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여행
겨울철 식단에 우리가 흔히 대하는 수산식水産食은 뭐니뭐니해도 명태明太만한
명물名物이 없다.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여 우리 식성에 맞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본래 명태明太의 학명學名은 'Theragra chalcogramma' 이다.
영어로는 'The Alaska pollack' 이며, 일본어로는 '스케토우다라' 이다.
우리나라에 명태라는 이름이 처음 불려지기는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연승어법(延繩漁法.일시에 여러마리의 명태를 잡기위해 모릿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낚시 1개씩을 매달아 잡는 방식)을 사용해서 잡은 고기라 해서 지명의 명明자와
성씨의 태太자를 붙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명태처럼 많은 이름을 가진 어류도 드물다는 점이다.
명태는 잡는 지역과 방식, 씀씀이, 가공 등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리어진다.
그럼 다양한 형태의 이름을 가진 함경도 태太씨를 찾아 '명태여행'을 해보자.
명태는 잡는 지역에 따라 이름이 제 각기 다르다.
강원도 지역에서 잡으면 <강태江太>라고 하고, 함경도지역에서 잡으면 <왜태倭太>라고 한다.
경기도 이남에서는 <북어北魚>, 동해 연안에서는 <동태凍太>라고 한다.
그리고 손으로 손수잡아 옹골차게 쥐면 <수태手太>라고 하며,
그물로 금방 잡아 올린 명태는 <망태網太>이고, 낚시로 멋지게 낚아 올리면 <조태釣太>이며,
잡다가 아쉽게 손을 놓아버린 명태는 <낙태落太>라고 한다.
그래서 강태공들이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오, 내 낙태여. 저리도 바다로 흘러가누나, 잘 가거라.
가서 잘 살거라 내 손을 떠나간 낙태, 낙태여"
명태를 잡는 방식에 따라 바다에서 금방 잡은 명태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면
<생태生太> 또는 <선태鮮太>라고 한다. 그리고 바싹 말린 놈을 방망이로 후려쳐
야속한 서방속을 푼다는 놈은 <북어北魚>와 <건태乾太>라고 한다.
모양을 봐서 대가리가 없는 뭉뚝한 놈은 <무두태>, 몸뚱이 없는 놈은 <파태 波太>,
속이 돌처럼 딱딱한 놈은 <골태>, 기온차가 커서 하얗게 마른 놈은 <백태>,
색깔이 검온 놈은 <흑태>라고 한다.
또 작은새끼는 <애기태(앵치)>, 애기태를 딱딱하게 말려 도마에 올려놓고 칼 등으로 두둘겨
찢어먹는 놈은 <노가리>, 반 건조된 상태로 코를 꿰어 4마리 한 세트로 판매하는 것은
<노코다리>이다.
노가리와 성어의 중간크기 명태는 <얼치>이며,
산란 뒤에 후 뼈만 남다시피 한 꺽어진 명태라고 <꺽태>라고 한다.
계절별로도 이름이 다르다. 1월에 잡히면 <일태一太>, 이월에 잡히면 <이태二太>,
3~4월에 잡히는 것은 <춘태春太>, 음력 4월에 잡히면 <사태四太>, 5월에 잡히면
<오태五太>라고 하여 젓갈도 오젓이 있다.
그리고 본디 가을에 잡히는 것을 <명태 明太>라고 한다.
원양에서 잡은 것은 <원양태遠洋太>, 근해에서 잡으면 <지방태地方太>,
원양 명태와 동해안 명태를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은 <진태眞太>라고 한다.
그래서 어부들은 이를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은어 떼 오고 난 뒤에야 잡히는 <은어銀魚바지>,
섣달 초순 무렵부터 떼 지어 몰려오는 <섣달바지>,
명태가 우리나라 근해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갈 무렵 맨 끝물에 잡은 명태를
<막물태>라고 한다.
"어허, 올 해 명태잡이로 고생했으니까.
끝 물에 막 잡은 이 놈 막물태를 냄비에 펄 펄 끓여 술 한 잔 할까나"
명태를 원료로 하여 가공한 것 중에 하나가 <더덕북어>이다.
입안에 살살 녹는 명태알을 소금에 절여 삭힌 것은 <명란젓>,
창자를 염장질러 발효시킨 알싸한 것은 <창란젓>라고 한다.
이 외에도 잔치상에 잘 올라가는 <맛살>, <북어맛살>, <사슬적> 등이 있다.
북한에서는 명태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소금에 절여서 넓적하게 말린 것을
<짝태>라고 하며, 소금에 절인 명태를 <간명태>라고 부른다.
동태는 동해안 지방의 겨울철 작업으로 가슴지느러미 부분에서부터 꼬리 부분까지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피를 뺸 다음 물 표백으로 동장冬臧을 시킨다.
생각만해도 뼛속 깊이 까지 으스스 스며드는 추위를 느낀다.
그러나 우리네 속을 이만하게 속을 다지는 명물이 명태 말고 또 무엇이 있느냐 싶다.
저 하이얀 설해(雪海) 동해의 모진 겨울바람에 얼리고 녹이기를 되풀이하는 명태가
<황태>이다.
하루에 4~5회씩 민물을 바꾸어 가면서 20마리씩 싸릿대로 엮어 걸아 겨울철을 난다.
이렇게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하면서 건조되는 것이 황태이다.
덕장에서 황태를 말릴 때 날씨가 따뜻해 물러지면 <찐태>라고 하며,
겨울에 얼려 말려 가장 품질이 좋은 명태를 <북훙어北薨魚>하고 한다.
그러나 한겨울 대관령 덕장에서 매달려 매서운 추위 속에서 얼리어 말린 황태를
명태 중에서도 최고의 맛으로 친다.
그래서 어느 지방을 가나 '원조 강원도 황태식당'이 있다.
식당을 들어가면 벽면에 '황태찜' '황태탕' '황태찌게' '황태구이' '황태조림'
'황태무침' '황태국' '황태칼국수' '황태라면' '황태해장국' 등의 이름이
명태의 황제로 자리매김되어 맛깔스럽게 우러나 있다.
바다에서 나는 하잘 것 없는 <명태明太>라는 미물.
근래에는 명태가 금처럼 귀한 어종이 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은 금태金太라고도 한다.
머리에서부터 꼬리, 내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는 명태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네 인생을 되돌아본다.
과연 우리는 살아서 혹은, 죽어서 내가 아닌 누군가한테 얼마나 보탬이 되었을까?
손을 호호 불며 추위 방안에서 벌 벌 떠는 어느 가난한 가족의 구들방에 따듯한 연탄이 되어
그들이 얼굴에 미소가 되어봤는지?
세 찬 비 바람이 부는 날 이를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 그들에게 안온한 휴식처를
만들어 주었는지? 더러는 어둡고 그늘진 곳에 환한 햇빛이 되어 희망의 나래로 펴도록
한 날이 얼마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오, 함경도 명천明川골 어촌에 사시는 태太씨여!
태씨께서 잡으신 명태를 통하여 우리에게 드넓은 삶의 미학美學을 가르쳐준
그대의 심미안審美眼에 고개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리나이다.
<소설가 김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