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교육 소식

남준현 교장선생님 퇴임사

맑은물56 2012. 7. 4. 19:42

남준현 교장선생님 퇴임사

 

  아직도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셰계적인 불황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한층 더 뜨거움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해결해야 나아가야 할 어려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우리 앞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변함없는 마음으로 우리 학생들을 위해 열성으로 지도해주시는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운영위원을 비롯한 학부모님께도 이 지면을 빌어 그동한 함께 노력해 주신데 대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첫출근 때의 두근거림이나 설렘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저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데 벌써 40년이 더 지났다니, 세월이 빠르다는 게 절절합니다.

 제가 교단에 처음 들어설 그 때는 의식주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데다 의거나 혁명 등의 용어가 난무하던 한 마디로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지만 저는 마음속에 품었던 꿈과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청춘의  젊은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교직을 성직이라고 합니다. 제가 교직에 발을 내딛을 때는 성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교직은 믿음과 존경을 받는 직업임이었음에는 분명하였습니다. 아이들이나 부모님에게 선생님의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 지금 저에게 아직도 그 말에 동의할 수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저로서는 수긍할 자신이 없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교직이 이제는 존경이 아니라 가끔씩 도마 위에 올려 비판받는 자리가 되어버리기도 하여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온 세상이 변하는데 교직만 변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 기성세대가 좀더 노력하였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환경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뼈아픈 반성을 해보기도 합니다.

 가끔 그 많은 직업 중에 왜 교직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교직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저에게 교직의 선택은 숙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교직을 선택해서 제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먼저 가르치면서 배우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만한 나이에 컴퓨터로 오늘 이런 퇴임사를 작성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교직을 선택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저는 서슴치 않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아내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기꺼이 팔불출이 되려고 합니다.

저는 여태까지 술자리를 마다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잘 아시다시피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일어서는 성미여서 아침 신문과 함께 귀가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늦은 귀가에다 집에 도착하면 긴장이 풀려 마루에 육신을 눕히면 그냥 곯아떨어졌습니다. 제가 몸무게가 좀 나갑니까. 아내에게는 마루에서 안방까지가 천리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30여 년을 변함없이 해왔으니, 오늘 이 자리가 저에게 축하와 영예의  자리라면 이 모든 영광은 사랑하는 저의 아내 몫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교직을 선택함으로써 같은 교직을 걷던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은 저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내를 자랑하는 팔불출이 되기도 하고 생각도 많아집니다. 아직도 현장에서 뛰는 아내가 있기에 교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변치않을 것입니다.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의 마지막 직장이었던 명문고등학교는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겠지요. 마지막 열정을 다했다는 말과 행복한 마무리라 여기고 싶습니다. 불신의 시대라 할만한 요즘같은 시대에  언제나 차분하고 성실하게 나의 소신을 믿고 따라주는 명문인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럽고 스스로도 대견스러운 일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명문의 제자들은 이 사회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될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불철주야 말없이 최선을 다하는 여러 교직원들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당연히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생각할수록 고맙고 가슴 뿌듯합니다.   저는 이제 곧 40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려고 합니다. 흔히 퇴임을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실감할 수 없지만 바야흐로 새로운 삶을 위해 눈뜨는 아침이 다시 시작되겠지요. 어쩌면 설레임이기도 합니다.

'會者定離 去者必反 회자 정리 거자 필반’ 이라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명문 가족 여러분! 귀한 인연으로 우리는 만났지만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이 말은 헤어짐이 세상사 법칙이요 만고의 진리이기에 사랑하는 동료들의 곁을 떠나며 떠나는 사람이 못다 이룬 일을 정열적이고 든든한 후배님들께 맡기고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이제 살아가야 할 제2의 인생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척들과 선후배님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으며, 저에겐 아직도 불굴의 도전정신이 있기에 두려움 없이 보람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명문 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여러분의 앞날에 큰 발전과 더불어 가정에 늘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충심으로 기원하면서 퇴임사에 가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