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사상(唯識思想)(2)
마성/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1. 유식설(唯識說)
지난 호에서는 ‘유식사상의 성립과 전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유식학파의 사상과 수행’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초기․부파불교에서는 심(心, citta)․의(意, mano)․식(識, viññāṇa)을 거의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에서는 “윈냐나(viññāṇa)와 찟따(citta)와 마노(mano)는 뜻에서는 하나이다.” [Vissudhimagga of Buddhaghosa (=Vism), ed. C.A.F. Rhys Davids, reprinted in one volume, London: PTS, 1975, p.452, "viññāṇaṁ, cittaṁ, mano ti atthato ekaṁ."]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근거를 『쌍윳따 니까야(Saṁyutta-nikāya)』에서 찾고 있습니다. [Saṁyutta-nikāya (=SN), ed. L. Feer, 5 volumes, London: PTS, 1884-1904, Ⅱ p.94] 이처럼 찟따(citta)와 윈냐나(viññāṇa)는 아무런 구분 없이 완전한 동의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굳이 구분한다면 찟따는 마음이나 알음알이 등을 뜻하는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 윈냐나는 여섯 감각기관과 여섯 대상이 있는 곳에서 따라 일어나는 알음알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을 뿐입니다. [대림 · 각묵, 『아비담마 길라잡이(상)』(서울: 초기불전연구원, 2002), p.101] 한편 아비담마에서의 마음은 대상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지만, 유식에서는 대상이 없이도 마음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대림 · 각묵, 위의 책, p.64 참조]
유식학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그 자체에 가치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자기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에 대하여 유식학에서는 8식과 5위 100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병을 앓는 이에게 나타난 아지랑이거나 신기루 또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오직 알음알이에 의해 이루어진 망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철헌, 『대승불교의 가르침』(서울: 문중, 2008), p.158]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를 18계(界)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마음[意根]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을 통하여 빛깔과 형태[色境]․소리[聲境]․냄새[香境]․맛[味境]․닿음[觸境]․생각[法境]의 여섯 가지 감각대상[六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를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여섯 가지 인식[六識]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9] 이것을 근(根)․경(境)․식(識)의 삼사화합(三事和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식의 기능을 가진 기관[根]과 인식의 대상[境]과 인식의 작용[識]의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섯 번째의 의식(意識)입니다. 이 의식은 앞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들과 함께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식은 현재에 존재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며[自性分別],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며[隨念分別], 과거로부터 보고 들은 사실을 통해 착각과 오류를 범하기도[計度分別] 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9]
부파불교교학을 정리한 『구사론(俱舍論)』에서는 마음[心]과 생각[意]과 알음알이[識]에 대해서 마음을 작용하는 상태에 따라 각각 달리 부른 것일 뿐 그 실체는 하나[心體一說]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과 작용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心, citta]은 여러 가지 정신활동과 몸과 입과 의지로 어떤 행위를 하게하며, 생각[意, manas]은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며, 본성을 잘못 이해하여 집착하면서 번뇌를 일으키는 작용을 하며, 알음알이[識, vijñāna]는 모든 대상을 식별하고 좋다 나쁘다 등으로 인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59]
유식학에서는 여섯 번째 식인 의식을 더욱 세분하여 의식(意識, mano-vijñāna)과 말나식(末那識, manas-vijñāna)과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으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셋은 그 실체가 각각 다르다[心體別說]고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의 말나식을 제7식이라 하고, 여덟 번째의 아뢰야식을 제8식이라고 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60]
의식(意識, mano-vijñāna)은 앞의 다섯 알음알이와 함께 현상계를 인식하며 대상에 대하여 착한 성품[善性], 나쁜 성품[惡性],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는 성품[無記性] 등의 내용을 결정합니다[五俱意識]. 그리고 현상계의 대상이 없이 단독으로 실체가 없는 이름이나 모양을 대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獨散意識], 꿈 가운데에서 활동하기도 하고[夢中意識], 선정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기도 합니다.[定中意識] 이와 같이 의식은 현재의 사물을 헤아리고[現量], 여러 가지를 비교하여 판단하고[比量], 그릇되게 판단하기[非量]도 하는 등 널리 여러 가지 작용을 합니다.[廣緣意識] [이철헌, 위의 책, p.160]
