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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을 비판한다.

맑은물56 2009. 6. 4. 13:44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을 비판한다. [845]

  • 우주인짱 cad**** 우주인짱님프로필이미지
    • 번호 578894 | 09.06.04 08:08 IP 121.1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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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6월 대학 내 소수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2004년 탄핵정국 그리고 2002년 신문광고를 통한 특정인에 대한 지지선언 등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가르쳐야 하는 대학 속에 포함된 소수 정치성향의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가에 비하여 떡 없이 오르는 대학등록금 문제로 자신들이 가르치는 제자들이 힘들어 할 때는 등짐을 지고 모른 척 하였던 소수 정치성향의 교수들이 2009년 또 다시 자신들의 조직 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대한민국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시국선언이라면 학자의 양심에 따라서 정치적 발언을 필요 하지만 2009년 6월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시국선언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시국선언이 아니고 특정정치 성향을 가진 집단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현 정부의 정책 중에서 학자적 지식으로 찬성할 수 없는 정책에 대하여 관련 교수들의 집단적 반대표명은 가능하다. 대운하 같은 잘못된 정책에 대하여 관련 교수 집단의 반대가 필요하다. 냄비 여론의 일반통행에 대하여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조직체 속 논리를 가지고 학자의 신분을 이용하는 것을 분명히 잘못 된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민주주의의 죽음이라고 표명하는 것이 교수들이 할 수 있는 발언인가. 피의 사실 공표로 남상국사장님이 죽었을 때 지금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는 어느 편에 있었는가. 권력에 대하여 저항을 했는가. 오히려 탄핵사유를 가진 권력의 편에 서서 논리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용하여 노무현의 탄핵을 반대했다.

     

    먼저 2004년 탄핵 사유는 명백하다. 행정 권력을 가진 자가 선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만든 당 후보를 선택해 주면 그 지역 유권자에게 응분의 사례를 하겠다는 표명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 하는가.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명의 한계를 넘어선 것 이다. 행정부 수장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을 사용하여 유권자를 매수하려고 했다, 정치적 의사 표명이 아닌 유권자 매수행위에 해당한다.

     

    3권이 분리를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행정부 수장의 권력이 사법과 입법부의 권력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골적으로 행정부 수반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여 자신이 만든 당 입후보자를 선택해 주면 사후에 응분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말로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 행위를 기만하는 것은 탄핵 사유가 된다. 군사력을 동원해야만 내란 사유인가. 국민 세금으로 입법 권력을 찬탈하려고 하는 행위도 내란죄에 해당한다.

     

    노무현의 내란사유에 해당하는 발언을 듣고도 탄핵된 노무현을 구하기 위하여 여론조사 경험치를 가지고 국민을 기만했던 정치색 있는 대학내 소수 교수들이 2009년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려고 한다.

     

    여론조사의 과정에 대하여 대학교수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조사대상의 신분이 들어날 수밖에 없다. 전화조사 대상이 되는 할당표본에 들어가는 조사대상은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에 응할 때 투명한 유리박스에 자신이 들어간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는 조사대상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지만 조사대상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조사하는 기관이 알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따라서 탄핵사태와 이번 노무현의 자살이후 인위적으로 조성된 추모분위기 속에서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따르는 감상적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탄핵과정에서 시위를 통하여 국민들의 불안을 조성하고 반대편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언론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나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을까. 방송과 신문을 통하여 노무현을 우상화 하면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민 개개인의 민주적 소양은 아직까지 감성적 판단이 강한 후진국 수준에 있다. 그들에게 여론을 통하여 잘못된 정보로 우상화를 강요하면서 올바른 답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시도이다. 이런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들이 언론노조 관련자인데 이들이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논리가 이들의 행위 때문에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두 번째로 검찰의 조사행위는 정당하고 피의사실 공개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노골적으로 벌어졌다.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쪽에서 5년 동안 한나라당을 무엇이라고 불렀던가. 차떼기당이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한나라당이 차량을 이용하여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들어났는가. 한나라당의 피의사실이 어떻게 언론에 의하여 알려졌는가. 그 밖에 열우당에 유리한 피의 사실이 수 없이 공개되고 이를 근거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의 지역을 비난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피의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면 국민의 알권리가 사라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통하여 국가의 미래가 선택되는 국가에서 국민의 알권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유와 평등, 인권 등 보다 국민들의 알권리가 더 중요하다.

     

    일반범의 피의사실은 공개할 필요 없지만 강호순 사건, 유영철 사건 그리고 서민들에게 피해를 준 대형사건에 대하여는 피의사실이 반듯히 공개되어야 한다. 아울러 가진 자들의 죄에 대한 피의 사실이 공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국민 기만행위에 대하여는 피의사실이 명백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피의사실 공개는 범죄행의에 대한 경박심을 주는 기능이 있다. 재판과정에 끝난 사건에 대하여 누가 관심을 갖는가.

     

    지자체장들이 재판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피의 사실에 의하여 사퇴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참여연대라는 조직은 이런 사퇴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조직이다. 피의 사실 내용으로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던 지자체장의 퇴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던 자들이 이번 노무현의 부패혐의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들어난 피의사실 공개에 대하여 검찰을 비난하고 있다.

     

    망신주기 전략은 어느 쪽의 주 전략인가. 노무현의 정치활동 자체가 남을 망신 주는 것이었다. 명패 던지기, 청문회에서 상식론을 말하면서 증인을 망신주기, 노무현의 부산출마과 낙선으로 노무현의 실체를 아는 부산사람들이 지역주의자로 매도당하는 망신을 당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이 정치적 성장을 하지 않았는가.

