가 없다(空). 이를 모든 물질적인 존재는(色) 空이라고(色卽是空) 말한다. 한편 그러한 공은 모든 존재(色)에게 가치를 주며, 그것을 긍정한다. 이를 공은 즉 모든 존재다(公卽是色), 이렇게 말한다. 또한 모든 존재는 공과 다르지 않으며(色不異空) 空은 모든 존재와 다르지 않다(空不異色)고도 한다. 존재와 무에 관한 이러한 사상은 이 지닌 뜻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만해는 유 혹은 존재를 표현하는 것 같으면서 실은 무 혹은 공을 말하기가 일쑤이니까 말이다. 이는 만해의 미학이 의지하고 있는 기둥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공으로 정화된 자연을 볼 수도 있다. 존재가 무로 변화하는 순간. 이러한 순간은 흔히 드라마틱하게 묘사된다. 3. 존재를 넘어선 것이기에 이다. 즉 공을 바탕으로 한다. 4. 민족에 대한 참된 사랑을 깨달은 순간도 되고, 견성의 진리를 깨친 찰나도 된다. 공이 존재와 접촉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가 아니라 , 이렇게 표현하였으리라. 5. 진리를 말하는 목소리는 () 보통 귀로는 들을 수 없고 따라서 말을 초월한 것이며, 혹은 너무나 뚜렷하고 어마어마하여 귀먹을 지경이다. , , 모두가 긍정과 부정을 지니고 있어서 강렬한 효과를 낸다. 6. 이렇게 극적인 표현. 정수박이는 정수리의 뜻이리라. 슬픔도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면 진리를 가리키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7. 극적인 표현. 정수박이는 정수리의 뜻이리라. 슬픔도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면 진리를 가리키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8. 유와 무, 슬픔과 기쁨, 성공과 실패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9. 독립운동을 계속하는 것과 불법을 깨닫는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에 달려 있으며, 상황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만유의 바탕인 공은 한 없는 의지와, 주체성의 바탕이 될 수도 있다. 10. 노래를 넘어선 노래. 따라서 아주 훌륭한 예술은 진리가 침묵의 깊이에서 드러내는 것을 꾸준히 표현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독립운동을 일제하의 극한상황에서도 쉬지 않는다. 불도에 대한 정진을 계속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항시 침묵에게 묻고 대답을 얻기 마련이다! 2. 만해 한용우 연보 연도 월일 내 용 비고 1879 8. 29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한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다.(乙卯, 음 7월 12일)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득도(得度) 때의 계명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卍]海)이다. 어머니는 온양 방씨 (方氏)이다. 1884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움. 서상기(西廂記)를 읽고, 통감, 서경기삼주를 통달함. 1892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와 결혼하다. 1896년 11월~1897년 1월 호론(湖論)의 영수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학통을 따르는 文人志士 김복한, 이설, 임한주 등이 일으킨 홍주의 을미 의거에 가담. 내포 지방...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앞을바라보고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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