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 /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 지도 모른다
- 시집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 (문학과 경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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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한가롭게 TV를 통해 ‘동물의 왕국’을 보았다. 몇 번 본 내용인데도 역시 장관은 ‘세랭게티’초원의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누우'라는 이 초식동물은 '누우~누우~‘하고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건기가 닥치면 초지를 찾아 대이동을 하는데 탄자니아와 케냐 사이를 흐르는 마라 강둑 앞에 누우떼가 멈춰 섰다.
잠시 멈칫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무리 중에 몇 마리가 강을 향해 힘차게 돌진하였고, 연이어 나머지 누우 떼들도 일제히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어제 내가 본 것은 수만 마리가 아니라 백오십만 마리(해설에 의하면)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떼거리였다. 사나운 악어떼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강을 건너는 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며 포식자 악어가 입맛을 다셨지만 그들에게도 먹잇감은 각각 한 마리면 충분했다. 자진하여 먼저 뛰어든 무리 가운데 몇 마리가 악어들의 밥이 되어 살이 찢기고 피가 강을 물들이는 동안 다른 누우 떼들은 무사히 강을 다 건널 수 있었다. 그들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앞서 희생한 누우의 ‘죽음에 빚진 목숨’들이었다.
살아남은 그들 가운데 몇은 훗날 다시 강을 건널 때 스스로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 것이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명예나 가족에 대한 보상 같은 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그들의 특수한 유전적 행동이 놀랍고도 숭엄하다. 성경에는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했지만 이건 사랑 이상의 그 무엇이다.
지금 가만 보면 제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줄로 우쭐대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삶도 누군가의 거룩한 희생에 의한 결과일 것이다. 4.19를 하루 앞둔 오늘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의 마음으로 그분들을 묵상한다. 그 빚을 망각하고서 오늘의 화창한 이 봄날을 누릴 수는 도무지 없을 것이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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