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김관식 체온계 붉은 눈금 38˚ 아파 누웠습니다. 사회시간 지도를 펼치면 아시아 한반도 붉은 금 38˚ 눕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지우개 찾았습니다. * * * 우리가 아픈데 내가 어떻게 안 아파? - 김관식 ‘38˚ 이런 말 들어보았을 것이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불교 고승일화에 나오는 말로 유마 거사가 했다고 한다. 높은 법력으로 유명했던 유마 거사도 사람인지라 몸이 아플 때가 있었나 보다. 석가모니께서 문수보살을 시켜 병문안을 한다. 문수보살은 혹시 거사의 수련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여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찌 거사 같은 분이 아플 수가 있사온지요?” 그에 대한 대답이 저것이다. 며칠 전 대한민국은 고승 하나를 잃었다. 직책이 높아서 고승이 아니요, 신통력이 커서 고승이 아니요, 학식이 많아서 고승이 아니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으로써 고승일 수 있었던 법정 스님. 사인은 폐암. 속세의 사람들은 담배를 태우고 매연을 마셔서 폐암이 온다던데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늘 곁에 두고 사신 분의 허파에는 어떤 모진 것이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일까. 생전에 그가 쓰신 유작을 읽으며 나는 그 답을 스스로 찾는다. 그의 심장과 폐는 육신에 갇혀 산중에 있었으나 그의 의식은 언제나 중생을 향해 있었다. 끊임없는 염려에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게다. 소개한 시는 1950년대에 주로 활동한 김관식 시인의 작품이다. 한국전쟁 이후 북위 38도와 거의 일치하는 국경선 아닌 국경선을 지니게 된 우리 겨레. 김관식이 활동하던 시기는 바로 이 한국전쟁의 전과 후였다. 건강한 사람의 체온은 37.5도이다. 감기 따위 질병에 걸리면 38도를 넘게 되고 39도나 40도에 육박하면 질병 이전에 고열이 원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 이 숫자 38의 겹침을 이용해 겨레의 아픔과 개인의 아픔을 하나로 묶어 보인 수작이다. 다만 논리구조상 다른 점이 있다면 ‘38선이 그어져서 내가 38도로 아프다’가 아니라 ‘내가 38도로 아파도 38선 그어진 한반도가 더 아플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앓을 수도 없다’이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그래서 아프단 소리도 하지 못하겠다.” 이를테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태어날 적부터 그어져 있던 38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술 더 떠서 그 선이 지워져 북녘의 가난한 동포들과 가난을 나누게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의 비율이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는 이 세대. 문득 중생의 아픔이란 것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 <38˚>는 여전히 내게 아픈 시이다. 내 왼 가슴 언저리를 아프게 하는 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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