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화 산책

위대한 문화유산-사대부 정원

맑은물56 2010. 11. 11. 16:54

여러분들은 한국적인 정원(원림)을 생각할 때 무엇이 떠오르나요? 창덕궁의 후원 정도 아닐까요? 그런데 창덕궁 것은 왕실 정원입니다. 반면 양반 즉 사대부들이 만든 정원을 생각해보면 거의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그것은 지난 번 왕실 정원을 볼 때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정원 문화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은 정원 문화가 극도로 발달해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한국의 자연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 자체가 자연에 별로 손을 대고 싶어하지 않는 성정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래도 몇몇 개의 빼어난 사대부 정원이 남아 있어 이번에는 그것을 살펴보려 합니다.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 조선의 사대부 정원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중국, 일본 정원과 한국 정원의 차이

이 가운데 서울 성북동에 있는 성락원과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에 있는 세연정 정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정원들은 그 하나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볼 수는 없고 여기서는 이 정원들이 갖고 있는 큰 특징만을 골라 볼까 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들과 비교해볼 때 이런 한국 정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색은, 한국인들은 가능한 한 자연에 손을 덜 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인위적으로 자연을 변형시키는 인공적 미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중국 정원의 대표작인 소주의 졸정원(拙政園)이나 일본 경도에 있는 용안사(龍安寺)의 정원이 그러합니다. 이 두 정원은 동북아시아의 최고 정원으로 여러분들이 중국이나 일본에 가게 되면 꼭 들렸으면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정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최고의 자연미를 산출해낸 것이죠. 이에 비해 한국 정원은 일단 자연이 위주가 되고 필요할 경우에만 손을 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도 가능한 한 자연적으로 보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안과 밖이 분리되어 있지 않도록 설계, 자연과 일치함을 추구

여러분들은 성북동이라는 서울 한복판에 사대부 정원이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성락원이 그곳인데 이곳은 양반이나 왕실의 정원으로 애용되던 곳입니다. 그런데 사유지라 안타깝게도 마음대로 방문할 수가 없고 모습도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원래 있는 연못들을 중심으로 정원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이곳의 지형을 보면, 뒷산에서 흘러오는 물들이 연못을 이루는 곳에 정원을 만든 것입니다. 연못은 그대로 살리고 그 주위를 조금만 손질하고 정자나 집을 지어 휴식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연못만 보면 그저 자연이지 그것을 인간이 만든 정원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사대부 정원, 성락원. 뒷산에서 흘러오는 물로 형성된 연못에 정원을 만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담양에 있는 소쇄원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펼쳐집니다. 소쇄원은 조선의 사대부 정원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끕니다. 소쇄원은 문자 그대로 맑고 깨끗한 소리와 풍광을 감상하는 정원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작은 골짜기에서 나는 폭포 소리가 가장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쇄원 위에 사는 농민들이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물을 막아 정작 소쇄원에는 물이 많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안타까운데, 이전에는 폭포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곳도 원래 있던 작은 계곡 주위에 정원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담을 쳐서 주위와 구분하고 그 안에 인공 연못이나 정자를 지어 사람이 쉴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담을 보고 느끼는 것은, 만일 일본이나 중국 같으면 이렇게 담을 만들다 마는 것처럼 하지 않고 아예 담으로 사방을 막았을 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원 영역과 밖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것이지요. 그에 비해 소쇄원은 담이 중간 중간에 끊겨 있습니다. 담을 쌓다 만 것 같아 대충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소쇄원에 별 지식을 갖지 않고 간 사람은 실망하기 일쑤입니다. 대단한 정원이라고 해서 갔더니 엉성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원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면 분명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담을 이렇게 만든 데에는 이 정원을 디자인한 사람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이런 의도가 제일 잘 보이는 곳은 이 정원 안에 있는 두 건물(광풍각과 제월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입니다. 옆에 도면이 있습니다만 사실 이런 것은 현장에서 설명하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담을 따라 작은 문을 통해 위의 건물(제월당)로 들어가면 분명 이곳은 집의 내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몇 발자국만 걸으면 담이 끊겨 있는 바람에 도로 밖이 됩니다. 이것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으려는,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는 의도가 담긴 디자인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과 단절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그 문을 통해 다시 나오면 밖이 되어야 하는데 도면에 보이는 것처럼 담이 ‘ㄷ’ 자 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무까지 심어져 있어 흡사 내부 공간에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밖’으로 나갔으되 다시 ‘안’의 느낌이 들도록 연출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고도의 치밀한 계산이 깔린 것인데 이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 정원의 참맛을 알 수 없습니다.


소쇄원 도면. ‘ㄷ’ 형태의 담은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지닌다. <출처: 김봉렬, [한국건축의 재발견 2], 이상건축 중 발췌>

 

 

투박함 속에 숨겨져 있는 미학

보길도의 세연정 영역도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이곳은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 최고의 풍류가인 윤선도가 자신이 즐기려고 만든 정원입니다. 이곳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위의 맥락에서 보면, 이 정원도 원래 있던 자연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인공 연못이나 인공적인 설치물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세연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연의 모습을 감상하고 뒤로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즐겼습니다.

 

세연정 앞 연못의 모습. 본래 자리에 있던 바위들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앞의 자연 연못을 보면 그 안의 모습이 자연 그대로 투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왕실 정원에서 보이는 장방형의 인위적인 모습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물론 호안은 사람이 쌓았지만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연못 안에 드문드문하게 있는 바위들은 자연에 있던 것을 그냥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자유분방하게 보입니다. 저는 일본이나 중국의 정원에서 이렇게 아무렇게나 놓인 것처럼 보이는 바위를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렇게 거칠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한국인들의 성정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복원된 청계천에 가면 풀들을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그 모습에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한 일본인 제자가 그러더군요. 왜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놓느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자연스럽게 보이는데 일본인의 눈에는 너무 거친 겁니다. 이런 정원의 모습을 가까운 데서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가면 미르 폭포로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은 제 추측으로는 세연정 영역을 모델로 만든 것 같은데 아주 괜찮습니다. 박물관에 가시면 안에 있는 유물만 보지 말고 이곳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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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