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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동생 생각났을까, 영화 ‘서편제’ 보며 섧게 우시던 법정”

맑은물56 2010. 4. 28. 19:49
“누이동생 생각났을까, 영화 ‘서편제’ 보며 섧게 우시던 법정”
 
‘소설 무소유’ 펴낸 작가 정찬주 씨
“법정 스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



1990년 여름 전남 순천시 송광사 불일암에서 만난 법정 스님(왼쪽)과 작가 정찬주 씨. 정 씨는 “한 말씀 해달라는 사람들이 불일암으로 찾아오면 스님은 늘 ‘조계산 산자락이나 보고 가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사진 제공 열림원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이 문인이거나 학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선방()이란 규격화된 울타리를 벗어났던 진정한 수도승, 선승이었습니다.”

성철 스님 등 고승들의 행적을 소설로 펴냈던 작가 정찬주 씨(57)가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소설 무소유’(열림원)를 펴냈다. 그는 1984년 샘터사에서 근무하던 당시 스님의 책을 만들면서 맺은 인연으로 재가제자()가 됐고 이후 스님을 찾아뵐 때마다 들은 말씀을 꼼꼼히 기록해뒀다. 그간의 메모들을 바탕으로 쓴 이번 소설은 법정 스님의 제자인 덕조, 덕현 스님과 속가의 조카인 현장 스님에게 감수를 받았다.

26일 만난 그는 “깨달음을 이룬 초월적인 고승이 아니라 정 많고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며 “보통 때 하시는 말씀들은 구절구절 시적()이었기 때문에 이 책에 시적인 요소가 있다면 모두 스님의 말씀 자체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속가시절 법정 스님의 모습에서부터 출가 이후 생명중심 사상과 무소유 사상을 확립해 가는 과정, 입적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그려낸다. 불일암을 찾는 손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느라 고단해진 시자를 위해 “옴 맛나 맛나 사바하. 옴 맛나 맛나 사바하”라는 우스개 진언을 알려준 이야기 등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일화도 녹아 있다. 그는 “주로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아침 시간에 조조로 영화를 즐겨 보셨는데 언젠가 ‘서편제’를 함께 보시며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그렇게 우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 살 때 폐병으로 아버지를 잃으셨던 스님은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다른 남자에게서 여동생을 낳아오자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스님은 여동생을 낳기 이전의 어머니만 인정했는데 입적하시기 전까지 그때 일을 미안해하셨던 것 같아요.”

또 그는 “스님은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며 굴참나무로 만든 의자를 ‘빠삐용 의자’라고 부르시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하셨다”고 전했다.

1970년대 ‘씨ㅱ의 소리’ 편집위원 등을 지내며 사회적 목소리를 냈던 스님은 1980년대 이후부터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했다. 정 씨는 “스님에겐 세상 모두가 한 뿌리이며, 설혹 독재자라 할지라도 증오와 적개의 대상이 아니라 수행자가 낫게 해야 할 병든 가지였다”며 “증오, 적개, 분노가 바탕이 된다면 아무리 좋은 이데올로기라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고 참회하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언젠가 스님의 말씀을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지그시 웃어주셨던 데서 용기를 얻어 책을 썼습니다. ‘베푼다’는 말을 싫어하시고 ‘나눈다’는 말을 좋아하셨던, ‘나도 없는데 하물며 내 것이 있겠느냐’고 하셨던 스님의 무소유 철학이 바르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