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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정치적 무생물인가? /김부겸 의원 칼럼

맑은물56 2009. 6. 4. 11:53

대통령은 정치적 무생물인가? 
 

                                                                                           국회의원 김부겸 

미안함과 슬픔, 회한과 통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눈물마저 말랐습니다. 한숨도 쉬지 않기로 했습니다. 상황이 대단히 엄중합니다.


소통과 화합은 가능한가?

많은 이들이 지금 소통과 화합을 말하고, 대통령의 각성을 촉구하며 국정 운영 기조의 전환을 주문합니다. 맞습니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합니다. 달라지지 않으면 대한민국호는 난파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의 인격 자체가 결코 민주주의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가 출신입니다. 그런데 기업이란 조직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은 1인 1표의 평등에 기초하지만 기업에서는 소유 지분에 비례한 차등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결정권자의 집행자, 하위 추종자로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가 몸에 뱄을 겁니다.


대통령의 공포심

그런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반 촛불집회를 겪었습니다. 아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익이 없는 장사는 처음부터 안 한다는 기업가적 마인드로 봤을 때, 저렇게 많은 사람이 무슨 득을 보겠다고 저렇게까지 하는지 당연히 이해 못 했을 겁니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공포심과 함께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 말이 ‘촛불은 누가 사 줬어?’입니다. 소위 배후조종설입니다. 자신에 대한 ‘구조화된 반대세력’이 있고 그들은 쇠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대중을 교묘하게 선동했다고 단정했습니다.

대통령이 보기엔 인터넷이 그랬고 MBC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추진한 게 소위 MB 악법입니다. 미디어법을 비롯해 마스크법이라고 하는 집시법, 감청을 일상화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하려는 정보통신망법 등 전부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법들입니다.

그 다음 남은 문제가 ‘구조화된 반대세력’입니다. 사실 촛불은 미국 쇠고기 때 처음 나타난 게 아닙니다. 미군 장갑차에 압사 당한 효순이-미선이 추모제 때가 처음입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사건입니다. 2004년 대통령 탄핵 때도 촛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촛불’ 하면 지금 청와대나 한나라당은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내지 노무현 지지 세력을 포위, 고립, 사장시키지 않으면 촛불은 언제 어디서 다시 요원으로 퍼져나갈지 모른다는 공포심, 그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잠 못 드는 이유였습니다.

공포는 계속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500만 명이 향을 지폈고, 40만 명이 눈물로 지켜봤습니다. 이것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을 겁니다.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이 몰려들지?’, ‘저 군중이 소요를 일으키면 어떡하지?’ 오로지 그것만 걱정입니다. 그래서 광장을 끝내 내주지 않았습니다. 대한문 앞 분향소를 경찰차로 둘러막았습니다. 영결식이 끝나자마자 그마저 때려 부쉈습니다. 고종의 인산을 막던 조선총독부가 이랬을까 싶습니다.


인격적 결함과 제도적 약점의 최악 결합

대통령의 통치 행태가 바뀌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제도적 차원’의 것입니다.

현행 대통령제는 5년 단임입니다. 최근 한나라당 지지율이 확 떨어졌습니다. 다음 선거를 치러야 할 한나라당은 당연히 근심이 깊고 걱정이 큽니다. 그러나 다음 선거란 게 없는 대통령 입장에선 지지율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하고 마음만 먹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특히 제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대통령이면 오히려 거꾸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고 싶지만 청와대는 꿈쩍도 안 하는 이런 상황이 바로 우리 대통령제의 치명적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대통령은 정치적 무생물에 가깝습니다. 무생물은 생명이 없으니까 생명 유지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Input과 Output이 있어야 유지되는 건데 지금 대통령은 이게 없습니다. 한번 선거에서 권력을 잡으면 그 다음부터는 마치 당신들이 나한테 모든 걸 맡겼으니 무조건 나만 따라 오라는 식입니다.


오늘 우리가 놓인 상태는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인격적 결함과 단임 대통령제가 갖는 제도적 약점이 최악의 결합을 이루면서 오만과 독선의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의 물리력이 없으면 유지가 안 되는 정권이 됐습니다. 그런 정권이 바로 독재 정권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당은 여전히 민주화 진영의 마지막 정치적 보루입니다. 우선 그동안 이런 저런 사정으로 분열되어 있던 세력들이 하나의 대오로 결집해야 합니다. 탈당했던 정치인, 실망하고 뒤로 물러나 있던 당원들, 여전히 불만스럽지만 이명박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데 공감하는 모든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기치 하에 모였으면 합니다. 두 진보 정당은 물론 창조한국당, 사안에 따라서는 자유선진당과의 연대도 필수적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내 진통이 다소 있더라도 선거연합까지 가야 합니다.

앞으로 사회경제적 투쟁 현장에도 민주당은 함께 해야 합니다. 용산 참사, 화물연대 파업,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원내투쟁에서 소속 의원들이 가진 모든 걸 걸겠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의원직까지도 전부 던질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 조기 전당대회를 하든, 형식적이든 내용적이든 지도부를 교체하니 마니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당내 권력투쟁에 지나지 않습니다. 청와대가 바뀌지 않으면 그 무엇도 국민들에게 의미 없는 일입니다.

개헌도 필요합니다.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헌법이 성경이 아닌 한 20년 동안 바뀐 환경을 반영하는 수준만큼의 변화는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책임성, 반응성을 높일 권력 구조 상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정당정치를 강화하고 의사당 안에서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고 국민적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제도 개혁은 더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싸워야 할 것입니다. 다시 민주화 투쟁입니다. 결코 대통령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 운영 방식이랄 것도 없이 오직 ‘공안 통치’만이 횡행하는 독재시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온통 부엉이 바위입니다.


왕을 시해한 그날 밤, 맥베드는 독백합니다.


여기 내 손을 좀 봐!

넵튠 신의 바닷물을 다 가져온다 한들

내 손에 묻은 이 피를 깨끗이 씻어낼 수 있을까?


                                                      <맥베드 2막 2장>


자신의 피 묻은 손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맥베드가 차라리 인간적인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는 다시 투쟁입니다.


2009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