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陽洞詩篇 2―뼉다귀집/ 김신용

맑은물56 2011. 4. 12. 10:37

 

 

 

 

陽洞詩篇 2―뼉다귀집/ 김신용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줏어온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뉘 입에선지 모르지만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가는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유유롭고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첫새벽 할머니는 뼉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밤새도록 푹 고아서 아침이 오면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뼉다귀를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지요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뼉다귀를 고으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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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용 시인을 아시는지? 열여섯 나이에 부랑을 시작하여 서울역 지하도와 대합실이 숙소이자 놀이터였던 그는 동냥은 물론 끼니를 해결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매혈과 각종 ‘치기’범죄도 불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풀빵구리에 쥐 드나들 듯 감방과 양동을 오가면서 별을 5개나 달았다. 그러는 동안 장르불문 그가 감옥에서 읽어치운 엄청난 독서량은 놀라울 정도였고, 그 독서와 사유를 바탕으로 마흔넷의 나이에 ‘陽洞詩篇’을 발표하며 등단, 시단에 충격을 주었다. 이 시는 지금은 도려내진 서울의 환부 ‘양동’에서 화염처럼 살았던 지게꾼출신이 무림고수로의 등극을 예고하며 내뽑은 칼날 위 섬광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여기서 양동은 경주 양동마을이 아니라, 과거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 가려진 슬럼가를 말한다. 바깥에서 보면 치부이지만 도시의 부랑자, 똥치(창녀), 쪼록꾼(매혈자), 일용잡부, 마약중독자, 양아치 등 밑바닥 인생의 총집결지이며 본산이었다.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 하루하루가 고단한 인생들에게 뼈다귀 국물은 거의 유일한 보양식이다. 시인은 그걸 안주 삼아 작살주(막걸리에 소주를 탄 것) 몇 잔 들이키면 내장 곳곳이 가로등 켠 것처럼 환해지고 마침내 똥구멍 끝이 노글노글해지면 ‘씨부랑 탕’ 욕이 나오고 노래가 나오고 그런 다음에 시가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시가 그에게로 가서 그를 살렸던 것이다.

 

 

ACT4

Eric Clapton - Wonderful Tonight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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