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3일(음3.30)은 원효스님 열반일이다. 원효스님 연구에 평생을 바친 팔순의 노학자 학연(學然) 심재열 선생이 스님의 열반 1324주기를 맞아 ‘원효의 대표작은 그동안 알려진 <금강삼매경>이 아니다’는 요지의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공자에게는 <논어>가 있고, 용수보살의 대표작은 <중관론(中觀論)>이다.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는 <마하지관>이 대표작이고, 법장현수(法藏賢首)의 대표작은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이다. 이와 같이 대표작이 있어 그 주인공의 근본사상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원효(元曉)성사의 대표작이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임은 원효비문(高仙寺 誓幢和上碑文)을 위시해서 여러 문헌에서 밝혀주고 있다.
화쟁사상은 원효성사의 중심사상이다. 그의 광범위한 사상은 모두 화쟁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원효의 인생관이고 불교사상이니 화쟁사상의 이해 없이 원효성사의 사상을 추구할 수 없다. 본론은 원효비문(元曉碑文)에 의해 <십문화쟁론>이 원효성사의 대표작임을 입증하려 한다.
◇ 서당화상탑비의 십문화쟁론
서당화상탑비는 현재 단석(斷石) 4편으로 남아 있어 전부의 내용은 볼 수 없지만 비문 전문 33행의 하단부분을 다 볼 수 있어 원효성사의 전기사료로써 제1급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33행중 하단 20자 이상이 다 판독되기 때문이다. 1914년 조선총독부 참사관실에서 행한 금석문(金石文) 수집 조사시 경북 월성군 동면 암곡리의 전고선사지(高仙寺址)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경복궁회랑(回廊)에 보관되어 있다. 처음에 3편(片)으로 발견되었는데 <십문화쟁론>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
또 두 번째로 1968년 9월 경주시 동천동의 한 농가에서 상부 왼쪽 부분이 발견되어 현재 동국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문가운데 현재 판독할 수 있는 문자는 770자이다. 그 가운데 <십문화쟁론> 부문의 글만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전문 33행중 저술부문은 제9행으로부터 제13행까지 5행에 이른다. 그리고 <십문화쟁론>은 이 5행중 4행 곧 제9행으로부터 12행까지이다. 비문 전문 가운데 하나의 주제에 대해 4행 이상을 다룬 것은 오직 저술 특히 <십문화쟁론>이 유일하다. 비문 33행의 하단 20자가 전부 있어 비문전체의 구조를 대강은 알 수 있다.
화쟁론 부분의 원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사진>원효스님 진영. 불교신문 자료사진
◇ 비문전체의 구도
처음의 제1행은 비문건립자에 대한 내용이고, 제2행에서 제3행은 시대상과 보살.성인의 출현이 요청되는 시대로서 서당(誓幢; 元曉)화상이 바로 그 분이라는 서문이다. 제4행은 출생지 불지촌(佛地村)에 대해서, 제5행은 탄생을 전후한 5색광명 등 상서에 대해서, 제6행은 당시 문무왕의 치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제8행은 성사의 오도에 대해 “덕은 오직 숙세에 심은 것이고 도는 실로 나면서 알았으며 마음을 인해 스스로 깨달았을 뿐 스승을 따라 배운 것이 아니다(大師 德唯宿植 道實生知 因心自悟 學不從師)”라고 했다.
제9, 제10, 제11, 제12, 제13행은 저술에 대한 내용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제일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음을 볼 때, 생애 중 저술을 가장 중시했음을 엿볼 수 있다. 제14행은 지신(地神).천신(天神)이 성사를 호위한데 대해, 제15, 제16행은 성사의 부사의한 신통력에 대해, 방 앞에 있는 연못의 물을 머금어 뿌려서 먼 곳의 절에 불난 것을 끄는 일 등을 기록했다. 제17, 제18행은 열반에 대해, 곧 수공(垂拱) 2년(686) 혈사(穴寺)에서 열반에 든 일에 대해, 제19행은 제자 9인 능자에 대해, 제20행은 손주(한림중업(仲業)) 등 혈손에 대한 기록 등의 구조로 되어 있다.
요컨대 한 주제에 대해 5행에 이르는 저술의 경우처럼 많은 분량을 할애한 바는 없고 대개 한 주제에 1행, 2행에 그쳤다. 그리고 저술 5행중 4행을 <십문화쟁론>에 할애하고 있어 저술 5행 거의 전부가 대표작 <십문화쟁론>에 관한 기술임을 또한 알 수 있다.
◇ 비문중 화쟁론의 내용
서당화상비 제9행, 10행, 11행, 12행, 13행에 있는 현존 비문 화쟁문 하단을 소개한다.
“… 그 가운데 십문화쟁론은 여래가 세상에 계실 적에는 부처님의 원음설법에 힘입어 중생들이…(就中 十門論者 如來在世 已賴圓音 衆生等…)”
“… 빗방울 … 공하고 공한 논리가 구름처럼 분분했다(… 雨驟 … 空空之論 雲奔…)”
“…혹은 자기의 말은 옳고, 다른 이의 말은 그르다 하며, 혹은 자신의 생각은 옳다고 하고, 다른 이의 주장은 옳지 않다하여 드디어 하한(河漢; 황하와 漢水처럼 많은 支流)과 같이 파벌의 떼를 이룰 것이다.… 큰 …(或言我是 言他不是 或說我然 說他不然 遂成漢矣 … 大 …)”
“…산…골자기를 돌아가는 것처럼 유(有)를 싫어하고 공(空)만을 좋아하는 것이 나무를 버리고 큰 숲에 나아가려함과 같으니, 비유컨대 푸른 색과 쪽풀이 한가지 체(體)며, 얼음과 물이 그 근원이 하나임과 같다. 거울은 만가지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은 …나눈다…(…山而投廻谷 憎有愛空 猶捨樹以赴長林 譬如靑藍共體 氷水同源 鏡納萬形水分 …)”
“…통하여 융합하나니 애오라지 서문을 쓰고 이름 하여 십문화쟁론이다하니 사람마다 거룩하다 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通融 聊爲序術 名月 十門和諍論 衆莫不允 僉曰善哉).”
