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 " ⊙ 영암 학마을 ⊙ 11.7.29.
♡실직남편 기 살리기♡
우리집에 불행이 닥쳤습니다. 결혼한 지 3 개월, 그때 우리는 아직 신혼제미에 푹 파묻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곤드레만드레 취해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내가 잔소리를 할 새도 없이 거실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온갖 걱정 다 하며 기다린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지만, 꾹 참고 남편을 부축해 소파에 않혔습니다. 그때 남편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자기야, 나 오늘 회사 그만뒀다." "뭐라고 자기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계약직 피디 신세가 그렇지 뭐."
남편은 새로 생긴 위성방송국 게임 채널의 프로듀서였습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남편은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일과 게임마니아의 자유를 만끽하며 만족스럽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직이라니, 그것도 고작 몇 개월만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절망과 슬픔이 가슴을 조여왔습니다.
취기에 비틀거리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내춘치만 슬슬 살폈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서로의 눈만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매실단지가 생각 났습니다. 몇달은 더 두어야 알맞게 익어서 향기와 맛이 그윽해질 테지만, 독한 술로 헐여버렸을 남편의 위장을 생각하며, 나는 그 보물단지를 헐기로 했습니다.
시원한 얼음을 동동 띄운 매실즙을 건네자, 남편은 벌컥벌컥 들이마신뒤 잠이 들었습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는 남편의 모습이 어찌나 측은하고 안쓰러운지, 나는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남편이 마지막 녹화를 하던 날 나는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차를 몰고 회사 앞으로 갔습니다.
좀 유난스럽긴 했지만, 직장을 다시 구할 때까지는 퇴근시간에 맞춰 데이트하는 재미도 당분간 누릴 수 없을 것 같아서 기사노릇을 자칭한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나온 남편은 내 태도가 너무 뜻밖인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남편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은 내내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나는 여느 때보다 더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 오늘 날씨 무지 좋다,그지? 이렇게 좋은 날 멋진 남자랑 드라이브하는 여자가 나말고 또 있을까?"
나의 너스레에 남편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아파트 현관문에 이르렀을때, 나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야, 놀라지마!" "뭘?" 남편은 무슨 얘긴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내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남편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우아, 이게 다 뭐야?" 남편을 맞이한 것은 형형색색의 꽃들과 온갖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근사한 식탁이었습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잡채, 과일샐러드, 닭요리에 빨간 와인까지. 남편의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이걸 다 당신이 차린 거야?" "그럼, 솜씨 한번 내봤지. 당신같이 멋진 남자랑 사는 여자가 이 정도도 못하면 자격미달이지." 그날 나는 남편에게 연애시절에도, 신혼 초에도 차려준 적 없는 최고의 만찬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남편이 그만한 일로 기죽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행복한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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