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四聖諦) ④괴로움을 보고 괴로움을 벗어나라 |
병명만 알고 완쾌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병의 원인은 알지만 치료법을 모른다면,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단지 ‘삶은 괴로움이다’라는 말에 그친다면, 그것은 성인의 가르침이 될 수 없다. 괴로운 현실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사라진 미래도 이야기해야 한다. 괴로움의 원인이 어리석음과 탐욕이라고 하였다면 그것을 없애는 방법도 이야기해야 한다.
따라서 사성제의 가르침은 현실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을 극복한 상태를 결과와 원인의 구조로 설명한다. 중생의 현 상황(결과-고 苦)를 짚어주고, 그 이유(원인-집 集)을 말하고, 이 현 상황을 벗어난 상태(결과-멸 滅)를 말해주고, 그 길을 가는 방법(원인-도 道)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병(病)이 고(苦)에, 병의 원인이 집(集)에, 완치된 상태가 멸(滅)에, 치료과정이 도(道)에 비유된다.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그 현실의 원인을 파악한 뒤, 현실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을 향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구조이다.
현실의 모습 극복한 상태를
결과와 원인의 구조로 설명 ‘삶은 괴로움이다’라는 가르침을 접하고 나서, 혹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즐거움이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면, 괴로움도 항상 하지 않아서 곧 즐거움이 되지 않겠는가? 긍정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긍정적인 사고와 현실에 대한 판단은 다른 차원이다. 삶을 괴로움이라고 본다고 해서 긍정적인 사고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미래에 대해 희망과 그 희망찬 미래를 위한 방법이 있을 때 긍정적인 사고가 나온다.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단지 장미빛 미래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현실도피이며, 현실망각이다. 그때 그것은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공상이다.
이에 성인께서 고집멸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번 굴려 말씀하신다.
첫 번째 법을 굴림은 시전(示轉)으로서 중생들에게 그 가르침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고성제이다. 이것은 집성제이다. 이것은 멸성제이다. 이것은 도성제이다.” 두 번째 법을 굴림은 권전(勸轉)으로서 중생들에게 실천하도록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 고성제는 알아야 한다. 이 집성제는 끊어야 한다. 이 멸성제는 증득해야 한다. 이 도성제는 닦아야 한다.” 세 번째는 증전(證轉)으로서 중생들에게 실천을 통해 모든 것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고성제는 이미 알았다. 이 집성제는 이미 끊었다. 이 멸성제는 이미 증득하였다. 이 도성제는 이미 닦았다.”
이를 사성제의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하셨기에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이라고 한다. 이를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고는 보아야 되고(견고 見苦), 집은 끊어야 되고(단집 斷集), 멸은 증득해야 되고(증멸 證滅), 도는 닦아야 한다(수도 修道).”
즉, 현실을 바르게 보아야 하고, 모순된 현실의 원인은 제거해야 되고, 모순된 현실의 모습은 극복해야 하고,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현실을 막연하게 바라보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르게 진단하고, 그 원인을 알아 제거하고, 희망찬 미래에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가르침이 사성제에 담겨 있다.
목경찬 / 불광사 불광교육원 교수
[불교신문 2698호/ 2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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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호암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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