“화엄종요는 이치는 비록 원래 하나지만 …을 따라서(華嚴宗要者 理誰元一 隨 …)”
◇ 해인사잔간(殘刊)십문화쟁론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의 국간장(國刊藏)경판과 해인사 사간장(寺刊藏)경판이 있다. 국간장은 국가에서 간행 소유하는 경판이고 사간장은 해인사에서 간행한 경판이다. 이 사간장 가운데 <십문화쟁론> 잔간(殘刊)이 있어 1937년 발견되었다. 당년 고려대장경을 2부 인간(印刊) 할 적에 국간장(國刊藏) 이외에 사간장경도 인간 정리하게 되어 화쟁론 잔간 제9.10.15.16의 4매도 발견한 것이다. 화쟁십문중 제9.10, 2면에는 공유(空有)쟁론에 대한 화합이 설해져 있고, 제15.16, 2면에는 유성(有性) 무성(無性)의 성불의 쟁론에 대한 화합이 설해져 있다. 이것을 고(故) 이종익 박사는 ‘공유이집화쟁문(空有異執和諍門) 유성무성화쟁문(有性無性和諍門)’이라 명명했다. 이 밖에 최범술(崔凡述) 노사가 불완전한 판본을 복원한 바 있는데 인법이집(人法二執).아공법공(我法二空)에 대한 화쟁론이다.
◇ 화쟁십문의 복원
이 밖에 신라 견등(見登)의 <대승기신론> ‘동이약집(同異略集)’에 의해 보신화신의 보화이신화쟁문(報化二身和諍門)을 이 박사는 세웠다. 또 이종익 박사는 원종문류(圓宗文類)화쟁론에 의거하여 진속이집화쟁문(眞俗異執和諍門)을 세웠으며 기신론해동별기(海東別記)에 의거 삼성일이화쟁문(三性一異和諍門)을 세웠다. 또 원효의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에 의거하여 불성이의화쟁문(佛性異義和諍門)을 세웠고, 기신론동이집.열반경종요에 의거하여 삼신이집화쟁문(三身異執和諍門)을 세우는 한편 이장의(二障義)에 의거하여 이장이의화쟁문(二障異義和諍門)을 세우고 원효의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에 의거해 삼승일승화쟁문(三乘一乘和諍門)을 세움으로 십문을 전부 복원하였다. 이상을 도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이상 십문화쟁문 중 지면관계로 몇 문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 비문의 화쟁론 개요
1) 삼승일승화쟁문(三乘一乘和諍門)
화쟁사상은 곧 통불교이념이요, 통불교이념은 곧 일불승(一佛乘)사상이다. 일불승사상에 입각하여 대. 소승 일체의 경론과 종파.종지를 회통하여 하나의 원리로 귀납시키는 것이 곧 <십문화쟁론>이다. 그러므로 십문화쟁은 마치 법화일승이 모든 3승교를 회통하는데 그 핵심이 있음과 같다. 그러므로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법화일승을 화쟁의 총망(總網)으로 삼음과 다를 것이 없다. 원효의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총서에 ‘<묘법연화경>이란 이것이 곧 시방삼세제불의 출세한 대의미고 9도.4생이 하나의 도에 다 함께 들어가는 큰 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런 원칙에서 원효는 백천경론이 다 1승에로 통하는 동일불승이며 5종성인(五種性人)이 다같이 1승을 타고 불지에 오른다는 것이 화쟁사상의 원리라고 천명한 것이다.
2) 공유이집(空有異執)화쟁문
근본불교에서는 법무아를 내세웠고 현상계에 있어서는 제행무상을 내세웠으며, 소승부파에서는 아법구유(我法俱有), 아공법유(我空法有), 현법실유(現法實有, 過未無體) 등을 주장했다. 대승불교의 반야경계에서는 일체개공을 주장하였고 용수의 중관학파(中觀學派)에서는 진제(眞諦)는 공, 속제(俗諦)는 가유(假有), 중도제(中道諦)는 비공비유(非空非有)의 삼제(三諦)를 내세웠으며, 무착.천친의 유가학파에서는 불타의 일대교의를 제1시는 진속구유(眞俗俱有), 제2시는 진속구공(眞俗俱空), 제3시는 속공진유(俗空眞有)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공(空).유(有)에 대한 대립과 쟁론이 끊이지 않았는데, 원효성사는 화쟁론 처음에 이 문제를 다루었다. 요지는 ‘유(有)가 공(空)과 다르지 않은 유(有)며, 공(空)이 유(有)와 다르지 않은 공(空)이므로 증익(增益), 손감(損減)의 비방을 여의게 된다. 자성은 본래 허공과 같은데 변계소집의 제법은 허공에 수용된 색상과 같아서 보살은 청정성공을 지니는 것이다. 공유의 쟁론은 여기에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송고승전>은 원효성사의 십문화쟁사상을 모르고 <금강삼매경론>이 대표작인 것처럼 하고 있지만 이는 허구이고 넌센스다. 원효비문에서 보인 바와 같이 원효성사의 대표작은 <십문화쟁론>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심재열 / 원효사상연구소장
[불교신문 2623호/ 5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