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오늘의 詩] 아네스의 노래 / 이창동

맑은물56 2010. 6. 10. 14:40
[오늘의 詩] 아네스의 노래 / 이창동
 

 

 

 아네스의 노래 / 이창동


그곳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 들려올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한 번도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 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이제 어둠이 오면
촛불이 켜지고 누군가 기도해줄까요

하지만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당신을 축복하리

마음 깊이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마지막 장면에 양미자(윤정희분)가 낭송한 詩다. 영화에서는 자살한 소녀와 그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극중 여주인공 미자가 쓴 시로 되어 있지만 실은 이창동 감독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맞물려 자연히 그에 대한 추모의 정도 함께 배어든 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 노무현을 염두에 두고 보는 것은 편치도 온당하지도 않다고 했다. 노무현에 대한 상징적 해석 없이도 주제와 형식에서 일관된 예술성을 독립적으로 갖춘 작품으로 읽히길 원하기 때문이다. 국어교사에서 소설가로,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가 참여정부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내기도 하였고, 다시 <밀양>과 <시>로 돌아와 이런 시를 쓸 정도의 감성을 지닌 그가 영화에서 추구하는 예술성은 무엇일까. 

 

 ‘시’는 마음에 대한 영화다. 시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듯 이 영화도 그렇다고 이 감독은 말한다. 단순히 재미와 흥행을 겨냥하지 않고 치밀하게 시대정신을 고민하면서 관객과 소통하려는 그의 의지가 돋보인다. 그것은 우리 관객만이 아닌 세계인들의 감성을 매만질 수 있다는 판단이기에 더욱 대견하다.

 

 그의 지난 영화보다 ‘임팩트’와 ‘포스’가 덜해 관객동원은 시원찮지만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발원한 독창적 예술세계를 열어가는 그가 나같은 신통찮은 시인이 보아도 존경스럽다.

 

 

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