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군자리... 두번째...
[출처] 안동넷/문화관광
이건되기 전의 외내에서는 아랫 외내 주산 자락을 차지하였다. 자좌 오향의 당당한 건물이었다. 본래는 임진왜란 전에 창건된 것이다. 그후 많이 헐어 새롭게 세운 것으로 전한다. 안채는 안동시내 태화동으로 이전되었다.
새 외내에서는 마을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있는 것은 사랑채로 한일자 여덟칸 집이다. 동쪽에 두칸 방이 하나 있고 서쪽에 방 한칸이 있다. 두방 사이에는 곰배 정자 형의 욋마루가 깔렸다. 게자각 헌함이 달려 있고 높은 댓돌 위에 세워진 것으로 당당한 모습니다. 건물은 모두가 춘양목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의 기둥 일렬은 2.5척의 돌기둥이다. 건물의 부속 대문간은 전통적인 큰 대문이며 그에 이어 언덕을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임진왜란 전의 건물로 군자리에서는 가장 오래된 종택건물이다. 이 종택은 산남공과 양정당, 설월당 등을 낳아 기른 윗 외내의 종가집이다. 뒤에 나즈막한 산을 거느리고 앞에 맑은 시내를 둔 곳에 자리했다. 좌향, 정남향이며 배산 임수의 좋은 자리에 있었다.
건물 규모는 모두 22칸으로 되어 있다. 넓이가 네칸이며 문간채 넓이가 여섯 칸이다. 평면 상으로 보면 바깥채가 양쪽으로 한 칸씩 더 달려 있다. 전체의 칸살 구성은 정침이 네칸, 양측이 각각 다섯 칸, 바깥채가 여섯 칸으로 4,5,6칸이라는 매우 독특한 구성 비율을 가진 입구자 집이다. 큰 대들보 집에 각주 대공을 얹고 그위에 모두 세개의 대들보를 앉어 놓은, 구성이 간략한 집이다. 막돌 기단의 높이는 안채가 제일 높고 다음으로 양측 대문간의 순서가 되어 있다. 집에 들어서면 안채 마루가 매우 높아 보인다.
새 외내로 옮겨 앉은 다음 세운 선조들 문집, 판각들을 수장한 건물이다. 나무로된 시렁에 <근시재선생문집>과 <계암선생 문집>등의 목각판을 정리, 수장했다.
이들의 내용은 교지, 분재기, 호구단자, 소지, 노비문서, 명지, 명문, 기타 종문과 혼서 서간문과 고서, 문집등이다. 이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14세 양간공 연과 15세 사원등의 호구단자이다. 이것은 고려때의 것으로 지금 전하는 호구단자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들은 국가 보물 1018, 1019호로 지정되어 있다.
탁청정 김유 공의 손으로 된 우리나라 최고의 요리서 가운데 하나.
상하 두권으로 상권에 70종, 하권에 38종, 모두 108가지의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을 한문으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술 담그는 법, 간장, 김치 만드는 요령 등으로부터 생강, 참외, 연을 기를는 법까지를 제시해 놓고 있어서 500년전 사림 계층의 식생활 관계 정보를 다방면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몇개 항목의 기술이 이보다 100여년 뒤에 나온 장씨 부인의 <규호시의방>에 그대로 되풀이되어 있는 점이다. 이것은<규호시의방>이 <수운잡방>을 참고 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근시재 김해 공이 임진왜란 때에 구국의 대열에 나서면서 쓴 기록들이다. <행군수지> 1책, <향병일기>1책으로 되어 있다.
근시재는 일찍 사마시에 합격, 승정원, 예문관에서 구슬을 살았다. 후에 이조판서, 대제학으로 추증.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책을 던지고 분연히 일어나 안동지방과 영남 북부의 의병 대열을 지휘하여 구국의 길을 걸었다. 이대의 전투 대열에는 산남공의 아드님 북애 김기가 정제장으로 그리고 재종제인 설애 김강, 극재 김평등이 장서 군관으로 출진했다. 이렇게 한 마을이 통틀어 칼을 짚고 일어서 국난에 임한 예는 달리 그 예를 찾기가 어렵다.
