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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눈물은 詩가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맑은물56 2010. 6. 14. 15:21
문화
[길 위의 인문학] 눈물은 詩가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 화천=김태훈 기자 sc

文人들과 함께한 화천 탐방
냉전과 내전의 아픔 서린 땅 "역사의 상처 반복되지 않길"

강원도 화천은 군(郡) 전체가 안보 전시장이다.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적군을 '물리치고 사로잡았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파로호(破虜湖)를 비롯해 평화의 댐, 비목(碑木) 공원, 세계평화의 종(鐘) 공원, 인민군사령부 막사 등 '전쟁과 평화'란 주제와 관련된 유적과 기념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주최하고 문학사랑·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한국연극협회가 후원하는 '길 위의 인문학'이 12일 화천군을 찾았다. 탐방단은 동행한 시인들의 평화를 염원하는 시(詩) 낭독에 귀를 기울였고, 삶과 죽음이 명멸하는 전쟁의 비극을 떠올리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6·25전쟁의 발발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한 전문 초빙강사의 강연을 들을 때는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부지런히 메모도 했다.

'평화의 물결, 시 노래로 출렁이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탐방행사에는 윤후명·문정희·유종인·문태준·김선우 시인과 가곡 '비목'의 가사를 쓴 원로작사가 한명희씨, 인기가요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작곡한 가수 김현성씨, 군사편찬연구소의 양영조 책임연구원 등이 동행했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였지만 50여명의 탐방단은 인민군사령부 막사를 시작으로 북한강변을 따라 펼쳐진 '산소의 길'을 거쳐 평화의 댐과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며 60년 전 전쟁의 아픔을 상상했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길 위의 인문학’탐방단이 비목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가수 김현성씨, 양영조 책임연구원, 작사가 한명희씨, 시인 윤후명·문정희·김선우·유종인·문태준씨. /화천=이준헌 객원기자heon@chosun.com
첫 탐방 장소인 인민군사령부 막사 앞에서 문정희 시인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한국의 현실을 군인의 애인이거나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의 시각으로 노래했다. "당신들은 모르실 거예요/ 이 땅에 태어난 여자들은/ 한 때 군인을 애인으로 갖는답니다/이 땅의 젊은 남자들은/ 누구나 군사분계선으로 가서/ 목숨을 거기 내놓고 한 시절/(…)/ 절박하게 고통과 그리움을 배운답니다/(…)/ 그 시차 속에 가끔 사랑이 엇갈리는 일도 있어/ 어느 중년의 오후/(…)/ 군복 벗은 그를 우연히 만나/(…)/ 서로의 생 속에 군사분계선보다 더 녹슨/ 어떤 선을 발견하고 슬퍼한답니다/(…)"(문정희 시 '군인을 위한 노래')

최근 아들이 군 복무를 마쳤다는 한 중년 여성 참석자가 낭독을 들은 후, "처녀 때 사귀던 남자가 생각난다. 그가 입대한 뒤 집안의 압력 때문에 3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고무신을 바꿔 신었다"고 말하자 가벼운 웃음과 작은 탄식이 함께 터졌다. 문 시인에 이어 막사 앞에 선 양영조 책임연구원은 "이 막사는 1945년 소련 주둔군 막사로 지어졌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군단 사령부로 잠시 쓰였고, 화천이 수복되면서 우리 땅에 남게 됐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역사의 엄중한 무게를 느끼는 듯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탐방단은 이날 평화의 댐과 비목공원에서 시 낭독회를 열고 가곡 '비목'도 부르기로 예정했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대신 파로호를 가로질러 평화의 댐으로 가는 배가 선상(船上) 낭독회장으로 변했다. 가수 김현성씨는 김정호의 노래 '하얀 나비'를 불렀고, 윤후명·문태준·김선우·유종인 시인 등이 각자 준비한 시를 낭독했다. 평화의 댐에 도착한 탐방단은 세계평화의 종을 힘껏 함께 치며 한반도의 평화와 조국의 통일을 기원했다. 타종을 마친 뒤 비목 공원으로 자리를 옮긴 탐방단 중 일부가 작사가 한명희씨와 함께 조용히 가곡 '비목'을 불렀다.

60년 전 피로 물들었던 공간에 비가 내려서 일까. 숲은 물의 생명을 한껏 빨아들인 듯 더욱 짙은 녹음을 내뿜었다. 대학생 딸과 함께 이날 행사에 참가한 윤영한씨는 "이번 천안함 사태를 통해 분단국가에서의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역사의 상처가 내 딸과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부터 진행된 '길 위의 인문학' 탐방의 의미를 짚어보고 성과를 중간정리하는 제2회 '길 위의 인문학' 세미나가 21일 오후 3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