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미스김 라일락/ 원태경

맑은물56 2011. 4. 26. 09:30

 

 

 

미스김 라일락/ 원태경


잘 웃는 미스 김 웃을 때

설핏 드러나는 덧니 예쁘다.

통째로

양키에게 뽑혀가

바다 건너 비린 것들 틈에서

다시 몇 번 구르는 사이

거웃조차

노리장해지고 혀가 꼬여서

더는 나랏말쌈과 사맛디 아니할 제

다시 뽑히고 꺾어지고 휘어져

수수꽃다리 절름절름

돌아온 그 여자


그래도

물 건너 꼬부랑말 배웠으니

학원 시장에 과외 장터

로열티 비싼 몸

돈방석에 앉았다는데

바다 먼 데

남기고 온 자식 생각

눈물 콧물 보태어 털어 보내고

지질 궁상떨며 사노라 

미스김 라일락


- 인터넷 다음 카페 <시하늘>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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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일 비에 젖어도 그 향기 젖지 않고, 그 빛깔 지워지지 않는 꽃이 시방 내 사는 아파트 화단의 안주인으로 펴서 창만 열어도 그 짙은 향이 코끝을 스친다. 내게 키스를 퍼부어달라는 뜻의 ‘베사메무쵸’란 노래에서 ‘리라꽃향기’가 바로 그 꽃향기다. ‘리라’는 유럽에서 불리는 불어이름이고, 영어로는 ‘라일락’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 혹은 ‘개회나무’이고, 중국과 북한에선 향기가 짙다하여 ‘정향(丁香)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 화단의 그 꽃나무는 정확히 말해서 ‘미스 킴 라일락’이다. 그리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우리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사연이 있다. 1947년 미군정 적십자 직원이 북한산에서 우리 토종인 수수꽃다리 씨앗 12개를 채집해 이듬해 본국으로 가져갔다. 미국에서 씨앗을 심어 그 가운데 싹을 틔운 7개중 비교적 키가 작고 유난히 빛깔과 향기가 좋은 두 그루에 'Miss Kim Dwarf Lilac'이라는 이름을 붙여 종자 특허출원했다.

 

 ‘미스 김’은 한국근무시절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직원에게 친숙하게 불렀던 이름이었다. 꽃이 많이 열리도록 개량된 미스킴라일락은 1954년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기존의 가지가 제멋대로 뻗는 라일락과는 다르고 꽃이 오래가서 조경용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 후 전 세계 라일락 시장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며 사랑을 받았고, 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도 매년 수십억 원의 로열티를 물고 역수입되고 있다.

 

 내과 전문의이기도 한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트리면서 시를 냉큼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제목엔 ‘라일락’이란 이름조차 생략해버렸고 ‘미스킴’도 아예 ‘미스김’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양키'라고 쏘아붙일 정도로 내내 비위가 상하고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원래는 우리 것인데 물 건너갔다가 다시 비싼 로열티를 물고 역수입되는 식물은 수수꽃다리 말고도 미국과 유럽에서 개량돼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지리산 자생의 구상나무 등 꽤 많이 있다.

 

 이들이 올 때는 모두 ‘꼬부랑말’을 배워오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 것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과 속상함이 시종 시를 관통하고 있다.

 

 

ACT4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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