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사람들 더러 아는 척해도
실은 가는 길도 모르고
무엇이 있는지는 더욱 모르는
외딴 섬 하나를 나는 안다
햇볕과 바람 유독 넉넉하고 정갈한
그 섬에 가면 홀로된 여자가
몇 돼기의 외롬꽃을 가꾸며 산다
온 하루 김을 매고 속된 꿈 솎고
저물면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읽고
스스로 섬이 되고 별이 되는 섬 여자
나는 몰래 그녀를 사랑한다
가을볕 붉게 타는 수수밭 지나
고운 소금 뿌린 듯 메밀꽃 하얀
고샅길 질러 바다로 가노라면
꽃게처럼 웅크린 인가 몇 채 졸 뿐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무시로
참새떼소리 왁자한 탱자울 넘어
날아든 꿀벌들의 입맞춤이 진한지
참깨꽃 은방울이 섬 온 채를 흔든다
그늘 깊은 뒷산 잡목숲에는
탁목조 한 마리가 산해경 읽듯
팽나무 찍는 소리로 하루해가 저물고
노을 젖은 은박지로 구겨진 바다
물빛 풍금소리 은은한 그 섬에 가면
나 혼자 엿듣는 방언이 있다
감쪽같이 나누는 사랑이 있다
아련하게 니스칠한 추억이 있다
세상과 먼 그 섬에 가면
임영조(1945~2003)
충남 보령 출생
1970년 {월간문학}, 197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바람이 남긴 은어} {갈대는 배후가 없다} {귀로 웃는 집} 등
출처 : 시와음악♬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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