     

    노무현의 희생은 없었다. 오히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려는 노무현의 행동을 사람들이 잘못 판단하여 희생으로 착각한 것이다. 부산출마는 지역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고 노무현에게 이익되는 인맥들이 부산에 있어서 그곳에서 떨어져도 노무현이 이권을 취할 수 있어서 부산에 출마한 것이다.

     

    노무현이 청문회 스타라고 말하지만 과연 노무현이 청문회 스타인가.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이 한말이 자신에게 되돌아 오지 않았는가. 돈을 받고 특혜를 주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이번에는 특혜 없이 후원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었던 것 아닌가. 그래서 부인과 가족들이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노무현의 청문회 논리가 옳다면 노무현의 범죄혐의도 명백하다.

     

    삼당합당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희생으로 칭송되지만 노무현이 정권을 잡은 후에 한나라당과 연정을 추진했다. 한나라당과 연정이 필요할 까. 필요한 정책은 한나라당의 정책과 교차협력 방식으로 얼마든지 한나라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연정을 제의했다. 연정제의를 한나라당이 받아들였다면 정치적 협상이 뒤따른다. 협상과정에서 당연히 정치 지분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과 연정제의는 퇴임 후 정치지분을 갖기 위한 시도였다, 정치지분을 얻기 위하여 뽑아준 사람을 배신하는 행동을 시도했다. 그럼 김영삼이 합당을 하면서 부산지역 지분 중에서 포기한 지분이 노무현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노무현이 합당에 거부한 것이라는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무현과 박연차 사이에 금전거래에서 특혜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혜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노무현이 대통령 이었을 때와 박연차가 새로운 정치적 끈을 잡았을 때 박연차는 다른 행동습성을 보여주었다. 노무현이 권력의 핵심일 때는 노무현 측에서 요구하는 달러를 130여명의 직원까지 동원하면서 달러로 환전해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권력 말기 어떤 행동을 보여주었는가. 봉하건물에 대하여 15억 차용증 그리고 강금원과 전 정비서관 과 박연차가 모여서 봉하개발 회사를 만들고 돈을 투자하자고 했을 때 박연차가 돈을 500만 달러로 전달했다. 뜯긴 돈이라는 것이 명백하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2004년 남상국 사장의 자살을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은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고 국민들에게 공헌을 했다. 남상국 사장님은 노무현의 말을 믿었던 것 같다. 노건평이 대우건설에 와서 청탁을 하자. 노무현의 말을 믿고 과감히 청탁을 거부했다. 그 과정에서 3000만원이라는 돈이 전달된 것이다. 3000만원이 청탁의 대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1억을 마련해 줄 것이니. 앞으로 공기업화 될 가능성이 높은 회사 사장자리를 줄 것인가. 3000만원은 대졸 초봉의 연봉수준이다. 그 돈으로 대우건설 사장을 연임할 수 있다고 믿는가. 노무현은 믿었을까.

     

    “청탁을 하면 패가 망신”이라고 주절 거렸지만 노무현의 행동으로 자신의 가족의 청탁을 거부한 사람을 매몰차게 거짓내용으로 인식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 노무현이 사실관계를 몰랐을까. 그럼 어떻게 대우건설 사장이 부도위기 대우건설 경영상태를 호전시킨 공이 있는데 연임에 실패한 것인가. 3000만원을 주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노건평의 청탁이 성공했다면 노무현의 부패자금의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었을 것이다. 대우 건설 남상국 사장에게 청탁하고 그것이 밝혀지자 기자회견에서 청탁거부한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해서 다음 청탁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남상국 사장이 목숨을 끓어서 노무현의 시도를 분쇄해 버렸다.

     

    그래서 박연차 처럼 노무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노무현의 먹이감이 된 것이라고 나는 추론한다.

    노무현은 기자회견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시골촌부에게 굽신거려다고 비냥거렸다. 그런데 좋은 대학의 교수님들이 노무현의 변호사적 소양으로 살아간 삶에 기만당하여 노무현을 성인으로 만들고 있다.

     

    과거 사회를 위하여 저항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이 교수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힘을 모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모아준 힘을 정치화된 인간들이 어떻게 악용하는가. 거짓된 노무현의 죽음을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는가.

     

    이제 정신을 차려 주었으면 한다. 힘이 부족해도 진실된 선의 사람들의 힘을 얻어서 저항해야지. 거짓된 자들에 기대어 소탐대실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가 기본이 아니다. 법을 만들고 그 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공동체 속에서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유만을 외치면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서민들을 지켜주는 것은 경찰과 검찰이다. 그리고 군대조직이다. 그들의 책임감이 우리의 삶의 기반이다. 그들의 책임감 위에 우리는 떠 있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깊은 혼란 속에 빠져 살 수밖에 없다.

     

    일부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군대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기반인 조직을 무너뜨리지 말자. 우리의 모든 권리는 사회공동체 속에 있어야 존재한다. 사회공동체가 없으면 우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들을 지켜주는 실질적 힘인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군대조직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시국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죄 성명이 뒤 따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국선언 과정에서 벌어진 어르신의 돌발행위도 문제가 있지만 20대 젊은 놈들이 어르신의 행위에 대하여 “앉져라, 앉져라”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 속 이념화된 인간의 몰 인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인간성인데 개인의 인간성도 갖추어지지 않은 자들의 이념은 대양이 떠있는 나뭇잎과 같다. 필요에 따라서 언제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반증을 참여연대 같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세력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삼가 다시 한번 고남상국 사장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