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당선시
신륵사 종소리 외 2편
최 희 영
어둠 몰려오는 사원 앞 여강엔
적막한 배를 타고 철새들
하루를 접는데
삼십삼천을 깨우는 저녁 종소리
엉킨 인연 벗지 못해
옛 탑의 고독한 그림자 감도는
긴 긴
침묵의 終焉
고목 가지 끝 초승달
시린 날
깊은 한숨 몰아쉬며
물기 머금은 별 하나 가슴에 품고
날 선 비수로
억겁의 세월을 윤회한다
도란도란 나누는 茶香에
마음 적시고
전설되어 흐르는
강물의 도도함
천지로 스며들어
우담바라 피워내는
태고의 종소리
고향집에서
백련 꽃처럼 곱던 얼굴
세월 접은 주름살
햇살에 또렷하게 새기던 날
적막한 뜨락엔
노모의 80년 모진 세월이
부르튼 손마디마디에
걸터앉아있다
모란꽃 속삭임 깊어가는 하루
천륜을 끌어당기는
혈관 속 붉은 피는
고향 앞마당 가득
올해도 피었다 지는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그 세월 담아낸 설움
40년 넘어 찾아온 딸 친구 보며
말갛게 익어가는 기억 대신
그렁그렁 눈가에 핀 눈물꽃
저녁노을을 은밀히 훔치고 있다.
해바라기
엄마는 오늘도
노란 꽃이파리 쓰다듬으며
먼 숲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
네게 붓는다
지천명에 엄마 가슴 찾으며
옹알이하는 너의 긴 모가지
바람에 꺾일세라
밤을 지새우는 엄마의 염불소리
노랑병아리 까만 눈 반짝이며
엄마 품 파고들어
뜨거운 사랑의 한 복판에서
둥지 틀고 사는 넌
엄마의 목숨 밭
최희영
198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교육학 석사
1980년-2009년 : 경기도 덕적중고, 부천여중고, 성포중, 광명여고, 안양고, 충훈고, 산본고 국어교사 역임
2010년 현재 경기도 광명시 명문고등학교 교감
<징> 동인
신인 당선 소감
어느 차가운 겨울 날
환경지킴이 동지들과
난지도에 올랐다가
억새밭 속에 숨어 핀
노란 민들레를 보면서
나야말로
하늘거리는 억새밭 속에
세찬 바람 피해 납작 엎드려 살고 있다가
주위에서 감싸주는 따스한 기운에
철모르고 핀 민들레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제게 주어진 신인상 당선의 분에 넘친 소식은
주위의 사랑으로 피어난 철모르는 민들레꽃이라는
부끄러움에 고개 숙입니다.
이제야 여린 잎 달고
세상 밖으로 한 발짝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저도 제 힘으로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꽃피울 수 있는
언제나 꿈꾸던 뿌리 깊은 나무 되어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그 날을 위해,
저에게 사랑의 따스한 빛과 촉촉한 삶의 에너지를 주신 분들에게
정성스러운 보답을 위해
감사의 마음 깊이 새기며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향기로운 차와 큰 절로 마음을 전해드리며.....
2010년 11월의 열 아흐렛날
수능이 진행되는 본부에서 감독 책임자로서 조심스러워
박시인님의 기쁨 섞인, 저에겐 큰 영광의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죄송스럽게도 누구에게도 소리 내지 못했습니다.
교정의 모과가 노랗게 익을 때마다 던져지는 숙명의 날
우리 제자들이 울고 웃는
수능의 열매를 따야할 마지막 결정의 긴장된 순간이었기에.
진한 모과향이 번지는 명문의 뜰에서
맑은물 최 희 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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