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천양희

맑은물56 2011. 4. 28. 21:23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천양희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 시집 『마음의 수수밭』(창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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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만이 온전하게 도구와 불을 사용하는 손을 가졌다. 그 손으로 문명을 건설하고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더러 빗나간 욕망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창조의 손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축복이고 위대함이다. 그 손이 하는 일은 실로 다양하다. 위대한 예술가의 손이나 생명을 구하는 의술의 손 등 누구에게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인 손이 있는가 하면 자식을 위해 늘 기도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도 있다.

 

 그리고 ‘구두 닦는 사람’ ‘창문 닦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등 그들에 의해 세상이 환해지는 손이 있다. 그들의 하는 일은 화려하거나 세속적 관점에서 폼 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심지어 하찮고 구질구질한 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손에 때를 묻히면서 둘레를 빛나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서 오히려 성스러운 삶의 모습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과 이력을 안다고 한다. 러시아의 공산당 혁명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인민재판에 넘겨졌는데, 그때 일일이 기록을 확인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손을 보고 직업을 판별하고 자본가계급을 가려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적절치 않은 비유지만 그 손이 삶의 과정을 모두 말해주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깨끗한 손은 물론 아름답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손에서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외면적 가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인 것이다. 성자가 된 청소부 ‘자반’처럼 무엇에도 탐욕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서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회에 봉사하는 자세가 바로 성자의 모습이며 성자가 하는 일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고 비울 때 신은 우리 안에 있으며, 우리도 성자가 될 수 있다고  이 시는 말한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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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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