말나식(末那識, manas-vijñāna)은 분별식(分別識)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감각 기관을 통해 감각 대상을 받아들임에 있어 분별하여 어리석음, 착각, 교만, 애착 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각하고 헤아린다.’하여 사량식(思量識)이라고도 합니다. 말나식은 우리의 자아의식과 이기심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의식이 의지하는 곳이면서 아뢰야식에 의지하여 활동합니다. 이 식은 평등하고 지혜로운 무아(無我)의 마음을 착각하여 나에 대한 집착과 법에 대한 집착 등의 근본번뇌를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내심(內心)이 혼탁해지고, ‘참나’를 망각하기도 하고[我痴], 나에 대한 편견을 일으키기도 하고[我見], 자기 자신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고[我慢], 자신에 대한 애착으로 배타적인 차별심을 내는[我愛] 근본번뇌를 일으킵니다. 말나식은 선과 악의 마음작용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많은 업을 짓도록 하여 윤회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p.160-161]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은 말나식에 대해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장식(貯藏識)이라고도 하는데, 인식 기관을 통해 인식의 대상을 받아들여 분별하여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생명체로서 현실을 전개하는 주체가 되고 동시에 윤회의 주체가 되며, 단절되지 않고 과보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과보식(果報識)이라고도 합니다.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으로 윤회하면서 다른 과보를 받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숙식(異熟識)이라고도 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61]
부파불교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사상이 대승불교로 이어져 인격의 주체 속에 잠재의식․무의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곳에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상으로 확립된 것입니다. 우리가 선업을 행하든 악업을 행하든 이 아뢰야식에 수용될 때에는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닌 무기성(無記性)의 것으로 저장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p.161-162]
우리들의 모든 행위는 씨앗이 되어 아뢰야식에 저장되고, 계속적으로 새로 짓는 업에 의해 싹터 자라고 성숙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매가 완전히 성숙하면 과보가 되어 다시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지은 업이 아뢰야식에 저장되었다가 길흉화복으로 다시 나타난다는 내용으로 업과 과보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 바로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입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62]
2. 삼성설(三性說)
유식학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인식하는 마음의 성질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이른바 두루 분별한 성질[遍計所執性], 다른 것에 의존한 성질[依他起性], 올바르게 이루어진 성질[圓成實性] 등입니다. 첫째,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란 올바르지 못한 견해 등으로 실체가 없는 것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즉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고 편견과 선입견과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환상이나 착각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둘째, 의타기성(依他起性)이란 다른 조건들과 서로 의지하고 관련이 되어 생성된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들과 인연이 되어서 생성되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인 연기(緣起)사상과 같습니다. 셋째, 원성실성(圓成實性)이란 위의 두 가지 잘못된 성질들을 벗어난 진실하고 올바른 실체를 말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 성질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투명한 수정(水晶)을 황색이나 녹색의 바탕 위에 올려놓으면 이 색깔이 수정에 비쳐서 호박(琥珀)이나 벽옥(碧玉)으로 보이지만, 실제 거기에 있다고 생각되는 호박이나 벽옥은 사실 ‘가립(假立)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수정 그 자체도 또한 본래부터 있었던 불변의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존하는 존재형태의 것’이며, 수정에서 호박이나 벽옥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를 ‘원만한 존재’ 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178]
이와 같은 비유는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이 이 현상계를 관찰할 때에 이러한 세 가지의 성립조건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여 올바른 인생관을 확립할 때에 필연적으로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반면에,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의 올바른 인식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178]
3. 유식의 수행
유식학에서는 번뇌로 오염되어 그릇되게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수행의 힘으로 정화하고 전환하여 참다운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이 곧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인식을 전환하여 참다운 지혜를 얻는다[轉識得智]는 것이다.[이철헌, 앞의 책, p.167] 유식사상에서 인간은 청정한 본래의 진여성(眞如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러한 진여성을 통한 지혜의 실천을 방해하는 번뇌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번뇌는 물거품과 같은 일시적인 현상이므로 이를 정화하여 진여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67]
중생은 모든 존재를 자신의 의식과 말나식을 통해 분별하여 받아들임으로써 진리를 올바로 관찰하지 못합니다. 중생은 청정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나 번뇌에 의해 가려져 있으므로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에 의해 오염된 의식을 제거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유식사상의 핵심은 유식 수행을 통해 구경위(究竟位)에 도달하여 식을 전환하여 지혜를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철헌, 위의 책, p.168]
