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시인선서 / 김종해

맑은물56 2011. 9. 8. 11:15

 

*  2004년, 김종해시인(한국시인협회장)이 발표한 '시인선서' 내용입니다.

        

 

 

 

시인선서

김종해

 

 

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면 구하지 말라.

스스로 안에서 차오르지 않고 넘치지 않으면 쓰지 말라.

물 흐르듯, 바람 불듯,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좇아가라.

 

가지지 않고 있지도 않은 것을 다듬지 말라.

세상의 어느 곳에서 그대 시를 주문하더라도

그대의 절실함과 내통하지 않으면 응하지 말라.

그 주문에 의하여 시인이 시를 쓰고 시 배달을 한들 그것은 이미

곧 썩을 지푸라기詩이며, 거짓말詩가 아니냐.

 

시인이여,

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의 심연을 거치고

그대의 혼에 인각된 말씀이거늘,

치열한 장인의식 없이는 쓰지 말라.

시인이여, 시여,

그대는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

 

온 세상이 권력의 전횡(傳橫)에 눌려 핍박받을지라도

그대의 칼날 같은 저항과 충언을 숨기지 말라.

민주와 자유가 유린당하고,

한 시대와 사회가 말문을 잃어버릴지라도

시인이여, 그대는

어둠을 거쳐서 한 시대의 새벽이 다시 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라.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 그늘진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盟友)여야 한다.

 

 

                   

 

출처 :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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