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잠자는 학교] [1] 우등생도 잔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일부 학생들이 잠을 자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잠자는 학생들이 더 늘었다. 방과 후 학원에 가서 공부하려는 학생이나 지루한 수업에 지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교사들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잠자는 학교'의 실태와 대책을 심층 취재해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자고 있다. 낮엔 학교에서 자고 밤에 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다.‘ 잠자는 학교’는 무너진 공교육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이날 오후 2시 A 중학교 2학년 한 교실은 학생 35명 가운데 8~9명이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신학기를 시작한 지 3일밖에 안 됐지만, 수업 분위기는 처질 대로 처져 있었다. 교사와 불과 서너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은 교사 바로 앞에서 책상에 엎드려 뒤척이고 있었다.
하지만 교사는 혼자서 교과서를 줄줄 읽어나갈 뿐이었다. 교사가 한 번씩 학생을 지목해 교과서 문장을 읽게 하면 그 학생은 마지못해 일어나 맥빠진 소리로 읽었다.
같은 시각 서울 B 중학교 2학년 한 교실에서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영어 교사가 교과서를 소리 내 읽는 동안 듣는 학생은 30명 중 5명쯤밖에 되지 않았다. 9명은 엎드려 잠을 자고 3명은 졸다 깨기를 반복했지만, 교사는 수업시간 내내 본체만체했다. 학생 10여명은 짝과 잡담하거나 노트에 낙서하며 장난만 쳤다. B 중학교 3학년 탁모(15)군은 "개학하고 이번 학기부터 마음잡고 공부하려 했는데 체육 시간 빼고는 다 졸린다"고 했다.
경기도 C 고등학교 3학년 최모(18)군은 "하루 수업 중 3~4시간은 잔다"며 "우리 반 학생 40명 중 절반이 자는 수업도 있다"고 했다. 우등생인 최군은 요즘엔 학교에서 잠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업을 잘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가오는 수학능력시험 때 잠자지 않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최군은 "솔직히 교원평가제는 선생님들이 반대해서 제대로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선생님들은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수목적고(특목고) 학생도 잠을 자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2학년 임모(17)양은 "우리 반은 수업시간에 30여명 가운데 평균 10명 정도 잠을 잔다"며 "나는 학교에서 매일 1~2시간씩 자는데 학원수업을 받을 땐 절대 안 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