그렇게 하면 안․이․비․설․신․의의 다섯 식은 하는 일마다 모두 이루는 지혜[成所作智]가 되고, 제6식인 의식은 잘 관찰하는 지혜[妙觀察智]가 되고, 제7식인 말나식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지혜[平等性智]가 되고, 제8식인 아뢰야식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大圓鏡智]가 됩니다. 이렇게 번뇌로 더럽혀진 식을 수행을 통해 정화하고 전환하여 지혜를 얻게 되는 식을 따로 아마라식(Amala-vijnana, 阿摩羅識)이라고도 하며, 이를 번역하여 ‘더러움이 없는 식[無垢識]’이라고도 합니다. [이철헌, 위의 책, pp.168-169]
유식학(唯識學)의 수행체계는 아비달마교학에서 말하는 삼도(三道, 見道․修道․無學道)의 구조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식학이 유부의 아비달마를 대승적으로 변용시켰기 때문입니다. [李芝洙, 「‘Abhidharma-kośa, 俱舍論)’의 存在分析-界品(dhātu-nirdeśa)을 중심으로」, 『佛敎學報』 제37집(서울: 불교문화연구원, 2000), pp.147-148] 유가행(瑜伽行) 수습의 단계들이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 이른바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지만, 부파불교 시대부터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들이 설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구사론』의 현성품(賢聖品)에 의하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청문(聽聞)과 사유(思惟)로 말미암아 마음이 해탈의 방향으로 굳어지는 단계인 순해탈분(順解脫分: 三賢位)과 번뇌가 없어진 세계로 방향이 정해지는 단계인 순결택분(順決擇分: 四善根位)의 경지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다시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라한이 되는 것이 소승의 성현들이 거치는 수습단계(修習段階)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유가에서 지향하는 목표와 소승에서 바라는 이상이 비록 다를지라도 그 수습과정 자체는 완전히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무튼 이 유가의 5단계는 후에 『성유식론(成唯識論)』등에서 말하는 오위(五位), 즉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되는데, 지심(止心, śamatha)과 관찰(觀察, vipaśyanā)은 가행위에서 근원적인 사유의 단계로 실수(實修)되고, 다시 견도위에서는 지심이, 수습위에서는 관찰이 진리의 체현이라는 궁극적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모든 인식활동으로 얻어진 번뇌를 정화하고, 이의 본성인 진여성(眞如性)을 깨달아 열반과 해탈을 증득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오위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위(五位)에 대한 설명은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앞의 책, pp.188-192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다.]
첫째, 자량위는 수행의 첫걸음으로서 옛날에 먼 길을 가려면 노자(路資)와 식량(食糧)을 준비해 가듯이 진리인 붓다의 말씀을 깊이 신해(信解)하고서 대승의 순해탈분, 즉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등 삼십심(三十心)을 닦는 단계를 말합니다. 이 위치에서 중요한 것은, ① 좋은 벗[善友]을 만나는 것이고, ②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신의 굳은 의지[作意]가 필요하며, ③ 이러한 여건들을 충분히 갖추고[資糧] 출발하여, ④ 신해(信解)로서 부처님께서 보여 주신 가르침을 강한 정신으로 믿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행위(加行位)에서는 먼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어서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심식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능취와 소취라는 상대적인 개념을 없애고 진실한 견해를 일으켜서 번뇌가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데 진력하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순결택분을 닦는 단계를 말합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부터는 근원적인 사유가 시작되는데, 진리의 세계로부터 유포된 가르침을 듣고 그 내용을 지식수단에 의해서 잘 검토하여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붓다의 가르침은 본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 필요한데, 근원적인 사유란 이 추가체험에 이르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보살들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존재의 성품과 형상을 통달하여 체득한 경지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이 위치에 이르기 위하여 꾸준히 자량과 가행의 단계를 거치면서 수행한 결과 진리에 계합되는 안목 등이 생겨서 진여를 체달하고 달관하게 된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체달한 경지이기 때문에 이를 또한 환희지(歡喜地)라고도 하며, 이는 보살의 초지(初地)이기도 한 것입니다.
넷째, 수습위(修習位)에서는 통달위에서 아직도 정화하지 못한 부분을 더욱 정화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단계로써 긴 기간에 걸쳐서 끊임없는 수도와 그로 인하여 체득되는 무분별지의 발현에 의하여 아뢰야식 중에 있는 번뇌와 주․객체의 잠재력을 함께 단절하고, 의지할 바를 대전환하여 부처님의 경지를 직증(直證)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걸쳐서 나머지 번뇌의 소멸을 위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라는 수행을 계속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다섯째, 구경위(究竟位)란 이렇게 보살들이 수많은 기간에 걸쳐서 수행을 한 결과 마침내 마음이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에 머무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중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신체적인 감각이나 의식 등의 주관적인 인식활동을 통하여 얻는 모든 알음알이들이 완전히 제거되어 다시는 번뇌나 망상과 같은 삿된 생각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 <법회와 설법> 통권 제179호, 2010년 04월호, pp.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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