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가시연꽃/ 김봉용

맑은물56 2011. 4. 14. 21:07

 

가시연꽃/ 김봉용

 

 

오늘 하루만이라도

짙은 물음표로 살고 싶어

이른 아침 우포늪에 가본다

 

늪 한 복판

물안개 깔린 잎 방석 위

가시연이 홀로 아침을 먹는다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은 그녀는

이슬 먹고 꽃을 피운다

한번 묻고 싶다

무엇이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지

 

사랑은 선線을 이어서

길 찾아 가는 것

마음이 와글와글 복잡할 때

한 자리에서 기다려주면

문 열어 줄까


- 계간 <스토리문학> 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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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늪지로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생태계의 고문서’이자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다. 현재 이 일대에는 43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수는 우리나라 전체 식물종류의 10%에 해당된다. 특히 수생식물은 국내 서식하는 종류의 60%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다. 모두 그 자체로도 귀한 생명체이지만 늪의 수질을 정화해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우포늪의 물빛이 의외로 맑고 깨끗한 것은 이 식물들 덕택이며, 아직은 이곳의 수생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징표일 것이다.

 

그 가운데 물풀의 왕인 가시연꽃은 급속히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희귀식물로 보호받고 있다. 가시연은 오염에 아주 민감하다. 물이 깨끗한 연못에서만 자라며 물이 더러워지면 한포기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순결하고도 도도한 식물이다. 사람들이 마구 뿌려대는 농약, 특히 제초제에 오염된 곳에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가 없다. 예전에 넓게 분포 서식하던 가시연을 볼 수 있는 곳은 지금 그리 많지 않다. 그마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위협에 처해 있으니 자연생태 보존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가시연꽃은 1년 초이다. 이듬해 봄에 종자에서 싹이 나야 또다시 꽃을 볼 수 있다. 가시연꽃의 종자에서 나온 새잎은 늦은 봄이나 돼야 볼 수 있다. 그렇게 늦장을 부려서 언제 잎을 키우고 꽃을 낼까 싶은데도 여름 볕을 받으며 한두 달 사이에 커다란 잎으로 쑥쑥 자라 수면을 덮는다. 늦은 여름 수면 위 무성한 가시로 무장한 꽃대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면서 예쁜 보랏빛으로 수줍게 꽃이 피어난다.

 

그 자태는 시인의 표현처럼 ‘고전으로 한복 차려입은’ 모습 그대로다. 그 고귀한 꽃이 ‘세상 속으로 돌아가’ 맵시를 뽐내지 않고 아득한 태고의 적막 속에 스스로를 가둔 까닭은 무얼까. 그나마 살짝 열린 꽃잎도 밤이 되면 다시 닫혀 시원의 꿈속에 빠져든다. 어쩌면 ‘마음이 와글와글 복잡할 때’ ‘짙은 물음표’ 하나를 물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기구원을 모색케 하거나, 가시연꽃의 꽃말이기도 한 ‘그대에게 소중한 행운’을 하나씩 안겨주려는 그윽한 자비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ACT4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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