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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 학부모·학생엔 ‘묻지마 평가’

맑은물56 2010. 8. 26. 22:06

교원평가, 학부모·학생엔 ‘묻지마 평가’

세계일보 | 입력 2010.08.26 19:02

 
"수업내용·교사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녀 불이익 우려해 "무조건 좋다" 평가도
참여율 절반에도 못미쳐 형식적 조사 전락


중학교 3학년 딸을 둔 우모(42·여·서울송파구)씨는 지난달 교원능력개발평가의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 참여하며 한숨만 내쉬었다. 인터넷으로 평가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교사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수업을 하나', '교사가 학습내용에 맞는 적절한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가' 등과 같이 수업을 직접 듣지 않고는 응답할 수 없는 질문이 10여개나 됐다. 게다가 담임 교사 외에 교과별 교사 10여명을 평가하는 항목도 있었다. 결국 우씨는 딸을 옆에 앉혀 놓고 딸 의견대로 만족도 조사를 마쳤다. 우씨는 "딸이 독촉해 점수를 줬지만 담임 빼곤 이름도 모르는 교사를 어떻게 평가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등학생 아들(17) 학교 것은 아예 안 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실시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학부모·학생의 교사 만족도 조사'가 우려대로 형식적인 조사에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사 수업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학부모는 평가할 수 없는 항목인 데다 불이익을 우려해 무조건 좋게 평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시간에 만족도를 조사하는 등 벌써부터 '평가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26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실시된 교원평가는 대부분 학교에서 끝났으나 학부모 참여율은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교과부는 오는 10월까지 조사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는 학부모가 담임을 제외하고 잘 모르는 교장과 교감, 교과별 교사까지 모두 평가하기를 꺼리는 탓이다. 맞벌이 학부모들은 공개수업에 참여해 본 적도 없어 대부분 담임교사조차 제대로 모른다.

서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우리 학교 학부모 참여율이 30% 정도인데 다른 학교에 비해 높은 편"이라며 "교사들이 봐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항목이 많은데 학부모가 어떻게 평가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자녀가 불이익을 당할 것을 염려해 무조건 '좋다'고 평가하는 부모들도 많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정모(40·대구 달성군)씨는 "비공개라고는 하지만 자녀 아이디로 접속해 평가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알려지지 않겠느냐. 어떤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나쁜 점수를 쉽게 줄 수 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남 A중학교 등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 만족도 조사 참여율을 높이려고 수업시간에 평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난 몇 번으로 통일했어'라며 찍기 놀이하듯 참여한 학생들이 있다"며 "아이들과 많이 부딪치는 학생지도부 교사들에 대한 평가는 안 좋게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조상식 교수(교육학과)는 "교사의 직무 특성상 지금 방식처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주관적 요소가 들어갈 수 있도록 평가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교에서 학부모들과 의논해 상황에 맞는 문항을 만들어 참여율을 높이도록 했지만, 아직 현장에서 정착이 안 된 상태"라며 "올해 처음 실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 등을 반영해 내년에는 큰 틀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