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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를 보다 / 유종인

맑은물56 2009. 5. 25. 12:15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를 보다 / 유종인


버드나무는 우듬지가 보이지 않는다.
치렁치렁한 줄기 가지로 옅은 바람을 탄다
흰 말이 곁에 있었지만
수양인지 능수인지 모를 버들은 말을 건드리지 않는다

말은 예민한 짐승, 잘못 건드리면
주인도 태우지 않고 먼 들판으로 달아난다
거기서 말의 고삐와 안장은
들꽃들의 우스갯거리에 불과하다
이 흰말에 죽은 말벗을 태우려 했나니 이 흰
말의 잔등에 앉아 영원을 달리려 했더니

버드나무는 고삐도 없이 수백 년 한자리에 묶이고
잠시 매인 흰 말은 무료한 투레질로
오월 허공에 뜬 버들잎에 허연 침버캐를 묻힌다
가만히 버들가지가 말의 허리를 쓸어준다
흰 말은 치뜬 눈동자가 고요해지며 제 눈의 호수에
버들잎 몇 개를 띄어준다 눈이 없는
버드나무는 말의 항문을 잎 끝으로 간질이자, 말은
색(色)이 안 든 허공에 뒷발질을 먹인다 허공은 죄가 없으므로
멍이 들지 않는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다

주인이 오지 않는 흰 말과 버드나무
사이에 능수(能手)와 능란(能爛)의 연리지(連理枝) 고삐 끈이 늘어진다
버드나무는 오히려 짐승처럼 징그럽고
흰 말은 꽃 핀 오두막처럼 고요하다
친연(親緣)의 한나절이 주인을 빼먹은 일로 갸륵하다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공재 윤두서의 그림.보물.


 

 

/ 시인

- 1968년 인천 출생
-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등단.
-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과 
-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 
- 2007년 ‘유하백마도'를 보다’ 로 '제2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 
- 시집으론 <아껴먹는 슬픔(2002) 교우록(2005) 문학과지성사 >      
                <수수밭 전별기(2007) 실천문학사> 
- 에세이집으로는 < 염전- 소금이 일어나는 거울(2007)>         
                <산책- 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2008)> 
- 현재) 시인학교 詩냇물 5기(2008) ~6기(2009) 강의 
- 현재) 『 현실참여 문인 . 시민 연대』"징" 창작교실 강의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허브와풍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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