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김현식
이 몸이 죽어가도
가슴에 맺힌 사연들은
내가 떠난 그 후에도
잊혀지지 않을거야
이 내 몸이 병들어도
못 다한 말 너무 많아
수북수북 쌓인 눈에
쌓인 눈에 잊혀질까
이 내 몸이 죽어가도
가슴에 맺힌 사연들은
내가 죽은 그 자리에
들꽃 한 송이로 피어날 거야
- 시집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1992, 도서출판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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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1990년 서른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2년이다. 엊저녁 MBC '히스토리 후'라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음악을 추모하는 특집방송이 있었다. 한국적인 서정을 록과 블루스에 녹여내 최고의 솔&블루스 싱어로 평가받는 그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했다. 죽는 순간까지 음악을 향했던 그의 열정과 인간적인 고뇌, 헌정앨범을 만든 동료 후배 가수들의 추억담,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아버지의 길을 잇고자 하는 외아들의 모습도 담았다.
누가 내게 애송시가 뭐냐고 물으면 우물우물 즉답이 신통찮을 수 있으나, 애창곡을 묻는다면 비교적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 ‘추억 만들기’ 그러고 보니 한 20년간 노래방에 가기만 하면 불렀던 노래들이다. 물론 나훈아와 배호 김광석 등의 노래도 레퍼토리 안에 들어있지만, 없는 솜씨에 되지도 않는 ‘골목길’과 ‘이별의 종착역’까지 김현식 풍으로 불러재낀 걸 봐서는 나도 김현식의 열렬한 팬이라 자처할만하다.
그런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을 때 이런 김현식의 고독과 우울을 반복적으로 노래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기도 했다. 가당찮지만 듣는 이에겐 노랫말의 상황과 가락의 분위기를 나와 환경과 동일시하려는 태도도 감지되기 때문이다. 사실 고음 부분에서 울대를 최대한 팽창시킬 땐 나 자신도 뭔가 모를 응어리 같은 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걸 토한 뒤에 오는 위로는 컸다.
삶과 노래와 시대가 서로 유리되어 겉돌지 않듯이 그의 노래를 좋아하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아우르는 정서가 있다. 독특한 그만의 아우라를 공동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호소력 짙은 가창력 정도가 아니라 듣는 이로 하여금 영혼의 어떤 숭고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한다. 거기엔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마력과 힘, 혼이 느껴지고 충동들이 존재한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부른 노래들이 주로 그렇겠지만 김현식의 음악적 문법엔 확실히 예술적 광기 같은 게 있었다.
그런 광기는 대부분의 예술적 천재들이 그러하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한 지경으로 몰고 간다. 아랫배에 복수가 차고, 피를 토하는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으며 미련을 버리지도 않았다. 그때 남긴 메모가 위의 시다. 사실 시라기 보다는 노랫말에 가까우며, 시집 출판은 사후 폭발적인 그의 인기에 편승한 상업적 소산일 테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시인이었으며 뮤지션이었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바람처럼 사라져간 그 자리에 영원토록 피어있을 ‘들꽃 한 송이’다.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전설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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