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고모역/ 조명선

맑은물56 2010. 9. 17. 15:12

 

 고모역/ 조명선

 


숙이고모 돈 벌러 눈물로 간다, 간다.

코끝에 걸린 달빛 따라 금호강 기슭을 돌아

능금꽃

파르르 떨며

발길 적시는 고모령 넘어

 

그렁그렁 매달린 사연 쓰윽쓱 문지르며

의심스런 눈길에 밀봉당한 간이역

배웅도

마중도 없이

꽃 멍으로 내린다.


한눈 팔 사이 없이 살 세게 달린 철길

동대구 출발하여 고모역 통과합니다

미끈한

안내방송이

눈시울 더듬는다.


- 시조집 <하얀 몸살> (동학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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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역의 ‘고모’는 현인이 부른 국민애창곡 ‘비 내리는 고모령’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낱말이다. 고모령 역시 대구의 그저 평범한 고갯길에 불과한 지명인데 ‘고모’는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의 조합으로써 여러 이야기로 그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지만 이 시에서처럼 고모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새의 비상하는 모습을 춤추는 것에 비유하여 고무(高舞)라 했는데 그 발음이 변화되었다는 전혀 다른 주장까지 있다. 그런데 시인은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상상력과 공간으로 고모의 사연을 풀어보였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그만큼 이 고모령과 고모역은 특정 어머니의 고달픈 삶과 애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보편적 그리움과 이별의 애잔함이 서린 곳이다. 고모든 이모든 누이든 이웃 아주머니 사연이든 동란의 피난길에서, 돈 벌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길에서, 감옥에 갇힌 자식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젓가락 장단에 신세타령으로 녹아들어 위로를 주었던 추억의 고유명사이다.

 

 고모역사 앞에는 박해수 시인의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라고 시작되는 간이역 시비가 있다. 하지만 2006년 역무원 없는 간이역으로 격하된 이후 한동안 외부의 접근을 막는 쇠망을 씌워두더니 올해 초부터는 임시 소방서로 이용하고 있다.

 

 2003년엔 대구시에서 9억 원을 들여 고모역 육교까지 설치했지만 여객취급이 중단된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구조물이 되었다. 작년 한 민간업자의 의해 카페조성이 검토되었으나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이제는 덩그러니 까치밥처럼 남은 노래비와 시비 말고는 고모령과 고모역을 추억할 수 있는 기재는 아무데도 없다.

 

 문인수의 시 <고모역의 낮달>에서 ‘떠난 세월만 한없이 푸른 허공이고 돌아오는 이 없는 도시 속의 오지’로 오래도록 남아있거나, 박해수의 <고모역>에서 ‘어머니의 눈물처럼 그렁그렁 옛 달처럼 덩그러니 걸려’있거나, 이렇게 간간이 고모역을 추모하는 시인의 시에서처럼 ‘눈시울 더듬’을 도리 밖에는.

 

 

ACT4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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