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서정주의 "동천(冬天)"

맑은물56 2013. 2. 22. 10:10
서정주의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화사(花蛇)'에서의 대지적(大地的), 육감적 사랑과 동물적 상상력은 '동천'에 이르러 천상적(天上的), 정신적 사랑과 우주적 상상력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평자들은 지적한다. 지상의 언어가 아닌 천상의 언어답게 이 시는 거추장스러운 단 한마디의 설명도 배제한 채,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빚어낸다.

이 시의 핵심적인 이미지는 '눈썹'과 '새'이다. 겨울 하늘에 차갑게 걸려 있는 눈썹 같은 그믐달과 그 곁을 비껴 가듯 날고 있는 한 마리 새의 모습을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생각게 한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화자는 그 그믐달을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이라고 말하며, 오랜 세월 동안 꿈꾸어 오던 것을 하늘에 옮겨 놓았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슬픈 운명을 지닌 한 여인에 대한 승화된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어떤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눈썹'은 여인의 육체적 심상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시인이 마음속에 품어 온 삶의 어떤 고귀한 정신적 가치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하늘에 옮기어 심어 놓았다는 말은 절대적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간다는 말에는 인간은 물론 새까지도 그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알아차리고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외경의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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