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일보/ 2010.7.30.(금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깡통
김순일
골목길에서 밤새 알몸으로 떨고 있는 사랑을 모셔옵니다
공원이나 놀이터에 몰래 내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단물 한 방울까지 다 빨아먹고 냅다 차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구둣발로 납작하게 뭉개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주식시장 바닥에 코풀어버린 사랑을 모셔옵니다
새벽마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쓰레기 사랑을 모셔오는 노파
주일날이면 무거운 다리 가볍게 끌고 나가
척박한 자선 상자에 꼬깃꼬깃 접은 할미꽃 사랑을 심습니다
◆시 읽기◆
깡통은 식품을 넣을 수 있게 만든 양철통이다. 그리고 아는 것 없이 머리가 텅 빈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며,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하거나 속이 비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은 할머니를 깡통에 비유시켰다. 일생 자식들에게 다 비워준 할머니는 내용물이 다 비워진 깡통이며, 내 버려진 깡통인 것이다.
더욱이 새벽마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쓰레기 속에서 박스며 깡통이며 재활용품을 주워 돈으로 바꾸는 가난한 할머니가 주일이면 무거운 다리를 가볍게 끌고나가 척박한 자선 상자에 꼬깃꼬깃 접은 사랑을 심는 것이다. 작은 리어카나 손수레에 차곡차곡 올려놓는 그 정성이 주어온다기보다 모셔온다는 표현이 더 적합 할 것이다.
사람들이 버린 꿈과 희망, 자존심과 자신감, 남용과 굴욕 등 온갖 분노와 아픔 등이 할머니에게서 다시 희망이 되고 사랑이 되는 재생산, 재활용인 셈이다.
깡통이 되어버린 할머니가 새벽마다 척박한 세상에 사랑을 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눈이며, 시인의 심성이 아닐까.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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