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의 이야기/자연을 찾아서

[스크랩] 껍데기는 가라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모든 쇠붙이는 가라

맑은물56 2012. 1. 13. 14:41

 

 

시절이 참 하수선하다.

천안함 사건을 비롯하여 북한의 연평도 도발이라는 초유의 긴장사태에 이르까지.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인지.

누가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적어 넣을수 있을까?

 

해방 이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의 댓가를 치르고 여기까지 왔던가?

가장 최근에 있었던 한미 FTA타결 뉴스를 접하면서

39년라는 짧은 생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다간 신동엽 시인이 생각났다.

 

신동엽 시인은 우리 교과서에 민족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로 소개된 시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즘 학생들에게 신동엽이라는 이름은

개그맨 신동엽을 떠올리게 한다.

 

 

 

 

부여 사람이라면 신동엽 시인 생가  팻말을

한두번씩은 보고 지나쳤을것 같다.

시인의 생가는 부여 터미널에서 군청 방향으로 500미터 정도만 더 가면

생가 팻말이 큰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그 팻말을 따라 왼쪽 방향으로 200미터 정도 더 들어가면 시인의 생가가 나온다.

 

신동엽 시인 생가는 시인이 태어나서 자란곳이고

또 신혼살림까지 꾸렸던 곳이다.

또 시인의 아버지 신현순옹이 돌아가시기전까지 이곳에 살았다.

  

그러다가 신현순옹이 돌아가신 뒤에 잠시 남의 손에 넘어갔다가

다시 시인의 부인이면서 현재 짚풀문화사 관장으로 있는

인병선여사가 다시 구입하여 부여군청에 기증한 집이다.

현재는 부여군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단아한 모습이다.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너무 크지도 않는 아담한 집.

잔디 깔린 마당과 따뜻한 햇살이 앉았다가는 작은 마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루 한쪽 현판에는 시인의 시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신동엽 시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중에서 가장 먼저 떠 올릴 시가 '껍데기는 가라'일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는 장편대서사시 '금강'과 함께 시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멩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 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이 그토록 가라고 외쳤던 '껍데기'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시인이 지칭하는 '껍데기'는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외부의 힘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 중립의 초례청에서 아사달과 아사녀가 혼례식을 치르는 것은 분단 극복,

곧 통일이라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을 상징한다.

 

외세의 힘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아닌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 통일을 이루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잘 사는 나라를 세우자는 외침이

이 시 속에 녹아 흐르고 있다.

 

특히 이 시의 맨 마지막 구절에 해당하는

"한라에서 백두까지/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는

표현은 정말 절창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시어속에 담긴 굵은 선과 힘.

이것은 어쩜 신동엽 시인의 시세계를 읽어내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에서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흙가슴'과 '쇠붙이'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구절들이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흙가슴'은 뭐고 '그 모든 쇠붙이는 뭘까" 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다.

 

 

 

 

시인의 생가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

백마강 다리가 시작되는 왼쪽 솔밭에 시인의 시비가 있다.

이 시비는 지인들이 뜻을 모아 세운것이라고 한다.

시비에는 신동엽 시인의 시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다. 

이곳은 문학기행 온 학생들이 꼭 거쳐가는 단골 명소다.

 

백제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여 , 신동엽 시인의 고향에서 금강을 만난다.

마흔이 안돼, 생을 마감한 시인 신동엽.

4월 학생혁명과 3.1운동 그리고 동학혁명의 의미 속에서 민족의 ‘하늘’을 찾아낸 장편 서사시 ‘금강’

 

모든 사람이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화공동체를 꿈꾸던 신동엽 시인의 마음이

금강의 물줄기에 녹아들어 오늘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시인은 누나와 함께 산나물 뜯으며

나무뿌리와 풀뿌리 캐는 아낙들의 모습을 본다

극한의 가난을 견디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신동엽은,

어렵게 전주사범에 입학한다.

이후 그의 유년의 기억들은

시속에 담겨 식민지 현실로 이야기 된다

그의 시 속에 담긴 풀뿌리 캐는 여인들의 모습은

시대를 극복해 평화를 일구어 내려는

대지 모성으로 표현된다.

 

 

현암사에서 나온 '신동엽'이라는 이 책은

신동엽 시인의 가족들이 내 놓은 유물과 생전의 행적들을 정리해서

기록한 책이다.

이 책 한권으로도 시인의 유년시절부터 마지막까지가 잘 기록되어 있다.

 

문단에 있는 시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김수영'시인을 꼽는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이 생전에 그토록 극찬했던 시인은 바로 '신동엽'시인이다.

사실 김수영시인과 신동엽시인은 서로의 문학세계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줄 알았던 당대 최고의 문우였다고 한다.

 

2011년이 시작되는 1월 신동엽 시인이 사뭇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

'껍데기는 가라'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숙고해보고

우리민족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2011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출처 : 충남도청
글쓴이 : 짝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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