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의 향기

[스크랩] 동백나무 아래서 띄우는 편지 /김택근 (낭송-세미서수옥)

맑은물56 2010. 4. 1. 11:04

    ♣ 동백나무 아래서 띄우는 편지 ♣ -김택근 (낭송-세미서수옥) 따 어찌 저리도 붉다냐 이녁 가슴 다 태우려고 피었다냐 어이마시 이 동백꽃을 본께 집나가 삼년만에 돌아온 남편보다 더 반갑소 잉, 지금 막 꽃망울을 터트린 동백꽃에 지절대는 여아낙들의 입담이 애뜻하기만 합니다. 바람 맞으며 겨우내 봉우리를 틔우고 시리도록 붉디붉은 꽃을 피운 동백의 삶이 어쩌면 저 아낙들과 닮았겠습니다 모진 풍파 헤치며 들녘에서 살아온 탓에 거북등같이 거친 손등이며 살짝 굽은 허리에 활짝 웃는 얼굴이 동백꽃처럼 아리디 아립니다. 매 저 잡것 좀 보소 저렇게 들쑤시면 꽃이 다 떨어질 것인디 훠이훠이" 가을 콩밭을 날아든 새 쫓 듯 손사래에 놀란 동박새 한 마리가 후드득 숲을 뛰쳐 나옵니다. "삘 삘 삐리리" 지저귀며 고운 녹색 깃을 치더니 아랑곳없이 꽃으로 달려드는군요 숫제 꽃에다 머리를 쑤셔박고 게걸스럽게 꿀을 따니 금세라도 꽃이 떨어질 듯 흐늘거립니다. 기야 한겨울 내내 굶주리며 기다렸으니 체면 차람이 없을 법도 합니다 마치 화장 서툰 새색시가 분을 뒤집어 쓴 듯 부리에 묻은 꽃가루가 한가득입니다 사실 아낙들의 맘 졸임과 달리 동백과 동박새는 더불어 살아가죠 벌과 나비가 없는 계절에 피는 동백이라 동박새가 꿀을 따며 수분을 더해주는 겁니다 동백은 꿀을 주고 동박새는 열매를 맺게 해주니 예사 연분이 아닌 샘이죠. 아! 저기 일찍 핀 동백꽃이 송이채로 뚝 뚝 떨어지는군요 유난히도 색깔이 곱디고운데 말입니다 온 몸을 던져 떨어지는 비장한 절정의 정신을 나는 왜? 경탄하는 것일까? 붉게 피어나 변함없이 붉어지는 저 단심(丹心)을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아! 나는 여전히 붉은 색을 편애하는가 봅니다 피어 아름답지 않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나의 세상이 다 할 때와 같이 동백꽃도 삶이 다하여 저물 때도 저렇 듯 온통 핏빛입니다. 지금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바로 이순간입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꽃은 필 때가 아니라 질 때가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에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온 목숨을 던져 꽃다웁게 지는 꽃, 사람이 아름다울 때도 바로 이 때가 아닐까요? 아! 나뭇잎이 흔들리더니 또 한송이 동백이 발등위로 뚝 떨어집니다 너무나 예뻐 손으로 주어 들었죠 아직도 숨결이 남아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활짝 웃는 그 웃음 속에서 풍겨오는 동백꽃 향기가 나를 취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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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현실참여 문인ㆍ시민 연대
    글쓴이 : 허브와풍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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