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 ④바른사유로 탐욕과 성냄을 다스려라 |
흔히들 현대를 물질만능주의 혹은 배금주의(拜金主義)시대라 한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돈 모으기에 급급한 경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물질에 집착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어느 시대든 물욕(物慾)이나 권력욕(勸力慾) 등이 시대적 문제였다.
탐욕은 자신 태우는 불길
분노는 타인 죽이는 포수
<법구경>에서 “돈이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고 했듯이, 부처님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의 마음속에 괴로움(번뇌)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인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이 있는 한, 이 말은 언제나 유효할 것이다.
그러면 삼독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첫 번째 탐은 탐욕(貪慾)으로 좋아하는 대상에 집착해, 그것을 취하고자 욕심을 내는 마음을 말한다. 두 번째 진은 진에(瞋)로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성내고 분노하는 마음을 말한다. 세 번째 치는 우치(愚癡)로 어리석은 마음이다. 구체적으로 불교의 사성제나 연기 등의 가르침에 대한 어리석음을 말한다.
이 삼독에 대해, <법구경>에서는 “탐욕처럼 심한 불길은 없고 분노처럼 심한 포수(捕手)도 없으며, 어리석음에 비할 그물도 없고 욕망과 같은 거센 물결도 없다”고 한다. 탐욕은 자신을 태우는 불길이고 분노는 타인의 생명을 죽이는 포수이며, 어리석음은 자신을 옭아매는 그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삼독은 자신과 타인을 죽이는 세 가지 치명적인 독(毒)이다.
그러면, 삼독의 해독약은 없을까. 이에 부처님께서는 팔정도의 두 번째 덕목인 바른 사유(正思惟)라는 처방전을 지어 주었다. “감각적인 욕망을 벗어나고자 하는(出離) 마음가짐, 나쁜 의도가 없는 마음가짐, 남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는 마음가짐”이 그것이다. 감각적 욕망이란 탐욕을 말한다. 탐욕은 순간적 쾌락을 얻고자 마약을 먹는 것과 같기에 멀리 벗어나라는 가르침이다.
나쁜 생각이나 남을 해치려는 의도는 성냄과 분노를 말한다. 그것은 마치 칼날을 쥐고 타인을 공격하는 것과 같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도 앗아갈 수 있음을 경계한 가르침이다. 이처럼 팔정도의 두 번째 덕목인 바른 사유(正思惟)는 삼독 중의 탐욕과 성냄을 다스리는 가르침이다.
그러면, 탐욕과 분노를 치료할 약은 무엇일까. 그 보약(寶藥)이 바로 6바라밀(波羅蜜,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 중의 보시(布施)바라밀과 인욕(忍辱)바라밀이다. 욕심내는 마음은 베푸는 마음으로, 분노하고 성내는 마음은 참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치료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저 남는 것을 주었다고 해서, 화를 꾹 참았다고 해서, 보시바라밀이나 인욕바라밀이 되지 않는다. 자비(慈悲)의 실천이 수반될 때에만 그렇게 부를 수 있다. 타인을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듯이, 자식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마음이 일어날 때, 베풂은 보시바라밀이 되고 참음은 인욕바라밀이 된다.
이처럼 바른 사유란 탐욕과 성냄을 치료하는 처방전이고, 그 보약이 보시바라밀과 인욕바라밀이다. 하지만 탐욕과 성냄 역시 어리석음(癡)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짓고 있는 집이 공중누각(空中樓閣, 허공의 집)임을 안다면, 탐욕과 분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바른 견해를 갖지 못함이 어리석음 낳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탐욕과 성냄이 일어난다. 바른 견해는 어리석음(癡)을 치료하고, 바른 사유는 탐욕(貪)과 분노(瞋)를 치료하는 삼독의 해독약이다.
황정일 / 동국대학교 연구초빙교수
[불교신문 2706호/ 3월26일자] |
출처 : 호암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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