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서법에 담긴 진리

권상호 교수의 라이브 서예- 불씨는 문명을 낳고, 글씨는 문화를 낳는다

맑은물56 2011. 9. 19. 10:53

권상호 교수의 라이브 서예- 불씨는 문명을 낳고, 글씨는 문화를 낳는다

    불씨는 문명을 낳고, 글씨는 문화를 낳는다. 문화(文化)란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른바 문화전파(文化傳播, culture diffusion)론이다.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적시며 흘러간다. 한국의 높은 문화의 물을 한류(韓流, Korean Waves)라고 한다. 문화의 물속에는 맹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씨앗이 들어있다. 맵씨(국어사전에는 ‘맵시’라고 적고 있으나, 나는 ‘매무새에서 나오는 씨앗’으로 보고 맵씨라고 적어야 옳다고 본다.)는 패션을 낳고, 솜씨는 기술을 낳고, 말씨는 스피치와 노래를 낳고, 마음씨는 신앙을 낳고, 불씨는 문명을 낳고, 글씨는 문화를 낳는다. 붓글씨도 문화의 씨앗 중의 하나이다. 붓글씨는 한국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내려온 우리의 중심 문화였다. 이를 미국 땅에 직접 전파하고자 워싱턴 주의 터코마 시에서 주최하는 ‘제25회 소수민족축제(25th Ethnic Fest)’에 참가한 것이다. 이는 문화전파 방법으로 볼 때, 직접전파에 해당한다. 정복에 의한 직접전파도 있지만 이는 역반응과 거부가 따르니 무리일 터이다. 때마침 K-pop을 중심으로 한류의 열풍이 유럽과 미주에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하였으니 이에 편승하여 우리의 전통문화의 하나인 붓글씨를 온건하게 전파하고 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방미의 목적이다. 다가가는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Live Calligraphy Performance)’ 공연을 통하여 우리 문화의 씨앗을 미국 땅에 뿌리고 오는 것이다. 1부 공연, ‘도정의 붓질 마당’을 마치고, 2부 공연, ‘함께 즐기는 서예’가 시작되었다. 2부는 쉽게 말해 미국인들을 위한 ‘서예체험’의 시간이다.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직접 손으로 붓글씨를 한번 써 보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이른바 문화체험이라야지, 문화구경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2부 타이틀은 ‘함께 즐기는 서예’인 것이다. 참여한 대부분의 현지인에게는 생후 처음으로 접해 보는 붓글씨이다. 먹물이 튀길까봐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행히 서로 써 보고자 하였다. 인간의 표현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하얀 종이에 까만 먹물 자국만으로도 전율로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붓을 잡는 순간 시간을 잃고, 길을 놓쳤다. 모두의 가슴에 번지는 희열의 물결... 성공이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히스페닉이든, 아시안이든 한결같이 붓을 잡고 종이에 획을 긋는 순간 몰입(沒入)하고 만다. 남녀노소가 서화(書畵) 불문, 언어(言語) 불문하고 길게 펼쳐진 종이 위에 자신의 영혼의 이미지를 쓰고 그린다. 인간이 갖고 있는 숨길 수 없는 표현 본능이 나타나고 있는 현장이다. 한류 물결을 느낀 것은, 인사 정도나마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더러 있었고, ‘사랑’ 또는 ‘대한민국’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살 안팎의 두 여대생은 ‘동방신기, 윤호 사랑해’라고 능청스럽게 써 나가지 않는가.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되어 전미 한인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철홍 프로는 시종일관 능숙한 솜씨로 한글 붓글씨 시범을 보이며 통역과 한글 홍보에 도움을 주었다. 한국에서 유학 또는 어학연수를 온 다섯 명의 남녀 학생들도 도우미를 자청했다. 고마운 일이다. 생각의 여울 따라 마음이 지나간 길 가엔 언제나 먹꽃이 피고, 붓이 지나간 강가에는 묵향(墨香)이 맑게 흐른다. 순간 온 천지에 잔잔히 울려 퍼지는 먹~울~림. 여기서 ‘먹꽃’은 먹의 빛깔과 번짐에서 오는 살아있는 글씨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리킨다. 붓글씨를 흔히 정적(靜的)인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넉넉하게 깔린 종이를 무대로 하여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 모습을 보면 동(動)의 극치이다. 그야말로 다이나믹 사운드에 맞춰 펼치는 만호(萬毫, 붓털의 수가 많으므로 흔히 만호라고 한다.) 의 군무(群舞)이다. 붓끝의 용트림에 이리저리 튀는 먹물에 감동의 경계는 무너지고 만다. 붓글씨에서 오는 감동의 끝은 언제나 가슴 깊이 파고드는 ‘먹울림’이란 감동이다. 한국 문화와 서예의 홍보를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서예가의 영어, 틀려도 좋고, 맞으면 다행이다. 쪽팔림은 순간이나 서예 홍보는 영원하다. 남이 와서 보고 느낀 점을 자국어로 소개하도록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지루하다. 내가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시범을 보이고 대화하며, 종이를 펼쳐놓고 붓을 그들의 손에 친히 쥐어 주면서 써 보게 해야 적극적 홍보가 된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한류를 만드는 것이다. <서예가/ 수원대 교수 권상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