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의 이야기/맑은물의 이야기

사랑하는 은종이에게

맑은물56 2009. 6. 1. 00:28

역경


원효처럼 타는 갈증이 있어야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는 갈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물의 형상이 육안으로 분별되는 대낮이었다면
과연 원효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실 수가 있었을까요.
아직 꽃잎이 가지 끝에 화사하게 남아 있는데
어찌 열매가 열리겠습니까.


- 이외수의《숨결》중에서 -


* 진리는 단순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야 봄이 찾아오고
어둔 밤이 지나야 아침이 찾아오듯
꽃잎도 다 떨어진 후에 열매가 열립니다.
이처럼 역경을 겪은 후 좋은 날이 찾아오며  
슬픈 날이 지난 후 기쁜 날이 찾아옵니다.
역경은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베토벤 / 로망스 No.2 F장조






        베토벤
      로망스 No.2 F장조 

      베토벤은 "로망스"란 이름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두 곡 썼는데 1번이 G장조, 지금 들으시는 2번이 F장조이다.
      2번 F장조가 먼저 작곡되었지만 출판순서에 의해 G장조가 1번이되었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자살을 생각하고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있었다는데 극도의 절망감을 극복한 심정을 이러한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후디 메뉴인
       
      메뉴인은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잡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주활동을 하다가, 마침 미국에 들른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네스쿠를 따라 파리에 갑니다.
      스승은 몇 년 뒤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며 독일의 아돌프 부쉬를 소개해줍니다.
      메뉴인은 1927년 10세의 나이로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통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습니다.

      그는 1936년 아들에게 안식년을 주기 위한 어머니의 배려에 따라 연주활동을 멈췄습니다.
      메뉴인은 컴백하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연합군 진지와 적십자 캠프를 누비며 무려 500여 회의
      자선공연을 했습니다.
      늘 마지막곡은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로 끝냈다고 합니다.

      메뉴인의 용기와 사랑은 전후에 더욱 빛납니다. 그는 전후 나치 협력자라는 이유 때문에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직을 박탈당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옹호합니다.
      그를 스위스 루체른으로 초청해  베토벤, 브람스의 곡을 함께 녹음하고 명반들을 내놓습니다.
      메뉴인은 “푸르트벵글러가 겉으로는 히틀러에 협력했는지 몰라도, 베를린 필의 유태인 단원 30여명
      무사히 해외로 도피시킨 공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푸르트벵글러를 나치주의자로만 보기 곤란하다는 시각이 우세해졌습니다만,
      당시 메뉴인으로서는 엄청난 비난을 각오한 행동이었습니다.

 

어려움을 잘 이겨낸

너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며

오늘도 힘차게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시인에게

너의 편지를 보여드렸더니

고맙고 든든하다 말씀하시더라.

은종아

더욱 힘내서

네가 꿈꾸는 정의롭고 멋진, 밝은 세상

만들어 가자.

 

언제나 은종이를 사랑하는

맑은물 최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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