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in Love and You Will Be Happy. 1889. Carved,
polished and polychromed linden wood.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MA, USA
작업실에서 케이블로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버려진 척 놀랜드...
폭풍우를 만나 무인도에 표류된 로빈슨 크루소가
과거 시점의 인간이라면
그는 현대 시점에서 바라본 고독한 인간의 전형.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를 위로해 주는 것은 스마일을 그려넣은 바람 빠진 배구공.
그의 고독한 몸짓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다를바 없다
서바이벌 게임의 주인공 척 놀랜드와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방식은
누구에게나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지만
스스로 문명세계와 단절하고 남태평양의 한적한 섬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한사람 있다
폴 고갱...
그는 세잔느, 고흐와 함께 후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오늘 6월 7일은 고갱이 태어난 날.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작품은
보스톤 미술관의 유럽 회화관에 걸려있던 바로 이 그림이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라는 긴 제목의 이 그림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파노라마처럼
시간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어 흥미롭다
오른 편에 누워 있는 어린 아기는 우리의 지난 과거이며
그림 중앙에서 지혜의 과실을 따는 젊은이는 우리의 현재 모습
왼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닥쳐올 죽음의 고통을
귀로 막고있는 노인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그의 그림은 마치 심포니의 장대한 악상처럼
인간이 짊어진 삶의 애환이 담겨있어 감동적이다
고갱은 화가가 되기 전
선원과 증권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35살이 되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서 고흐와의 인연은 빼놓을 수 없다
아뜨리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던 위대한 두 화가의 관계는
고흐가 정신발작을 일으켜 귀를 자르고 난 뒤 끝이 난다
고갱은 무작정 타히티로 떠나지만...
그 곳에서의 삶 또한 고흐처럼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타이티에 가서도 빈곤과 고독, 병마에서 헤어나질 못했던 그는
화가로서 한계점에 도달하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Self-Portrait with Yellow Christ, 1889-90, oil on canvas.
남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타히티 섬의 맑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마치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킨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의 때묻지 않은 삶에서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발견한 고갱은
인간의 내면적인 모습과
원시적 낭만을 강렬한 원색에 담아냈다
고갱의 그림에 담긴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의식세계는 결국
'문명과 원시의 대립'으로 압축된다
그의 화풍은 결코 세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만의 풍부한 서정미는 문명세계에서 그려낼 수 없는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갱의 그림은 인상주의도 아니요 사실주의 또한 아니다
그의 그림은 인상파 화가들이 담아낸
미묘한 빛의 떨림도 없으며
현실적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색채의 뉘앙스도 발견할 수 없지만
강렬한 색채 구사, 명확한 윤곽, 생명력으로 충만한 환상적 분위기는
시지각적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고갱의 독자적 화풍이라 할 수 있다
The Cellist (Portrait of Upaupa Scheklud)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음악가 '모리스 라벨'의 음악세계 또한
고갱과 닮은 점이 많다.
라벨의 음악은 도회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명확한 구성과 자유로운 리듬은
고갱의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볼레로>는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곡임에도
여러 악기로 색채를 바꿔가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그만의 독특한 정서가 반영된 곡이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문명세계를 등지고 타히티 섬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고갱은
화가의 길을 걷는 것만이 최대 행복이라고 생각했을까?
고갱이 세상을 떠난지 100여년이 흐른 지금
각박한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사는 모습을 그려보곤 하지만...
그런 생활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않는 것은
아마도 정신수양이 부족한 탓이리라
헤르만 헤세는 <황야의 이리>에서
행복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rearea (Joyousness), 1892,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Happiness
그대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한
그대는 언제까지나 행복해질 수 없다.
가령 사랑하는 것을 손에 넣더라도
그대가 잃은 것을 한탄하고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한
그대는 평안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대가 모든 소망을 버리고
목표도 욕망도 갖지 아니하며
행복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야 이 세상의 거친 파도는
그대의 마음에 미치지 않고
그대는 비로소 휴식을 알게 되리라.
- 헤르만 헤세 -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헤세의 말처럼 행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세계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쩌면...
현대문명의 한가운데 버려진
황야의 이리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각박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성취하기 위해
타히티로 향했던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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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엔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난다
특히 황금연휴엔 더욱....
나 또한 숨막힐 듯 한
이 도시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떠나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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