<향병일기>는 <서행일기>와 함께 의병장으로서 전투에 종사한 사실들을 적은 일기다. 전편에 해당되는 <서행일기>는 전하지 않고 <향병일기>만이 남이 있다. 이 일기는 임진년 4월 15일부터 근시재공이 39세를 일기로 경주에서 전몰하기 까지 싸움을 거듭하는 가운데 겪고 느낀 것을 기록한 진중 기록이다. 근시재공은 이밖에 <근시재선생문집>을 끼치며 그 판각은 군자리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분의 활약의 대해서는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김해의 활약이 경상우도의 곽재우와 쌍벽을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행군수지>는 먼저 지휘관이 정신자세를 논하고 이어 군령을 세우는 방법과 병사를 선발하는 요령, 군마를 얻는 법, 보급문제, 부대훈령 등에 걸쳐서 차례로 기술 했다. 또한 진치는 법, 성을 지키는 요령, 간첩 색출, 항복을 받는 요령 등을 차례로 밝혀서 부대 지휘관이 반드시 읽고 익혀야 할 책이었다.
이책은 근신재공의 창의 기병이 투철한 전술 감각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해 준다. 세상이 평화로우면 도학에 전념하는 것이 선비다. 그러나 나라에 변란이 있으면 칼을 집고 일어서는데 그것을 밑받침하는 전투요령을 기록한 것이 이책이다.
본래 탁청정은 옛날 외내ㆍ군자리의 푸른 시내에 임한 언덕 위에 솟아 있었다. 개인 정자로는 보기 드물게 규모가 크고 건립년도가 중종 36년이다. 정면이 4칸 측면 3칸이나 거의 정방형에 가깝다. 팔작 지붕, 두칸이 방이며 네칸이 대청마루다. 대청은 높은 호박 주춧돌에 큰 허주를 높이 세워 다락을 만들고 둘레는 게자각 난간을 붙였다. 기둥은 아름드리의 원주로 그 가운데 동남쪽 기둥 하나는 싸리나무라고 전한다. 집틀은 주심포 계통인데 2익공 받침에 외목도리, 모서리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짜서 올린 아름다우면서 웅장한 건축이다.
이건되기 전 이 정자는 외내에서는 시내를 건너 후조당 서쪽에 자리한 산자락 바위 언덕 위에 있었다. 읍청정공은 여기서 청량산을 바라보며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터전으로 이 정자를 얽었다. 현판은 퇴계 선생이 쓴 것으로 전한다.
읍청정 김부 공이 지은 정자다. 좌우 양쪽에 온돌방 두칸과 속마루 두칸 반과 전퇴마루 한칸으로 되어있다. 둘레에는 굽을 곡자 모양의 게자각 헌함이 달려 있다.
근시재공의 아드님인 매원 김광계 공이 창건한 다락집이다.
매원공은 의병장으로 나라를 위해 돌아간 아버님 근시재공을 추모하고 자신의 학문을 닦기 위해 이집을 지었다. 네칸에 방과 마루가 있고 게자각 헌함을 단 전형적인 사림의 누각이다. 가운데에 마루가 있고 양측에 각각 한칸씩의 방이 있다. 대들보가 괴목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이색적이다.
퇴계의 고제로 학덕이 높은 양정당 김부신 공이 세운 정각.
외내에서는 설월당 윗마을 시내 건너에 있었다. 뒤에 소나무가 울창한 산을 거느리고 들판과 시내를 앞에 둔 훌륭한 터였다. 둘레를 담으로 둘렀고 일각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전면 툇마루에 게자각 헌함으로 되어 있다. 네칸으로 된 건물인데 가운데가 방이 있고 마루가 니은 자 모양이다. 윗 외내 쪽에 담수된 안동호와 그 너머 산들을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하여 조망이 훌륭하다.
설월당 김부륜 공이 세운 정각.
옛 외내에서는 탁청정 윗 마을에 자리했다. 설월당 현판은 퇴계 선생이 손수 쓰신 것이다. 퇴계선생 글씨 가운데도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명필 중의 명펼이다. 여기서는 계암공과 그 후 잇따라 훌륭한 선비가 나와 이름이 높아졌다.
네칸 겹집으로 별도로 된 대문채를 열고 들어가면 허주 세개 위에 높이 자리한 다락집이다. 양쪽에 한칸씩 두칸이 방이며 그 사이에 마루가 놓여 있고 앞에 반칸의 마루가 둘러 있다. 게자각 헌함에 한식 기외집으로 높은 추녀가 하늘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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