褱亭 鄭文卿 선생님
또 다른 篆刻의 나라로 가시다.
牧泉 元容汐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15세에 전각을 시작한 이래 75년여 동안 전각을 하셨으니 그 공력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전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선생님의 문하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선생님께서 한국 전각계에 끼친 영향을 실로 지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회정 선생님께서는 전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전각(篆刻)이란 한자(漢字)의 각 서체(書體) 중에서도 가장 조형성 짙은 전자(篆字)를 구사해서 印이라고 하는 한정된 세계에 정기를 불어넣는 동양예술의 독자적인 장르로서 순수예술을 말하는 것이다.(괄호 안의 한자 필자 삽입)
곧 선생님께서는 전서를 서체 중 가장 조형성이 짙은 자체로 인정하셨으며, 그런 전서체의 글자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印이라고 하는 한정된 세계에 정기를 불어넣는’ 생명 창작의 작업으로 생각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글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간에선 흔히 자식들을 가리켜 곧잘 자기의 분신이라 이른다. 제 자식이 어찌 자기를 닮지 않았으랴만, 그러나 이밖에도 우리들에겐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도록 평생을 따라다니는 불가분의 또 다른 분신이 있다.
더구나 이것은 묘한 마력을 지녀서 우리들을 즐겁게도 슬프게도, 때로는 죽이기도 살리기도, 그런가 하면 한 나라를 빼앗기도 빼앗기기도 하니 이것이 지니는 소임이라는 게 얼마만큼이나 큰 것인가는 누구나가 잘 아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필수불가결한 印 또는 인장, 혹은 도장이라 이르는 우리들의 분신인 것이다.
아무도 전각에 관심을 두지 않을 시절에 선생님께서는 전각의 중요성을 자각하시고 전각을 연마하셨다. 특히 齊白石의 전각에 매료되시어 그를 私淑했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렇게 공부한 뒤 전각의 보급에 마음을 두시어 1968년 10월에는 鏤虹동인회 창립하시어 본격적으로 전각을 지도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1969년 3월 한국전각학연구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각학연구회는 회정 정문경 선생님의 지도 아래 20여회에 이르는 전연대상전과 전연동인전을 개최하였다. 특히 3회에 걸친 국제전각예술대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한․중․일 뿐만 아니라 대만을 비롯한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까지 천여 명이 넘는 세계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명실공이 유례가 없는 국제행사로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여초 김응현 선생님은 축사에서 “요지경 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하시어 당시 얼마나 대단한 규모였는가를 알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藝人이라고 자처하시어, 전각이라는 도에 뜻을 두시고, 항상 다른 이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으며, 회원들을 대할 때 혹은 오래 묵은 친구와 같이하시고 나이가 많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자녀를 대하는 것처럼 다정다감하셨다. 또한 젊은 여성 회원들에게는 서슴치 않고 ‘딸’이라고 남들에게 소개하셨다.
이제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전각 예술을 한 층 더 발전․보급하는 과제가 선생님께 사사한 모든 전각인들에게 남겨져 있다. 지금도 ‘내일은 없다.’고 하시며 발분하기를 독려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고매한 인격과 너른 품새로 절륜의 예술세계를 향유하셨던 선생님의 명복을 기원하며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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