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의 이야기/맑은물의 이야기

신인상 당선 시와 소감문

맑은물56 2010. 11. 19. 15:35

 

 

신륵사 종소리 외 2편

 

최희영

 

 

어둠 몰려오는 사원 앞 여강엔

적막한 배를 타고 철새들

하루를 접는데

 

삼십삼천을 깨우는 저녁 종소리

엉킨 인연 벗지 못해

옛 탑의 고독한 그림자 감도는

긴 긴

침묵의 終焉

 

고목 가지 끝 초승달

시린 날

깊은 한숨 몰아쉬며

물기 머금은 별 하나 가슴에 품고

날 선 비수로

억겁의 세월을 윤회한다

 

도란도란 나누는 茶香에

마음 적시고

전설되어 흐르는

강물의 도도함

천지로 스며들어

우담바라 피워내는

태고의 종소리

 

 

 

고향집에서

 

 

백련 꽃처럼 곱던 얼굴

세월 접은 주름살

햇살에 또렷하게 새기던 날

적막한 뜨락엔

노모의 80년 모진 세월이

부르튼 손마디마디에

걸터앉아있다

 

모란꽃 속삭임 깊어가는 하루

천륜을 끌어당기는

혈관 속 붉은 피는

고향 앞마당 가득

올해도 피었다 지는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그 세월 담아낸 설움

 

40년 넘어 찾아온 딸 친구 보며

말갛게 익어가는 기억 대신

그렁그렁 눈가에 핀 눈물꽃

저녁노을을 은밀히 훔치고 있다.

 

 

 

 

 

 

해바라기

 

 

엄마는 오늘도

노란 꽃이파리 쓰다듬으며

먼 숲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

네게 붓는다

 

지천명에 엄마 가슴 찾으며

옹알이하는 너의 긴 모가지

바람에 꺾일세라

밤을 지새우는 엄마의 염불소리

 

 

노랑병아리 까만 눈 반짝이며

엄마 품 파고들어

뜨거운 사랑의 한 복판에서

둥지 틀고 사는 넌

엄마의 목숨 밭

 

 

최희영

198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교육학 석사

1980년-2009년 : 경기도 덕적중고, 부천여중고, 성포중, 광명여고, 안양고, 충훈고, 산본고 국어교사 역임

2010년 현재 경기도 광명시 명문고등학교 교감

<징> 동인

 

 

 

신인상 당선 소감

 

어느 차가운 겨울 날

환경지킴이 동지들과

난지도에 올랐다가

억세밭 속에 숨어 핀

노란 민들레를 보면서

나야말로

하늘거리는 억세밭 속에

세찬 바람 피해 납작 엎드려 살고 있다가

주위에서 감싸주는 따스한 기운에

철모르고 핀 민들레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제게 주어진 신인상 당선의 분에 넘친 소식은

주위의 사랑으로 피어난 철모르는 민들레꽃이라는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고 있습니다.

 

이제야 여린 잎 달고

세상 밖으로 한 발짝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저도 제 힘으로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꽃피울 수 있는

언제나 내가 꿈꾸던 뿌리 깊은 나무 되어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그 날을 위해,

저에게 사랑의 따스한 빛과 촉촉한 삶의 에너지를 주신 분들에게

그 보답을 위해

감사의 마음 깊이 새기며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향기로운 차와 큰 절로 마음을 전해드리며.....

 

2010년 11월의 열아흐렛날

 

수능이 진행되는 어느 시험장 본부에서

감독 책임자로서 조심스러워

박시인님의 기쁨 섞인 저에겐 큰 영광의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죄송스럽게 아무에게도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교정의 모과가 노랗게 익을 때마다 던져지는 숙명의 날

우리 제자들이 울고 웃는

수능의 열매를 따야할 마지막 결정의 순간이었기에.

 

진한 모과향이 번지는 명문의 뜰에서

맑은물 최희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