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 ③팔정도는 사성제 이해에서 시작 |
불교의 시작이 ‘삶은 괴로움이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면, 불교의 끝은 중도를 깨침으로서 완성된다. 그리고 이 중도의 길에 팔정도가 있다. 즉 바른 견해(正見)로부터 시작해서 바른 삼매(正定)로 끝나는 여덟 가지 길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일까.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괴로움에 대해서 아는 것(고성제), 괴로움의 발생에 대해서 아는 것(집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아는 것(멸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아는 것(도성제)을 바른 견해라고 한다.”
이처럼 팔정도의 첫 가르침은 사성제에 대한 바른 견해로 시작하고 있다. 이미 팔정도가 사성제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팔정도에서 사성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괴로움에 대한 철저한 재인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괴로움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야 말로, 벗어나야만 하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은 질병, 노쇠, 죽음 등을 통해 명백하게 체험하는 사실임에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해 버린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빈두설경(賓頭說經)>에서 인간이 처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옛날 한 사람이 들판에 나갔다가 미친 코끼리에 쫓겨 덩굴을 타고 우물 속으로 피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는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다. 다시 오르려 했지만 코끼리가 입구에 버티고 있어, 의지할 것이라곤 잡고 있는 넝쿨뿐이다. 이때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의 쥐가 나타나 넝쿨을 갉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벌집에서 흐르는 꿀을 발견하고 그 단맛에 취해 모든 위험을 잊고 꿀맛에 탐닉한다. 그 동안 대지에는 난데없는 불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우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무명의 병에 걸려, 밤낮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하지만 그 인식도 잠시뿐, 벌꿀과 같은 오욕(五慾)에 이끌려 그 모든 상황을 잊고 사는 게 인간이다. 부처님이 바른 견해에서 다시 사성제를 이야기한 것은 이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괴롭다고 하는 괴로움은 대체로 육체적 심리적 아픔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처님이 고성제를 통해서 말한 괴로움은 더 근본적인 의미이다. 즉 모든 존재는 바뀌고 변해간다는 무상(無常)의 괴로움이다. 만일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면, 괴로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그러한 믿음이 곧 헛된 망상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상하기(諸行無常) 때문에 괴롭다는 것(一切皆苦)은 보편적 진리이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다면, 바른 실천도 없다.
그러면 무상이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상하니까 무상한 것일까. 만일 이것에 대한 이유가 없다면, 괴로움을 벗어날 길도 없다.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이 여기서 끝났다면, 무상하다는 것은 모든 존재가 인과적 관계인 연기적 존재라는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교 역시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어라는 맹신의 구호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아무런 이유 없이 무상한 것이 아니다. 연기(緣起)하기 때문에 무상하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도 일어나듯이, 어떤 것도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지 않다. 하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연기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은 아니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영원한 자아나 불변하는 어떤 존재가 없음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러길 바라는 집착(집성제)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황정일 / 동국대학교 연구초빙교수
[불교신문 2704호/ 3월19일자] |
출처 : 호암산방
글쓴이 : 관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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