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만들면 교권 무너진다? | |
경기조례, 학습권 보장·학교 안 폭력금지 포함 교원·학부모단체“인권인식 키워 타인권리 존중” | |
김명진 기자 | |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자, 보수 단체들이 ‘교권 침해’, ‘학습 분위기 저하’ 등을 이유로 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인권 전문가들은 반대 단체들이 인권조례의 순기능은 외면한 채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과 같은 특정한 내용만 부각시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4월 마련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모두 48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조례에는 진보·보수 진영 사이에 찬반논란이 일었던 △체벌 금지 △두발·복장 자율화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선택할 권리 등과 함께 △학생 간 학교폭력 금지 △학습권 보장 △자치활동의 권리 △건강권 등 보편적인 인권과 관련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조례 제정 작업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오동석 아주대 교수(법학)는 “인권조례는 학교 교칙에 대한 헌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자치권·참여권을 보장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규율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인권조례에서 인권의 개념은 학생·교사 간 폭력인 체벌 금지뿐만 아니라 학생 간에 일어나는 ‘왕따’나 학교폭력 금지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라며 “일본에서도 아동인권조례가 도입되는 등 문명국가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일인데 이를 문제삼는 것은 진보 교육감이 추진하는 정책을 꼬투리 잡으려는 정치적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조례에 반대하면서 ‘교권’이나 ‘학습권’을 내세우는 것도 학생인권을 편협하게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성상 한국외대 교수(교육학)는 “교사들이 수업준비를 하지 않고, 학교가 수업기·자재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학습환경에 차이가 나면 동등한 학습기회를 못갖게 되는데 이것도 학습권 침해이자, 인권조례를 통해 보장하는 인권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엄민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인권은 내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인데 학교에서 인권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학생 자신의 권리만큼 교사의 권리도 존중하게 될 것”이라며 “교권 신장을 위해서도 학생인권조례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도·진보 성향의 학부모단체들도 대체로 학생인권조례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강윤봉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대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자는 게 아니라 권리와 함께 책임을 정하는 일”이라며 “이를 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뿐 조례를 제정하는 일은 선진사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른교육권실천행동·자유교육연합, 대한민국교원조합·자유교원조합 등 보수 성향의 시민·교원단체들은 7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는 아이들에게 집회의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라며 “그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교칙개정으로 인권보장? 교장 맘대로인데..
광명 명문고 학생·교사 석달 공들였지만 교장 거부로 무산
“학교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교칙 개정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한다고요? 학생인권조례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경기 광명시에 있는 명문고의 안홍균 교사는 지난 3월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교칙 개정 작업에 나섰다. 이 작업에 참여한 ㅂ양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교칙 전문을 본 적도 없고 그냥 선생님이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았다”며 “2008년에는 아무도 모르게 교칙이 개정돼, 체벌 절차를 규정한 조항이 사라진 것도 이번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ㅂ양은 “교칙 개정이나 운영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안 교사와 학생들은 3월부터 두 달 동안 경기도교육청에서 제시한 교칙 개정 절차에 따라 학급회의, 대의원대회, 교사·학부모 설문, 토론회 등을 거쳐 최종 합의안을 만들었고, 지난 5월 교칙 가운데 14개 조항을 손질한 개정안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학운위원들은 14개 조항 가운데 △‘무릎 밑 5㎝’로 제한된 교복 치마 길이를 ‘무릎 바로 위’로 △어깨선 이상으로 늘어지는 머리는 ‘땋는다’는 규정을 ‘묶는다’로 바꾼 조항 등 13개 조항을 부결시켰다. 그나마 가결된 ‘휴대전화 소지 허용’ 조항은 학교장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교장이 학운위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 교사는 “학운위는 학부모위원 6명, 교사위원 4명, 지역위원 2명에 학교장이 당연직으로 들어가는데, 학부모위원들은 학교장이 추천한 경우가 많고 교사위원에는 부장교사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학교장의 의지가 관철되기 쉬운 구조”라며 “대개의 학교장들은 학생들을 통제하는 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학교 자율에 맡기는 것보다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상위 규정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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