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안개 속에 숨다-류시화

맑은물56 2010. 6. 11. 21:32

안개속에 숨다-류시화

 

 

 

 

 

 

 

 

 안개속에 숨다/류시화

 

나무뒤에 숨는것과 안개속에 숨는것은 다르다

나무뒤에선

인기척과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그고독을 들킬가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뒤에 숨는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