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고현정, 김연아
2009. 10. 25.
심상근
피겨스케이팅의 퀸 김연아는 한민족이 피운 최상의 꽃이다.
꽃은 여유다. 꽃은 미덕이다. 꽃은 프라이드이다.
생물의 최종목표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그 생물이 한 종족으로서 성공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것은 뽐냄이고 축제이다.
인간들 사이의 인종 사이에서도 그들의 아름다운 정도는 그 인종의 성공의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그 정도가 높으면
그 사회에서는 세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딸을 팔아먹지 않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점잖음과 너그러움이 그 문화에서
힘을 쓰고 있다는 증거이다.
정치 중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정치는 가난을 초래하는 정치이다. 그래서 필립핀의 민주정치가 최악의 정치에
속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실질적 독재정치가 훨씬 더 선하고 인간적인 정치이다.
가난은, 많은 경우, 계급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말미암아 초래된다. 러시아 내지 소련의 가난, 미국에 비교할 때의
영국의 상대적 가난, 인도의 가난, 그리고 조선왕조의 가난이 이에 속한다.
가난하지 않으려면 신선한 경쟁과 주기적 순환이 필수이다. 양반과 상인들은 결코 그 시회적 순위를 바꾸지 않았고,
그 것은 가난을 초래하였다. 일반적으로, 3대 정도에 걸쳐 부자와 가난뱅이의 자리가 바뀌는 것이 그 사회가 잘사는데
많이 도움이 된다. 농부가 봄이 되면 밭을 갈아 아래 흙을 위로, 위의 흙을 아래로 바꾸어 준다. 그래야 수확이 높아진다.
부자가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관습도 그 사회를 가난하게 만든다. 다만, 경쟁을 신선하게 유지하면 된다.
그러면 부자 자손들은 몇 대 이내에 많은 경우 나락으로 떨어져 가난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분발한다.
그 과정에서 그 사회는 부자가 된다.
양반들이 그들의 사회적 위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일체 발명 개발 생산을 질시하고 억압하며,
이미 시체가 된 중국인들의 시를 달달 외우기에 여념이 없던 조선왕조는 고로 한 종족으로서 패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고,
한일합방은 그 필연적 귀결이었다.
해방 후 드리닥친 동족상잔의 육이오사변은 그 수백 년 고질이 되었던 가난을 복원시켜 주었고, 예를 들어서,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양키들이 보내준 분유를 학교에서 배급받아 하교 길에 홀짝거리며 허기를 달랬다.
양반 찌끄러기였던 이승만은 조선왕조의 그 지옥과 같은 사회질서를 타파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기붕 일가의
번영을 위하여 봉사하다가 갔다. 어리석은 자였다.
1970년 미국에 유학을 가니, 많은 미국인들 특히 할머니들은 우리 한국인 젊은이들을 보면 무엇을 먹이고 주려고 애썼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것은 육이오사변 때 그 꼬질꼬질하고 멋대가리 없고 초보적인 한복차림으로 피난을 가던
이미지뿐이었으므로, 그 미국 할머니들은 소위 한국의 엘리트라는 유학생들을 대할 때에도 먹을 것들, 입을 것들을 공짜로
주고 싶은 모성애에 시달렸다.
그 것도 실제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 시절에는 출국하는 유학생들에게 정부가 허용한 달러는 200달러인가 300달러였으므로,
외국에 가서 죽으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나마 이공계는 미국대학에서 연구조수로 고용하므로 굶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문과유학생들의 고초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바도 많았다.
그 진절머리 나고 지긋지긋하고 악령과 같았던 가난이 차츰 물러가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대였고, 1980년에 이르러서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모멤텀이 컸고,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가난한 나라들은 물론, 일본 미국 등도 감히
얕보지 못할 강성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므로 현재 2009년 한국의 사회는 이 가난에 관련되어 세 세대들이 공존하고 있다.
우선 60세 정도 및 그 이상 연령의 세대는 가난이 악마와 같이 독기를 공기 중에 내어 품던 사회에서 성장하였던 세대이다.
