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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하다 진짜 복서가 되는 이시영을 지켜보며

맑은물56 2011. 3. 18. 09:45

연기를 하다 진짜 복서가 되는 이시영을 지켜보며
Sports/당신 멋져! | 2011/03/17 18:37 엘비스

내가 이시영을 체육관에서 처음 본 건 작년 7월이었다. MBC베스트극장 단막극에 복서역할을 맡아 대본을 들고 선릉역에 있는 홍수환 스타복싱체육관에 찾아온 것이었다. 복서 역할을 맡았다니 예전에 잠시라도 복싱을 좀 해봤겠거니 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복싱을 한단다. 어이가 없었다. 복싱을 좀 한다는 배우들이 찍은 영화도 어설픈 게 숱하게 많은데, 하물며 이제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 불과 몇 주 동안 복싱을 배워 복싱선수 역할을 한다는 자체가 가소로웠다. 배우의 탓만도 아니라 기획한 사람들이 복싱을 잘 몰라서 그랬을 테지만, 복싱을 너무 쉽게 봤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어설펐어도 열정만큼은 최고였다

일단 신체조건은 좋았다. 169cm에 비해 팔 길이가 길었고 왼손잡이였다. 게다가 평소 체중 53kg면 그 상태로 시합에 올라도 될만했지만 이건 운동으로 만들어진 몸이 아니라 날씬한 배우의 몸이라 근력이 형편없었다
.

이시영
의 극중 상대 역할은 체육관에서 3년째 복싱을 배우는 대학생 이유리가 맡기로 했다. 이시영의 수준이 현저히 틀리므로 상대역과 두 명의 코치에게 배우게 되었다. 이시영의 상대역을 맡은 이유리의 코치를 자청했다. 우리의 아무리 촬영이라도 복싱의 자존심이 걸렸다. 어설프게 맞아주지 말고 혼쭐을 내줘라. 왼손잡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 방에..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이시영의 수준이 일취월장 하는 게 보였다. 체육관에서만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체육관에서 배운 내용을 집에서 마스터를 해서 오니 연습 때 마다 진도가 척척 나가는 게 보였다. 체육관원들이 복싱 3년 배운 거랑 별 차이가 안나 보인다는 말에
이유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직접 보면서도 믿기 힘들 정도의 맹렬한 연습은 체중 변화가 증명해 주었다. 한달 만에 5kg가 빠져서 169cm 47kg 란다. 난생 처음으로 40kg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운동을 마치고 필자와 함께 선 맨 얼굴의 이시영

이런 이시영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배역을 맡은 몇 달 동안 그야말로 복싱선수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며 24시간을 지내는 모습이 촬영에 임하기도 전에 이미 복싱선수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자 매력이라고 하는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이구나 이해가 갔다
.

작년 7월 복싱을 막 시작할 즈음의 이시영

하지만, 허무하게도 방송이 취소가 되었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사이 배기석이 한국타이틀전을 마치고 사망한 사건이 큰 이유였다. 그런데 그 보도를 가장 먼저 해서 특종상까지 받은 게 나였으니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

한 여름 동안 기를 쓰고 복싱을 배워놨더니 촬영을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물거품이 된 게 못내 아쉬웠던지 이시영은 복싱대회 출전을 자청했다.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열심히 연습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엔 생활체육대회로 시작을 하더니 어제는 아마추어 전국대회 토너먼트에 출전해서 우승까지 거머쥐고 말았다.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이시영

이시영
48kg급 최고령(29) 출전자이고 결승전 상대는 띠동갑도 넘게 차이 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오히려 쉬웠다. 세컨을 맡은 홍수환 선생님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주문했다. 같은 왼손잡이끼리 만났으니 키와 팔길이가 월등히 긴 이시영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작전이었다. RSC로 결승전을 승리한 이시영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입문해서 아마추어로서는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정상에서 흘리는 감격에 눈물이었다
.

함께 했던 체육관 식구들도 진심으로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같은 체육관 선수의 경기가 있을 때 마다 경기장을 찾아 궂은 일을 자청했던 진정한 동료로서 인정받는 모습이었다.

밤 하늘에 반짝이는 수 많은 별들 중에도 더 빛나는 별이 있다.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스스로 빛을 더한 이시영의 광채에 열정적인 복싱의 아우라가 더해진 듯 하다. 작년에 무산된 복싱드라마가 다시 추진되어서 복싱 실력과 연기력이 더해지는 장면을 꼭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세계 챔피언 홍수환과 사제지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