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 경(敬)자 바위
'소수서원'이라는 안내판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자동차의 속력을 은근히 늦추고 있었다. 지난해 영월 '청령포'를 답사하면서 알게 된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 꼭 한번 답사하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부산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마침 세 시간 정도 시간이 남은 탓이기도 하다. 혼자서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이 쓸쓸할 수도 있겠지만 유교사상이 깃든 서원이니 어쩌면 혼자 차분하게 둘러보는 것이 더 운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이 '사무라이' 정신을 자랑한다면 우리 민족의 자랑은 아무래도 '선비정신'일 테니 옛 조상들의 절개를 느껴볼 좋은 기회다. 그래서 마음을 정한 나는 중앙고속도로 안동을 지나 영주톨게이트에서 '순흥' 방향 국도로 나와 '소수서원'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권을 끊고 정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입구에 '당간지주'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는 본래 불교에서 절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알리는 조형물이다. 예로부터 절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당'이라는 깃발을 높이 매달았는데 이를 매달기 위한 지주석이 '당간지주'다. 이상해서 안내판을 찾아보니 그러면 그렇지, '소수서원'이 '숙수사'라는 절터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규모 있는 절이었는데 아마도 절을 헐고 서원을 지으면서 '당간지주'를 남겨두었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서원의 안마당에 들어서니 '취한대'라는 정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옛 선비들이 모여 앉아 시 한 수씩 읊조리기 좋았을 단아한 정자였다. 이곳에서 죽계의 물총새 빛깔의 푸른 물을 바라보면서 시를 지었을 선비들을 생각하니 절로 정신이 맑아졌다. "취한대"의 정취는 한마디로 소박하면서 품위가 있었다. 그런 풍경 때문에 더 옛 선비들의 절개가 배어난듯 했다. 저렇게 단아한 정자에서 내뿜는 지조가 바로 '선비정신'일 테다. 오랜 세월 이 땅을 지켜온 정신이 정자에 서려 있다고 생각하니 옮기는 발걸음 또한 저절로 경건해졌다. 경건한 마음으로 마치 내가 그 옛날 선비라도 된 것처럼 '취한대'에 올랐더니 가슴이 차분해 진다.
'취한대'에서 내려보는 소(沼 ) 역시 어딘지 모르게 차분해서 한 바퀴 돌고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차분하게 소(沼 )를 한바퀴 도는데 발걸음도 마음을 따라가는지 조심조심 걸었다. 그런데 소(沼 )를 돌면서 신비로운 바위를 만났다. 붉은색으로 경(敬)자가 세겨져 있었다. 살펴보니 본래 이 소(沼 )는 '백운동 소(沼 )'라고 불렸는데 이곳에 있던 '숙수사'라는 절을 헐고 백운동 서원을 창건하면서 절 내에 모셨던 불상들을 모두 이 소(沼 )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때 버려진 불상들의 한이 하늘에 사무쳐 비가 내리는 캄캄한 밤이 되면 불상들이 소(沼 )를 뛰어오르는 소리로 첨벙 첨범 거려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은 이 소리에 놀라 늘 불안에 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위에 경(敬)자를 새겨 음각했더니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敬)자는 유교의 근본 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리글자이니 이곳에 경(敬)자를 쓴 것은 버려진 불상들을 공경한다는 뜻이었나 보다. 불상들이 이 글자를 보고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는 말인데 입구에서 만났던 '당간지주'와 함께 묘한 여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던져진 불상들의 이야기는 절터에 세워진 인연 때문에 지어진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다. 원래 이곳 소수서원이 터 한 '순흥'지역은 정말로 가슴 아픈 역사가 지나간 땅이다. 정축지변 때 금성대군과 그를 따르는 의사들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을 복위하려던 거사가 탄로 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세조가 보낸 관군들에 의해 수많은 충신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때 이곳의 백운동 소(沼 )에 희생된 의사들의 시신을 수없이 수장한 것이다. 수장된 의사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죽계를 타고 십 리 밖까지 흐르고 또 흘렀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그 참상이 얼마나 잔혹했을까,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바위에 "경(敬)" 자를 세긴 것이다. 밤마다 울었던 것은 불상의 원혼이 아니라 원통하게 죽은 의사들의 넋이었던 것이다. 그 혼을 달래기 위해 유교 이념인 "경(敬)" 자를 세기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한시라도 경건한 마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불교사상도 충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유교사상의 근본이야말로 나라를 사랑하는 충(忠)에 있으며 그 정신이 내면화되어 우리 민족의 민족혼으로 정립된 것이 바로 '선비정신'일 것이다.
단종애사!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다. 영월 '청령포'에 들렀을 때 아팠던 그 아린 역사의 흔적을 오늘 여기서 또 만났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때는 피로서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피로서 행하는 심판은 결국 다시 피를 부른다. 아무리 정통성을 세우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해도 또 세월이 흘러 수천 년이 지난다 해도 피를 통한 심판은 결코 정의로워지지 않는다. 역사란 거울과 같은 것이다. 지나간 역사가 세월속에 묻히지 않고 돌아올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서원'의 경(敬)자 바위는 의(義)를 행하다 비통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사람들을 일깨우려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칼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고 역사를 거스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문인 것이다. 저렇게 소(沼 )의 밑바닥까지 다 비추도록 맑은 물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날의 피를 조금씩 조금씩 씻어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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