그리고 30여 세 이후에서 50세 정도의 세대는 그 가난의 혼령이 서서히 물러가던 시절에 성장하였고, 그보다 어린 세대는
가난을 오직 이야기로만 전설처럼 들으며 성장한 유복한 세대이다.
한민족은 과거 적어도 수백 년 간 꽃을 피울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서 황진이와 같은 여성은 진정한 꽃이 아니었고,
남성들을 서브하는 역할을 주축으로 하여 일생을 살았다.
한민족 여성들의 한 대표적 이미지는 심청이다. 여성은 천한 동물이었고, 고로, 가난을 다소나마 해결하는데 사용하여도
그리 애석하지 않은 도구였다. 중국의 경우, 딸이 예쁘면 늙은 부자에게 첩으로 팔아먹고, 그 대금을 받은 후 그날 밤으로
가족이 모두 그 고장을 떠나는 예가 종종 있었다. 더 돈을 욹어먹지 못하도록, 당장 그 곳을 떠나는 조건으로 딸을 판 대금을
넘겨받았다. 모두가 굶어 죽는 것보다는 그 길이 났다는 판단이 초래한 관행이었다.
한민족의 경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심청이의 이야기는 음으로 양으로 딸을 이용하여 가난을 해결하였던 관행을 암시한다.
한민족의 그 수백 년의 극심한 가난은 건전하고 신선한 경쟁으로 사는 대신, 계급으로 묶어놓고 가난 속에서 체통을 유지하려던
양반놈들이 초래한 지옥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현정 당시 여배우가 한 재벌가로 시집을 간다는 뉴스를 읽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미국 교포주간지의 나의 칼럼에
나는 거의 조사에 가까운 글을 그 주에 실었다.
7년인가 지난 후, 고현정 씨가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어린 아들과 딸을 뒤에 두고,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그 완강한 재벌가의 쇠사슬을 끊고 탈출하였을 때 안도의 숨을 쉬며, 축하하는 칼럼을 실었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가 그렇게 시집을 간 내막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막연히 나마, 그의 부모친척들이 나와 같은 세대인,
즉 가난을 공기처럼 숨쉬던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과, 심청이의 전설이 전혀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한민족의 그 구차하고
찌들고 창피스러운 민족정서라는 점이 그러한 비극과 어느 정도나마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였다.
창피스러울 정도로 가난한 사회에서는 예쁜 딸이 로또당첨에 해당한다. 최근에도 젊은 여성 연예인들이 자살한 것도 이에 관련된다.
로또복권 구실을 제대로 못한 예쁜 딸들은 많은 경우 부모형제에게 죄스러움을 느낀다. 한 여성연예인이 죽기 직전 끄적거린
낙서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고아로 태어났다면 그는 가난해도 연예인으로 성공만 하면 되었을 것이고, 그
는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진실의 비극도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진실의 남편이 최진실 어머니, 즉 장모에게서 고소를 당했는데, 그 이유는 2억원인가
사업을 하겠다고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서였다. 그 돈을 누가 관리하던 간에, 최진실이 번 돈이다. 장모되는 여자가 돈을 갚으라고
사위에게 앙탈을 부리는 것도 눈살 찌푸릴 일인데, 공개적으로 고소를 해? 최진실과 그 남편이 부부싸움을 하면 최진실 남자
동기간들이 와서 그 남편을 몰매로 두드려 패었다. 최진실이 로또복권이 아니었다면, 즉, 남편과 같이 둘이서
길가에서 풀빵을 구어 팔아 사는 존재였다면, 그 친정식구들은 그들 근처 10리 이내에 접근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최진실은
가난 속에서나마 지금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알공달공 살고 있을 것이다.
최진실의 어머니도 나와 같은 연령대로서 가난을 숨쉬며 성장한 세대에 속한다. 그 것이 그 모든 비극의 배경이다.
다행히 한민족은 세계에서 경쟁하는 방법들을 지난 수십 년 간 터득하였고 이제 도사급에 이르렀고, 배고픔 대신 비만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가난을 지난 주 걸렸던 감기 정도로 생각한다.
아래는 몇 주 전 전철에서 들은 대화다. 멀쩡하게 생긴 20살 가량의 청년 둘이 나눈 대화는 이랬다:
“그 돈을 마련하려고 알바를 알아보았거던. 근데 엄마가 말리더라구, 차라리 자기가 마련해 줄 테니 그런 알바는 하지 말라구.”
그러자 그의 친구가 자취를 하는지 음식 준비하는 이야기를 하였고 ‘식용유’를 쓴다는 대목이 나왔다. 그러자 그의 친구는,
“너, 참기름 없어?”하니까, “엉. 참기름이 없어.”하니까, “너의 아버지 너무 한다. 그 정도도 안 도와 주셔?”하니,
“엉, 우리 아버지는 그래.”
우리 세대에서는 그 나이에 우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로 참기름 살 돈도 없으면 더더구나 그런 이야기는
피한다. 우리 세대에게는 가난은 문둥병만큼 지긋지긋하고 창피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가난’이라는 것이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는, 그냥 공기에 떠도는 바이러스 정도로 치부한다.
그 것은 축복이다. 그 것은 행복이다. 그 것은 행운이다.
한민족이 그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느낀다면, 그 역사가 반만년 만에 피운 지고한 꽃송이가 김연아다.
한국뿐이 아니었다. 앵글로색슨을 비롯한 서구인종들은 동양인들을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운 종족으로 보았다.
2차세계대전 후 미국 군용창고마다 넘쳐나는 폭탄과 총알의 재고품들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 크게 작용하였던 월남전은
백인들의 동양인들에 대한 그러한 인식을 증명한 비극이었다.
007 시리즈에 나오는 흑발의 미녀들은 모두가 ‘황진이’ 수준으로 연출되었다. 말없이, 오직 요염한 미소를 띠우며 백인남자의
나체 밑에서 순종하는 역할. 혹은, 미친 동양계 과학자 밑에서 혹은 미친 백인계 살인마 밑에서 순종하는 로봇 같은 존재.
미국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동양계 여성들도 그랬다. 하버드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도 사귀는 백인남자가 원하면 그대로 옷을
벗고 눕는 존재. 하버드 여학생도 흑발이면 그런 식으로 묘사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컸던 딸이 여섯 살 때 혼자 투덜거리던 한 마디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내 머리가 노랑이 아니라 공주 역할을
안 준거야…” 그 동네 유치원에서 연말에 연극을 하였는데, 제 딴에는 제가 제일 예쁘고 고로 공주역을 맡아야 한다고 내심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백인들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동네에서 어림도 없는 돼지계산이었다.
그래서 제 나라가 좋다는 것이다.
김연아는 이순신에 버금가는 영웅이다. 이순신이 왜군을 물리쳤다면 김연아는 그 콧대 높은 노랑머리 백인들의 편견을 박살을 낸
여제이다.
김연아는 007 주제가를 선택하여 소위 ‘본드걸’로서 2009년 그랑프리에 출전하여 세계인들을 매료시켰다.
그 것도 그 콧대높은 프랑스에서. 김연아는 지존의 공주였고 여제였다. 007 영화에 나오던 그 흑발의 여인이 아닌,
인류의 지존의 꽃으로서 섰다. 정말로 길고 먼 여정이었지만, 동양계 한 여성이 온 인류를 대표하는 꽃으로 군림하였다.
그 것은, 한민족에게, 한 종족으로서, 가장 큰 영광이었다.
우리는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 꽃들을 들여다 보고 이야기한다: “올해 꽃들은 싱싱하고 아름답네!” 그 이야기 한 마디를
듣기 위하여 그 꽃들은 겨울 내내 쉴 틈 없이 노력한다. 우리가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의 건강과 유복함 등을 판단하듯이
우리는 꽃을 보고 그 식물내지 그 자연의 건강을 판단한다. 실용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꽃은 아주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
대충 아름다우면 된다. 그러나 식물들은 각기 자기의 꽃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혼신을 한다.
그들이 조선왕조의 양반놈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건강하고 떳떳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서이다.
김연아로 인하여, 2009년은 한민족에게, 한국에게, 한국인들에게, 정말로, 아름다운 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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